살아낼 궁리

14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

by 잉플

"오빠, 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돼?"

"응?"

"나 이제 어떻게 살까?"

"지금처럼만 하면 되지."

"지금은 너무 엉망이야."

"지금처럼 내 옆만 잘 지켜."


요즘은 습관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문장이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처방받는 약이 나를 꽤나 안정시켜 주고 있다. 처음 내원했던 시기에 들쑥날쑥했던 감정의 그래프는 나날이 기복을 줄여가고 있었다. 다만 노동이 힘들어서 얻게 된 근육통과 두통, 그리고 빈혈로 인한 어지럼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지 못한 나날. 죽고 싶을 만큼 감정이 힘들 때를 떠올려 보면, 차라리 찢어질 듯한 근육통과 깨질 듯한 두통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결국 계약된 6개월의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할 것 같다. 병원에서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하고 있는 노동의 강도가 현재 나의 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또 비관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들은 어지럼증을 느끼지도 않고 잘만 하던데, 나는 왜. 사실은 버틸 수 있는데, 내가 나약해서 못 버티는 건가? 이 두통과 근육통도 이겨낼 수 있는 건데, 내 마음이 나약해서? 잘 버티며 일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온다고 생각하니 낙오되는 것 같은 기분에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내과에서 수액을 맞으면서 했던 생각인데, 나는 지금 정신도 아프고 몸도 아픈 환자인데 그걸 내가 인정 안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나를 돌봐야 하는 때에 자꾸 뭔가를 하려고 하니 상처가 덧나고, 병이 느는 건가 하는 그런 생각도 했다. 그렇다고 어떻게 나를 돌보기만 하면서 살아가겠냐고. 돈도 벌어야 하고, 뭔가를 하긴 해야 시간이 잘 갈 텐데 말이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수액이 다 맞아질 때쯤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했더랬다.


지금처럼 자신의 옆만 잘 지키라는 남편의 말은 힘이 되면서도 동시에 막막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냥 가만히 오빠 옆만 지킬 수는 없잖아."

"지금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난 엉망이래도."

"엉망 아니야. 잘하고 있어."


남편은 항상 그랬다. 나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나를 비난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를 대해야 할 텐데. 남편만 나를 주야장천 사랑해 준다고 해서 내 병이 낫게 될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종종 남편이 하는 말이나 행동처럼 스스로를 대해 주고 싶었다. 그게 잘 안 되는 게 슬픈 문제지만.


그래도 살아갈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게 좋은 신호가 아닌가. 못 살겠다,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내가 살아갈 궁리를 하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뭘 할 때 즐거운 사람이었던가. 종종 잊게 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나의 앞날을 그리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죽지 못할 것 같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 나의 친구들을 뒤로하고 나는 죽을 수가 없다. 죽고 싶다가도 다시 살아갈 궁리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나는 살아가야 할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행복하지는 않다. 매일 아침이 개운하지 못하다. 매일 낮 시간에 두통을 떨치지 못한다. 매일 밤마다 잠들기 위해 약을 먹는다.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하고 있어도 행복감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저 이 사람이 나와 함께 있어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먼 훗날 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곧 행복이라고 실감할지도 모르겠다. 막연히 언젠가 내가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을 가져 보기 시작했다.


"고민해 봐야겠어. 그냥 이대로 살 순 없어."


계획을 한다고 해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정해진 게 너무 없다 보니 불안함이 가중되고 얼른 내 삶의 방향을 정하고 싶었다. 방향이라도 정해 놔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고 있는 일도 조만간엔 그만둬야 할 상황에 놓이니 더 그랬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기간을 갖게 되더라도 그것조차 어떻게 쉬어야 할지 계획하고 싶었다. 내 마음 편한 쪽으로 하려다 보니 나는 뭔가를 정해 놓고 움직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의 진행이 어떻게 될까. 영어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는 기간이랍시고 스스로 워킹홀리데이라고 정의했는데, 일을 하지 않게 되면 그건 더 이상 워킹홀리데이가 아닌데. 지금 심정으로는 이 과정을 계속하고 싶다. 워킹홀리데이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 내가 좀 더 건강했더라면, 이런 고민 없이 6개월 간의 워홀 여정을 기록할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쉽다. 정말, 지속하고 싶다. 남편은 어서 일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난리지만, 나는 힘들어도 이 계약을 약속대로 이행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왜인지 이걸 그만두는 일이 마치 내가 나약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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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는 게 좋을까요?"

"이 일을 왜 시작하셨죠?"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는 날이 벌써 찾아왔고, 상담 중에 건넨 질문에 의사 선생님께서 내게 되물었다.


"시간을 쓰려고요."

"시간을 쓸 곳이 새로 정해진다면 그만둬야죠. 그리고 몸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잖아요. 가능한 본인의 몸을 더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명쾌한 답변이었다. 이것도 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이 일을 왜 시작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에도 없었다. 그저 6개월이란 계약 기간에 매몰되어 그 기간을 성실히 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계약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새롭게 시간을 쓸 곳이 정해진다면 그만둬도 아무 문제없어야 할 일이었다. 게다가 몸까지 아파진 마당에 그만둬야 한다는 상황에 미련을 담아 붙들고 있는 내가 참 바보 같다고 느껴졌다. 지금도 나는 나를 아껴 주지 않고 있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횡단했다. 어떻게 이 바보 같은 미련을 지워 버릴지, 어떤 다른 것에다 시간을 할애할지, 어떻게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하여. 모든 생각은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들이었다. 비관적인 단어나 문장은 머릿속에 없었다. 나는 잘 살아갈 궁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