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
나를 삼킨 건 우울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우울괴물의 입안에 감추고, 잘근잘근 씹어두게 놔둔 것일 뿐.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스트레스의 결과였다고 본다. 번아웃인가, 무기력인가 하는 그런 것들이 다 고루고루 섞여 버려 나 하나를 통째로 저 먼 지하세계로 끌어당겼다.
'난 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네... 다 괜찮아졌는 줄 알았는데.'
또다시 우울에 발목이 잡혔다. 어쩌면 난 언젠가 또 찾아올 지독한 우울을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우울해져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박이 나를 괴롭히게 뒀으니까.
그동안 내게 주어졌던 보통의 일상들이 기나긴 꿈을 꾼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시 우울했던 그 시절 그 자리로 돌아온 것 같았고, 그곳의 공기나 감정에 더한 커다란 내 심장박동 소리가 그때와 같았기에 더욱 그랬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무망감에 몇 날며칠을 울었던가. 몇 날며칠을 불안에 떨었던가. 몇 날며칠을 죽고 싶었던가.
이것은 죽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이야기이다. 삶을 끝내고 싶은 사람의 처절한 발악이며, 건강하지 않은, 건강한 척하는 활동이다. 이 이야기는 2025년에 시작된 나의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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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이 번져갔다. 불안함이 극에 달했을 땐 자해를 시도해야 했을 정도였다. 자해를 자제하던 지난날이 무색하게 달은 스스로 팔을 물어뜯고 따귀를 수차례 때렸다. 순간은 짧은 쾌락이 불안의 정도를 넘어섰으나 얼마 안 가 죄책감으로 달을 더 불안하게 했을 뿐 결론적으로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불 꺼진 침실, 굳게 쳐진 암막커튼에 해가 쨍할 오후 2시에도 방안은 깜깜했다. 출근한 남편이 없는 집안에 눈에 총기를 잃고 며칠새 볼이 수척해진 아내 달만이 고요함 속에 존재했다. 아날로그 시계가 없는 집안에선 째깍대는 시계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 탓에 달은 자신의 심장소리를 더욱 체감해야 했다. 가슴에 묻혀 있을 심장인데, 달의 머리에서도 심장이 뛰듯 두근댔다. 달은 그냥 콱 죽어 버리고 싶었다. 자신이 미쳐 버린 것 같았다. 미쳐 있는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더욱 괴로워야 했다.
--- 달의 이야기
다행인지 잠을 못 자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 시간만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버텼다. 자 버리면 주체적인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차라리 잠으로 도피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내가 하던 일은 인테리어 설계였는데, 예민한 나에게 그 일은 잘 맞다가도 치명적일 만큼 맞지 않았다. 혼자 작업을 하게 되는 날이 많았고, 그 덕분에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좋았다. 대략 1주에서 2주가량의 설계가 1차적으로 마무리되면 그것을 가지고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게 되는 수순이었다. 그 과정을 3~4회 정도 반복하면 설계가 얼추 마무리되는 단계에 이르는 식이었다. 내 생각에 나는 내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고, 그간 힘든 순간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름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문제의 트리거는 정확히 작년 10월에 만난 어떤 자매 클라이언트로 하여금 당겨지게 되었다.
그들은 예의가 없다거나 말을 막 한다거나 하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들은 아니었다. 다만 개인의 어떠한 욕구가 컸고, 워낙 큰 공사에 대한 설계를 보는 과정이었기에 나만큼 그들도 예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가 점점 나의 말을 잃고 자신감을 잃어갔던 것은 그녀들의 그런 영향이 분명히 있었다. 1차 미팅에서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2차 미팅을 준비해야 하는 한정적인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고,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벤치마킹을 해야 할 정도로 바빴고 작업에 열중이었다. 그렇게 2차 미팅에서 내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하나 생겼다. 1차 미팅 내용에서 언급했었던 그들의 의견이 2주 만에 손바닥 뒤집어지듯 반전되어 버렸고, 그들은 1차 미팅에서 자신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3차 미팅 때도, 4차 미팅 때도 그들은 계속해서 의견에 변화가 일었고, 이 일을 8년 이상 해 왔던 나로서는 이건 너무 과하다고 생각됐다. 지난 몇 개월간의 미팅들, 내가 작업에 들였던 시간, 그들이 한 이야기에 콘셉트를 맞추려 했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지 설계자인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을 정도로 전혀 다른 니즈들이 펼쳐지는 매 순간의 미팅들이었다.
"지난번에 딥한 컬러를 원하셨고, 사무실 위치가 이쯤이 좋을 것 같다고 강하게 어필하셔서 지정된 사항입니다."
"내가 언제 딥한 컬러를 원했죠?"
"작업 중에 확인차 시안 하나를 보내 드렸을 때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서 쭉 그 콘셉트에 맞춰 작업했어요."
"아니,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나는 이거보다 저게 좋겠는데..."
이게 아마 여덟 번째 미팅이었다. 그녀는 말을 뒤집개로 부침개 뒤집듯 아주 가볍게 상황을 반전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어쨌든 클라이언트의 의견이 최우선 반영되어야 했던 자리에서 나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억울했지만, 서로 간의 대화에서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는 거고,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한 수정의 과정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보통 비슷한 규모의 인테리어 설계 기간과 비교했을 때 이 프로젝트 설계 기간은 2배를 넘겼다. 이 때문에 공사 착공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그들이 인정해 줬으면 싶었다. 그러나 설계에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은 많은 데에 반면 공사 착공 시기를 늦추는 것에는 결사반대의 의지를 내비쳤던 그녀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건 마치 맥도널드에서 감자튀김을 시키면서 살이 안 찌겠죠? 이 감자튀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도널드에서 사 먹는 거니까 건강에 좋은 거겠죠? 하는 것 같았다. 팀장님 능력 좋으시니까 공기(공사기간)는 맞출 수 있겠죠? 나 이것도 저것도 설계 좀 바꾸고 싶은데 오픈 날짜를 미뤄지면 안 돼요. 하는 의견들.
미팅하는 자리에서 그러한 말들에 부담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오롯 나였다. 이 정도 경력을 가졌고, 이 정도 규모의 일을 하는데, 저 사람이 원하는 대로 얼마나 맞춰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에 따라 그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결정되는 것 같았다. 미팅 이후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매번 괴로워야 했다. 어차피 또 바뀌게 될 설계, 다음번에도 그 사람들의 말이 바뀌어서 나는 또 한마디 하지도 못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변경해 오겠다고 하게 될 뻔한 상황을 상상하게 되고, 말이 바뀌는 건 저쪽인데 그들의 그날 기분에 따라 은근히 나의 능력을 평가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것을 감당해야 할 걸 생각하면 심장이 덜컹덜컹 고장 난 것처럼 푹푹 쑤셨다. 기계가 오작동하듯 작업하는 나의 컨디션에 따른 능률도 삐걱대기 시작했다. 자잘하거나 커다란 미팅들을 통틀어 총 10회 정도, 10차 미팅을 하러 가는 날 차 안에서 나는 눈물이 났다. 너무 답답하고 무섭고 불안한 감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것은 정말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주변에서도 뻔히 이런 상황을 알고 있어도 누구 하나 나서서 클라이언트에게 도가 지나치다고 용감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게 우리 사회 시스템의 구조였다. 빌어먹을 사회 시스템. 나조차도 클라이언트에게 옳은 말 한마디 던지기 힘든 처지였다. 나 역시 그런 사회 시스템 속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평소와 같이 일을 하려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들을 켜 두고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내가 그린 여러 장의 도면들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키보드와 마우스에 손을 얹는 일마저 쉽지 않았다. 흘러가는 시간은 내 마음을 재촉하고, 나는 멍 때리던 일을 멈추고 나 자신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일하려고 앉았으면 일을 해야지 뭐 하는 거냐? 벌써 몇 시간이 지난 거야.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마감 날짜 못 맞춰. 디자이너가 마감 날짜를 못 맞추는 일은 누군가가 나의 능력을 평가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법이라고 늘 마음에 새기며 살던 탓에 나는 작은 약속도 허투루 여긴 적이 없었다. 어쩌다가 내가 약속을 물러야 하는 날엔 하루 종일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반대로 나와의 약속에 대해 소홀한 사람을 보게 되면 더 이상의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 것 같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극단적이라 느껴질 수 있지만 솔직하게 내가 가진 잣대라는 모양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모 아니면 도 같은, 5~6은 애매해서 싫고 0과 1이거나 9와 10으로만 선택하고 실행하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 할 거면 제대로, 안 할 거면 쳐다도 안 보는. 연인관계를 포함한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그런 아는 사이,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하는 말을 애매해서 싫었다. 미적지근한 연애라든가, 언젠가 트러블이 될 것 같은 문제들이 보이면 어차피 끝나게 될 인연인 듯한 마음에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칼같이 정리했다. 인간관계와 같은 공통의 권리가 존재하는 것에서 때라는 건 시간이 가져다주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내 성격이 확고한 편인데다가 급해서 그 시간을 기다리질 못했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실행해 버리는 추진력은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내 생각엔 장점으로 발휘될 때가 훨씬 많았긴 한데, 단점으로 발휘되는 순간엔 자기 혐오감이 엄청나기도 했다. 좋은 점만 발휘하며 살아갈 순 없는 걸까.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