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독한 우울증

02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

by 잉플

2009년, 2010년, 2011년... 2016년이 되도록 나는 심리상담센터와 정신의학과를 다녔어야 했다. 내 나이 열일곱에 맞이했던 생애 첫 우울증 진단이었다. 약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리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 덕분에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의 기억은 여전히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 지난 일이라고 웃어넘겨지지가 않는다. 가끔은 그냥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해 눈물 흘리기도 했다. 어쩌면 이조차 우울증이 완치되지 않았던 탓일지 모르겠다.


그런 두려움, 그 당시 감정의 무게가 2025년에 또다시 찾아왔다. 우울증은 원래 이런 건가? 한 10년 살면 또 걸리고, 10년 살면 또 걸리는 그런 병인 건가? 그럼 이번 30대를 잘 넘겨 봤자 40대가 되면 또 찾아오는 건가? 죽을 때까지? 주기적으로 매번? 무의식이었든 의식적이었든 이런 생각을 안 하는 날이 없었고, 이제는 업무를 조금도 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로라면 내 심장이 언제 멎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싶을 만큼 누군가가 내 심장과 뇌를 쥐고 터뜨리려는 듯한 느낌의 연속이었다. 마감일을 앞둔 채 찾아온 증상들은 약 10년 전 고등학교에서 느꼈던 참을 수 없는 압박감과 다를 것 없었다. 공황장애였다.


십수 년 전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나에게 이유 모를 현상들이 찾아온 순간부터 학교에 가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이 되었고, 수업시간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들리는 목소리들에 불안해서 혀를 물어뜯는 게 습관이 되었다. 정말로, 더 이상 그곳에 있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학교를 벗어났지만 내 증상은 점점 악화되어만 갔다. 밤엔 더 잠을 못 자게 됐고,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이 세상 어디에도 섞일 수 없을 것 같다는 감당 못 할 외로움까지 생겨났다. 그렇게 7년을 보낸 것이다. 나아져 가는 날, 나빠져 가는 날을 오고 가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담센터와 정신의학과를 오고 가며... 그렇게 7년을 보내니 이제 좀 살아 봐야겠다는 의지가 피어났었다. 남들보다 늦은 대학 생활을 보냈는데, 늦은 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무래도 그때 생긴 것 같다. 정신과 약을 끊고도 여전히 강박은 안고 살아왔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스스로를 나태하다고 비난했다. 언제나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댔다.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부모님께 고개를 드는 죄책감에 매일 밤을 울었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자해했다. 악순환의 연속인 7년이었다.


번아웃, 무기력함, 우울증, 공황장애. 일을 그만두기 직전까지 내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창 키워드는 거의 대부분이 이러했다. 번아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기력한 건 어떻게 해결하는지, 공황장애 증상이 맞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당장의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조언들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여기저기서 이야기하는 충분한 휴식이란 불가능했다. 맡은 일이 있는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프로젝트를 그냥 두고 함부로 쉴 수가 없었다.


"어른이란 뭘까."


언젠가 친구들과의 대화 중 뜬금없이 뱉었던 내 질문에 각자 다른 개념의 어른에 대한 정의들이 내려졌다. 나는 서른 살이 넘었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나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인데, 왜 이렇게 힘겨울까. 왜 이걸 견딜 힘이 없는 걸까? 나는 어른인데. 어른이란 뭘까라는 생각은 행복이란 뭘까로 발전했고 이후 삶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인생이란 뭘까.


"왜 살아야 하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뱉고도 놀란 말이었다. 왜 살아야 하는 건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무심코 뱉어 버린 말에 친구는 의아해했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 아닐까?"


태연한 척 대답한 친구였지만, 내 분위기를 읽은 게 분명했다. 이어 친구는 요즘 무슨 고민 있냐는 질문부터 시작해 내 가려운 곳을 긁어 주려 노력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었고,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더욱 쓸쓸했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라는 생각에 나도 공감하고 싶었다. 그게 안 돼서 더 씁쓸했나. 씻고 잘 준비를 하는 마당에 귀찮음이 온몸을 감쌌고, 그날 난 간신히 꾸역이며 잘 채비를 했다. 침대에 누워서 웹툰을 보며 웃고 있는 남편을 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가 엄습하는 답답함에 금세 코 밑으로 이불을 내렸다.


"나 우울해."

"왜 우울할까."

"몰라. 다 모르겠어."


남편은 내 머릴 쓰다듬으며 날 재우듯 시늉했다. 당장 잠이 안 와도 자는 척이라도 해야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언젠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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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이었다. 하루하루가 늘 나도 나를 모르겠는 식. 내 마음인데 내 마음 같지가 않고, 입맛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뭘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뭘 해야 즐거운지 모르겠고, 하루 종일 굶어서 배가 고파지기라도 하면 이런 상황에 배고픈 내가 더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감정은 본능적인데 생각은 너무 이성적이라 하루 종일 충돌하며 울적하고 괴로웠다. 신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이제 내 상태는 조금의 일상생활도 허락되지 않는 듯했다. 힘겹게 끌고 가고 있던 일을 그렇게 놓아 버렸다. 난 정말 입술을 깨물어 가며 마지막 제안서를 만들었고, 자료를 넘겨주고는 그대로 방바닥에 누워 버렸다. 딱딱한 바닥이 등에 닿는 느낌이 관짝에 누우면 이러려나 싶었다.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다 끝나 버리라고. 이대로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다고.


고등학교에서 느꼈던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끝내 그만두고도 나아진 게 없었던 걸 경험한 나로서는 일을 그만둘 때도 수백 번쯤 고민했다. 똑같은 상황을 마주할까 두려워서였다. 표면적으로는 일이 힘들어서 지친 것 같은데 일을 그만두고 쉬다가 과거의 7년을 그대로 되풀이하면 어떡하지란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힘들었다. 상담센터와 정신의학과를 전전하던 그 시간이 도돌이표로 돌아온다면, 나는 그때보다 더 처절한 좌절감을 느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나는 어른인데, 이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는 그런 어른인데, 7년 동안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니 말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과거에 정신과 좀 다녀본 경험이 있다고 난 스스로 절제할 수 없는 감정에 두 손을 들고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약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이대로 두면 그 빌어먹을 과거의 7년이 앞으로의 7년이 될 것 같았기에 하루빨리 정신의학과를 찾은 것이다.


이제 나는 백수가 되었다. 정신의학과에 다니는 백수. F코드를 진단받은 백수. 아픈 걸 자각하고 병원을 찾은 백수이자 정신병자. 나는 또 지독한 우울증에 걸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