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왜 나빠

03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

by 잉플

미성년의 나는 자살에 관심이 많았다. 잠 못 드는 하루하루, 퀭한 정신을 이고 무망감에 잠식된 채 그저 시간만 흘려보내던 나는 아무 쓸모없어 보였다.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가족들, 걱정하는 친구들, 내 근황을 궁금해하는 주변 사람들. 정말이지 사라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 자살 카페에 가입해 자살할 때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익명의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잠이 오지 않았던 새벽을 보냈다. 죽고 싶은 마음을 어디에 터놓을 수는 없었다. 누구라도 내가 죽고 싶다고 한들 죽으라고 할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오히려 그런 말을 내뱉을 때마다 돌아오는 건 스스로 만들어낸 죄책감이었다. 엄마를 두고, 아빠를 두고, 사랑하는 동생을 두고 죽으려는 내가 미치도록 밉고 싫었다. 그런데도 당시에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죽는 것뿐이었다. 한 번은 감정이 폭발해 엄마 앞에서 죽어 버리겠다, 나를 왜 낳았냐 소리쳤던 적이 있었다. 엄만 그대로 내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내 앞에서 울어 버리는 엄마를 보며 덩달아 울었다. 나는 정말 죽고 싶었던 걸까. 그때 왜 죽지 않았을까. 자신을 의심해 본 적 있다면 공감할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이 진짜일까? 내 진심일까? 고집인가? 죽고 싶었다면서 지금 살아있다는 게 당시 죽고 싶어 했던 나는 정말 죽고 싶었던 게 맞는 건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다. 우울, 무기력, 무망감, 상실감 같은 감정들과 함께하면서 난 역시 아무 쓸모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낮에 암막커튼을 쳐 놓고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쓸쓸한 시간을 흘려보낸다. 행하는 것 없이 하루가 가고, 자주 쿵쾅대는 심장과 생각이 많은 머리만 바쁘다. 우울하면 밥 생각이 안 나듯 생각도 생각이 안 났으면 좋겠다. 생각은 계속해서 피어오르는데, 잠재울 길이 없다. 하필 우울할 땐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점점 피폐해져 가기에 가끔은 머리를 뜯어내고 싶을 정도로 내가 하는 생각들이 혐오스럽다. 일을 그만두고, 매월 당연히 받아오던 월급이 들어오지 않게 됐을 때 나는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다. 각오하고 그만둔 것이래도 실제로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더 속이 쓰렸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우울해지니 사람을 안 만나고, 귀찮아지니 나갈 일이 없다. 나갈 일이 없으니 돈 쓸 일도 없고, 먹고 싶은 게 없어서 멀쩡할 때처럼 배달 음식으로 과소비할 일이 없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니 지독하게 어둡고 지저분한 감정들이 차츰 나의 내면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병원을 다니면서도 본질적인 것들은 금세 나아지지 않았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지옥 같은 하루하루가 나에게 또 나쁜 생각을 들이민다.


"왜 살까..."


한낮에도 어두운 집안에서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 꺼진 줄도 모른 채 중얼거렸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것들은 입 밖으로 내놓자마자 울음이 터져 버렸다. 베개를 싸매고 베갯잇 전면이 다 젖어 버릴 때까지도 눈물이 안 멈췄다. 기운이 빠졌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달아. 일어나 봐."


자고 있던 나를 깨운 건 엄마의 목소리였다. 울다 잠이 들어서 눈을 뜨자마자 부어오른 눈두덩이가 느껴졌다. 한낮에 내 휴대폰이 꺼져 있는 게 걱정이 됐던 엄마가 찾아온 것이었다.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 비상이었다. 십수 년 전 큰 우울증을 앓았던 딸이 또다시 그때의 모습과 겹쳐 보이니 얼마나 불안할지 내가 모를 리 없다. 과거의 엄마는 우울한 나 때문에 많이도 울었다. 엄만 아마 또 죽고 싶어 하는 딸이 나타날까 봐 초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 겪었던 일이라고 엄마도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았다. 엄만 내 눈이 왜 부었는지, 휴대폰이 왜 꺼져 있었는지 가타부타 묻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 누워서 같이 낮잠을 잤다. 조금도 떠들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재워 주셨다.


자살을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이 사회의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해 봤다. 뉴스나 다른 방송에서도 자살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을 만큼 우리 사회는 자살에 대해 오직 방어해야 한다는 인식만이 박혀 있다. 그렇다고 난 자살이 좋은 거라고 설명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엄마랑 저녁식사를 하던 중 태연히 꺼내 본 대화처럼 그저 순수한 이해로 바라봐 주길 바라는 것이다.


"자살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도 나쁜 거 같아."

"응?"

"자살하고 싶은 사람은 분명 자살하고 싶은 이유가 있는 걸 텐데, 그걸 이기적이라고 얘기하면 더 죽고 싶을 거 같아."

"자살이 어떻든 간에 가족들은 어떻게든 괜찮아졌으면 하는 마음인 거지."

"괜찮아지지 않으니까 죽고 싶은 거야. 괜찮아질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지금 눈앞에 있는 밥이나 꼭꼭 씹어 먹어."

"응."


아까 한껏 울었던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졌는지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흥분이 된다거나 긴장이 된다거나 하는 게 없었다. 엄마도 내 말에 태연히 받아쳤고, 나 역시 그냥 그렇다고의 바이브로 덤덤히 대화를 마쳤다. 죽고 싶다고 표현하는 사람에게 남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냐는, 그런 말은 삼갔으면 좋겠다. 죽고 싶다고 표현한 건 어떤 의미에서건 엄청난 용기를 낸 거라고 본다. 설사 그런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사는 사람이라도 꾸짖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침묵으로 일관하고 죽고 싶다고 표현하는 목소리를 들어주기만 했으면 좋겠다. 엄마의 말대로 입안에 담은 반찬들을 꼭꼭 씹으며 생각했다. 일단 지금은 아니야. 일단 지금은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하진 않아. 아까 울어서인지, 엄마랑 같이 밥을 먹어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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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만 아니라 누구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나는 특히 요즘은 정말로 꽤 자주 죽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몰라서 더 이상의 물건을 사들이지 않는다. 별로 하고 싶은 게 없는 상태라 쇼핑조차 하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나의 짐들을 더 늘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다음 달에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어서 너무 먼 약속도 부담이 된다. 그럴듯한 말들로 둘러대고 친구들 단톡방도 나와서 휴대폰 울릴 일이 잘 없는 요즘이지만 배경화면에 설정해 놓은 나의 반려견 사진을 들여다보려고 휴대폰을 들었다. 이 친구도 이제 노견이라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아 줘야 하고, 점점 더 건강에 신경 써 줄 일이 많아지고 있다. 나는 우선 내 자식 같은 강아지를 보고 버텨 볼 생각이다. 그다음은 모르겠고, 우선 지금은 내 강아지가 아프지 않게 잘 돌봐야 하니 정신을 놓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자 곧, 나는 마음이 싸늘해졌다.


"엄마..."


우리 엄마의 마음 같았다. 지금 우리 강아지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나는 또 하염없이 울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