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정말 일주일도 안 돼서 나는 또 무료함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무리 수업을 열심히 들어도 하루에 세 타임을 넘기기란 쉽지 않았고, 매 수업마다 예습해야 할 양이 많아지면서 한계를 맛봤다. 그리고 나는 또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 세 타임의 수업을 들어야만 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이하로 듣는 날엔 들어야 할 수업을 아예 안 들은 사람처럼 자책을 했다. 처음에 이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의 마음가짐은 흐릿해진 채 스스로에게 또 과한 숙제를 안겨 주고 있던 나에게 허탈함을 느끼면서도 다시 돌아갈 방법을 몰랐다.
하루 24시간을 불안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만큼 바빠야 할 것 같았다. 집안일이나 운동으로 하루를 빽빽이 채우기엔 한계가 있었다. 지금의 난 어떤 생각을 할 에너지조차 없게 나를 소진시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지쳐 봤던 경험을 했으면서도, 그래서 이렇게 무너졌으면서도 이 습관은 나에게 불치병처럼 굳어져 버린 것 같았다.
그날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고 새벽 4시께에 일어난 날이었다. 새벽 4시부터 뭘 해... 거실과 주방, 컴퓨터방을 전전하며 할 일을 찾던 나는 결국 운동을 미리 하자고 마음먹고 홈 트레이닝을 하는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매트를 깔아 놓고 몸을 뉘었다. 누워서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하는데 갑자기 뭐에 홀린 사람처럼 휴대폰을 집어 들고 구인구직 사이트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난 내가 지금 일을 할 상태가 아닌 걸 알았다. 사회생활을 하기엔 아직 정신적으로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았고, 이제 겨우 영어 공부나 하며 널널한 생활을 지내보기로 해 놓고서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갔다는 게 우스운 일이었다. 그저 구경이나 하려고 들어간 거라면 말도 안 한다. 나는 또 충동적으로, 그렇게 일을 벌였다. 생전 해 보지도 않은 일이었다. 물류창고를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새벽에 입고되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전산에 잡아넣는 일이었다. 이 일에 대한 후기 대부분은 돈 벌려다 병원비가 더 나왔다는 비중이 꽤 컸다. 어차피 잠도 잘 못 자는 마당에 새벽에 몸이나 움직여 일을 하고 집에 와서는 영어 수업을 듣는다면, 정확히 뭐가 채워지는진 몰라도 내 갈증이 해소될 것 같기는 했다. 새벽에 눈 뜨면 할 일이 없어서 괴로운데, 이 일을 하게 되면 무조건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거잖아. 그럼 괴로울 틈도 없지 않을까. 게다가 이 매장은 거의 대부분의 주말이 바쁘기 때문에 주말의 무료함 따위 느낄 겨를도 없을 것만 같았다. 영어 수업도 주말과 공휴일엔 공식적인 휴강날이었기에 주말에 일이라도 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 메리트를 느꼈다. 무엇보다 말했듯이 근무 시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새벽 6시 출근을 하면 오전 11시 전으로 끝이 나는 시스템이었다. 그럼 오후 시간에 다른 할 일을 하면 되는 일이라며 벌써 머릿속으로 시간 계산을 마쳤다.
"물류 창고 정리하는 일을 해 보려고 지원했어."
가장 먼저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다. 남편은 당황한 기색을 멈추지 못했다. 할 수 있겠어? 그 일 힘들 텐데. 새벽 출근이라고? 너무 빡센 거 아니야? 말이 없는 편인 남편에게서 연이은 질문이 쏟아졌다.
"사실 좀 충동적으로 지원하긴 했는데, 연락이 이미 왔어. 면접 날짜까지 잡았어."
남편이 결사 반대하기보다는 내심 응원을 해 줬으면 싶었는데, 이미 면접 날짜까지 잡았다는 말에 남편은 내 바람대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그래, 하게 되면... 좀 해 보다가 너무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왠지 얼마 안 하다가 그만뒀으면 싶은 뉘앙스로 들리긴 했지만, 일단 시작하는 것에 남편도 수긍한 것 같아서 마음은 놓였다. 갑자기 충동적인 결정에 대해 통보하듯 말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또 이해해 주는 남편에게 고맙기도 했다. 영어 수업을 듣기로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서 나는 결국 물류창고 정리 업무를 하는 구인 면접을 보러 간 날, 이제부터 이 일을 막노동이라고 칭하겠다. 면접을 보면서 들었던 이야기들로 미루어 봤을 때 하는 업무는 대체로 막노동에 가까운 일들이었다.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며 무거운 물건을 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고, 그걸 옮기는 일 또한 나의 업무가 되었다. 1~2분만 지나도 속눈썹이 얼어 버리는 냉동창고에 들어가는 일도, 들어가서 한 시간가량 냉동식품 정리를 해야 하는 일도 나의 필수 업무라는 이야길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 정도, 아니 그보다 빠르게도 일이 힘들어 도망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일인 듯 내 면접을 보던 매니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차례 대물었다. 괜찮겠어요? 일이 정말 힘들어요. 2주도 안 돼서 그만두는 일이 적지 않고, 혹시 달님께서도 힘들어서 그만둬야 할 것 같으면 시간을 두고 미리 말씀해 주셔야 하는데 정말 괜찮겠어요? 같은 반복되는 대물음에 살짝 겁이 나기는 했다.
"지금은 남는 게 시간이라 스케줄 근무도 유연하게 대처 가능하고요, 혹시라도 일이 너무 힘들면 그만두기 2주 전엔 꼭 말씀드릴게요. 근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긴 해요."
"오케이, 그러면! 언제부터 근무 가능하세요? 다음 주부터도 가능한가요?"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이라 곧 더 바빠질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듯했다. 매니저의 눈치가 당장이라도 근무 가능해요!라고 대답하길 원하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랑 연말에 잡힌 약속이 없어서 당장이라도 근무 가능해요."
"어머, 진짜요?"
"다음 주부터 출근할까요?"
"오늘 중으로 관련 내용 문자로 보내 드릴게요. 근무하시기 전에 온라인으로 들으셔야 할 교육도 있어서 시간이 좀 필요할 거예요. 근무는 다음 주부터 하는 걸로 해서 계약서 준비해 놓을게요."
사회생활을 하며 강압적인 약속들과 의무감에 치를 떨며 병이 났던 나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또 웃기게도 사회생활과 계약을 앞둔 사람이 되었다. 숨통 좀 돌리자고 원하지 않아도 일해야 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난 지 정말 얼마나 됐다고, 나는 또 그런 사회생활 시스템에 들어가기 위해 친히 면접까지 보러 와 다음 주부터 출근이란 걸 하게 됐더란다. 이건 좀 충동적이고, 강박적인 내 모습이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 그래서 쉬는 방법을 배웠어야 하는 사람이 또다시 쉬는 방법을 배우질 못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어쩌면 나는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할 일 없이 멀뚱히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 나에겐 너무 지옥 같았으니까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았던 것이고, 내 남편, 내 가족, 내 강아지를 두고 나는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우울하게 지낸다고 한들 해결되는 일은 없고 나로 인해 나의 주변까지 더욱 걱정과 우울한 기운들로 물들기만 하니까... 살기 위해 발악하는 몸부림이자 객기 비슷한, 충동과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끝내 또 무언가를 행해 버리는 나란 사람 그 자체였다.
난 다시 반복하게 될 은둔생활이 두려웠고, 다시는 고립되길 원치 않았었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은둔과 고립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전처럼 친구를 만나는 일이 나에겐 쉽지 않았고, 사람들을 대면하며 비위를 맞추고 일했던 때처럼 당장은 돌아갈 순 없었기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닌 업무를 선택해 운둔 또는 고립에 대해서 자기 합리화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 창고에 박혀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 확률은 극히 낮았고, 이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릴 이유는 없었으며, 그냥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존의 내 삶에서 벗어난 다른 삶을. 그렇게 정식으로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는 시작되었다. 이제 내 일상은 나는 실제로 가 보지도 않았던 워킹홀리데이 경험자들의 후기처럼 일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이 두 가지를 반복하는 하루하루로 남겨질 예정이었다. 근무 시간이 길지는 않아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 모아 뒀던 돈만 축내며 그냥저냥 심심하고 괴롭게 지낼 일은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하다가 힘들면 진짜 그만둬야 돼. 몸 병나기 전에."
"응."
그만둘 일 없겠지만 남편에게 대답은 그렇게 했다. 첫 출근을 앞두고 긴장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엄청나게 긴장하기는 했다. 막노동을 그렇게 꾸준히 해 본 적이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처음 하는 일이란 것에서 한 번 두려웠고, 그만둘 일 없어야 한다며 나에게 주문을 걸 듯 되뇌지만 이번에도 나의 선택을 번복하게 돼서 패배감을 맛보게 될까 봐 두 번 두려웠다. 첫 출근 전날까지 들으라는 교육을 들으며 계속해서 주문을 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2주도 안 돼서 때려치우는 일은 없어야 돼. 계약서를 작성하면 약속을 한 거고,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야. 최소 6개월은 어떻게든 버텨 보자. 6개월 뒤에 어떻게 할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도 돼. 마음의 소리는 나의 내면에서만 맴돌았다. 이곳은 나의 국가 한국이었지만, 그렇게 나는 외국인과 전화를 하며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이자 먹고사는 일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워홀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