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건가요?

05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

by 잉플

확실히 말하건대 바로 이 대목이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의 발단이 되었다. 새벽이었다. 어느새부턴가 잠드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충분히 자는 법을 잊어버린 듯이 두어 시간 만에 눈을 뜨게 돼서 알람이 울리는 걸 들은 지가 꽤 됐다. 새벽 2시 즈음이면 어김없이 눈을 떠서 아침까지 말똥말똥 새벽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시간엔 요즘 내 고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게임 대신 다른 무언가', '몰입할 수 있는 나에게 좋은 것'에 대해 생각하기 일쑤였다. 청소년 무렵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진로 고민을 하던 때와 비슷한 무게감으로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하던 일을 그만둔 마당에 앞으로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을 리가 만무했다. 뭘 하면서 먹고살아야 하지로 시작되는 생각들은 거의 대부분 꼭... 살아야 되는 건가 하는 망설여지는 결론에 이르곤 했다. 열정이 없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해낼 열의나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없어서 더 어려운 고민의 주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은 다른 날보다 유독 더 쌩쌩한 정신으로 새벽을 보내게 되었다. 그날은 신기한 날이었다. 평소처럼 잘 못 먹었고, 평소처럼 잘 못 잤고, 평소 같은 토끼잠을 자고 일어난 직후였는데 희한하게도 정신이 맑았다. 내가 복용 중인 약이 내게 더 잘 들기 시작한 걸까. 오랜만에 갖는 싱싱한 생각들이 나에게 없던 열정을 연료 삼아 고민을 마무리 지어가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 동안 막상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영어공부였다. 4년 전쯤 오전 시간을 이용해 전화영어를 신청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도 나름 3개월 정도는 수업을 못 듣게 된 날엔 보강 날짜까지 상담해 가며 열심히 했었지만 일에 치여 그만두게 됐었다. 이후 해외여행을 갈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 더 배워 뒀더라면, 이 상황에 내가 말을 더 유창하게 해서 더 유익한 정보를 얻었거나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배우다 만 것 같은 영어공부에 미련을 느끼고는 했다. 내가 원하는 건 아주 능통한 회화 수준인데, 늘 공부한다 해 놓고도 현실에 놓인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심신이 지쳐서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날들이 태반이었다. 어쩌면 이게 사실이자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자기 계발을 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한 핑계일지 모르겠다.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 나는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뒤져 보기 시작했다. 전화영어, 영어공부, 영어회화에 관련된 사이트들은 무수히 많았다. 언젠가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 봤던 이름부터 아예 생판 처음 듣는 이름의 아카데미도 있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사람들 리뷰를 많이 따져 볼 수 있는 네임드 있는 곳에서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저런 프로모션 혜택이 들러붙는 상품들도 인디한 곳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이트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난 이제 월급도 없으니 가격에 대한 메리트를 따져 보지 않을 수도 없었고,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수준이나 시간에 비해 얼마 정도를 투자해야 하는지 꼼꼼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웃기게도 그 새벽에 난 갑자기 어느 영어회화를 전문으로 하는 사이트 두 군데에다 냅다 레벨테스트를 예약해 놓고, 남은 새벽을 마저 자 보려고 누웠더랬다. 눈 뜨고 일어난 아침이면 레벨테스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좀 설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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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수강 신청을 하기 전 필수적으로 들어야 했던 레벨테스트의 결과는 나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딱 중간 정도의 스피킹 레벨을 가진 수준이라는 게 테스트의 결과였고, 두 군데 모두에서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은 내내 어느 곳에 수강 신청을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나에게 조금 더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곳, 그리고 적당한 가격을 요구하는 곳. 여러 가지 밸런스를 고려해 마침내 그날이 다 가기 전에 한 군데에 정식으로 6개월치 수강 신청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게임하는 시간에 따라오는 죄책감이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으로 대체되면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내일부터 시작될 주 5일간의 영어 공부가 나의 일상을 꽤 바쁘고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란 기대도 빠지지 않았다. 일을 놓아 버리고 지나치게 자유로웠던 일상에 조금은 강제적인 루틴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던 게 이렇게 해결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이게 너무 충동적인 선택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없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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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을 두고 한 가지 고민을 하지만, 고민 하나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나는 꽤 농도 깊은 고민을 한다고 생각한다. 친한 친구가 말하길 고민이 생기면,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회피하면 편하단다. 어차피 정말 해야 하는 일이라면 언젠가 스스로 해결하게 되게 마련이니 회피해서 큰 문제가 생긴 적도 없는데 고민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바엔 회피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의미였다. 그 이야길 들었을 땐 오랜 친구지만 그 친구가 낯설게 느껴졌다.


"회피를 어떻게 하는 건데?"

"그냥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고민하기 머리 아파. 때려치워~ 일단 누워서 넷플릭스나 봐. 때가 되면 하겠지~ 이런 식?"

"그러고 넷플릭스에 집중이 돼?"

"넷플릭스 보기 시작하면 못 멈춰. 너무 재밌어. 도파민 최고."


'아, 그러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전혀 공감되지 않았던 친구의 회피 기술이었다. 일단 나는 고민이 해결되기 전에 넷플릭스를 본다는 대목부터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라면 고민이나 할 일이 해결되지 않은 채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서 집중이 안 될 게 뻔했다. 그래서 보통은 고민의 시간이 그렇게 길지도 않다. 나름의 거금이 들어가야 했던 영어공부에 대한 결정도 주변 사람들에 비해 쾌속으로 진행된 편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시간에 대해 명상했던 적이 있다. 시간은 언제나 가고 있고, 나는 그 시간 위에서 함께 가게 된다. 계속해서 흐르는 시간을 두고 나는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에 대한 태도에 관련된 생각이었다. 시간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 어서 열심히 해야 돼!라는 말을 달고 살았을 정도로 매일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했던 시기도 있었고, 마음처럼 계획된 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애를 먹었던 시기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런 시간 안에 살고 있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시간을 따라 함께 가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더 많이 가기 전에 얼른 결정을 해서 실행하는 삶, 하다가 포기하더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으로부터 나의 시간을 지키는 일 자체가 습관이 되었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성향에 대해서 정말 좋은 추진력이다,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말로 나를 칭찬하며 대단하다고 얘기하는 적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나의 성향에 대해서 이건 정말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진 않았다. 남들보다 결정이 빨라서 시작이 빠를 수는 있었지만,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순간이 오게 되면 남들보다 덜 고민했고, 더 신중하지 못해서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자책을 한 적이 더 많았다. 그럴 때마다 매사 신중해져야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정말 깊게 고민해 봐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됐다. 내 기준에서 깊고 신중하게 고민한다는 것은 하루 종일이 최대치였다. 몇 날며칠을 끌고 가는 고민은 정말 몇 안 됐다. 예를 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자살하는 게 나쁜 건가에 대한 고찰이나 생각 정리라면 당연히 하루를 넘기며 고민해 보겠지만, 운동을 시작할까 말까, 공부를 시작할까 말까, 도서관을 갈까 말까, 옷을 살까 말까 같은 고민 따위에는 마치 날 머리 아프게 하는 고민을 해치워 버리듯이 '아, 몰라. 일단 해.'로 동결됐다. 머릿속에 하나의 고민이 있으면 다른 일을 못 하는 병명이 존재할까. 그런 병명이 존재한다면 나는 아마 그 병을 가진 환자일 것이고, 상상해 보건대 그 질병의 이름은 고민난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 가지 고민을 지속하기가 병적으로 어려운 증후군. 머리나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를 오래 품는 것을 극도로 힘들어하는 사람.


영어 수업의 시작은 내 일상에 없던 일정을 부여해 줬다. 많은 사회인들이 등록하는 플랫폼이라 강의 시간을 정하는 것도 매우 자유로웠다. 게다가 나는 원하면 언제든지 추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상품을 결제했어서 시간이 생기거나 심심하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 그저 강의 예약만 누르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이 긴장되거나 불안하거나 안정이 되지 않아서 감정적으로 힘이 들 때 복용하는 약이 있는데, 영어 수업 덕분에 그걸 먹어야 하는 날이 반으로 줄었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날들은 순조로웠다. 나에겐 영어 수업이 있으니까.


문제는 주말이었다. 주말과 공휴일은 공식적으로 휴강일이었고 때문에 수업을 예약할 수 없었다. 나의 시간은 이렇게나 넘쳐나는데, 하던 일이 없어지니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주말이 이렇게 지옥 같은 날이었던가. 나는 내 증세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할 일이 없어지면 이렇게나 불안한 나라는 것을 이날 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떡하지."

"뭘?"

"너무 심심해서 우울해."


주말이라 출근하지 않은 남편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 가서 컴퓨터를 껐다 켰다 반복하며 남편에게 말을 거니 끼고 있던 헤드셋을 빼고 게임을 하는 도중에도 나의 말에 대답해 주는 남편이었다.


"뭐, 같이 넷플릭스라도 볼까?"

"정말 땡기지가 않아."

"흠, 그럼 달이 좋아하는 뜨개질은?"

"손가락 아파서 쉬고 있어. 굳은살이 박였어."


일주일을 영어 수업과 뜨개질에만 매진하다가 손가락은 짓물렀고, 뜨개질로 더 이상의 도파민을 느낄 수가 없었다. 겨우 일주일이었다. 자는 시간 빼고 일주일을 내내 불태우다 보니 금세 질려 버린 것 같았다. 늘 이런 식이었다. 뭐 하나를 천천히 꾸준히 하는 게 힘들고,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오직 불태우고 완성하고 차갑게 식어 버리는 패턴에 익숙한 나였다. 아무리 나를 걱정하는 남편이라도 이 우울감을 해결해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에게도 이날은 소중한 휴일이었기에 그 시간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오빠 게임해. 나 누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또다시 암막커튼이 쳐진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냥 이대로 이불속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안 가 숨이 안 쉬어지는 답답함에 이불을 어깨까지 내려 두고 평소에 잘 때 듣는 수면 명상 유튜브를 찾아 틀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흐르는 명상음 소리, 감은 눈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지닌 채 마음으로 글자를 새겼다.


그만. 우울한 거 제발 그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