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밤 10시께에 취침하기 위해 누우면 자다가도 12시에 깨고, 새벽 2시에 깨고, 새벽 4시에 깨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토끼잠을 자는 요즘의 나에게 새벽 출근은 정말이지 하나도 무리가 되지 않는 조건이라 생각했다. 내 하루의 일정은 그리 빠듯하진 않았지만 첫 출근을 하는 오늘은 꽤나 만족스러운 일정을 가진 사람이 된 것 같아 잠시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으로 제일 먼저 스트레칭을 해 주고, 씻고 출근 준비를 하다 보면 5시 30분이 될 터였다. 근무지까지는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 출근시간까지 10분의 여유를 두고 도착하면 완벽한 계획이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당연히 있었으나 오히려 원래의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그 느낌이 신선하게 느껴져 좋았다. 의도치 않게 미라클 모닝 루틴을 가지게 되어 버린 상황이 마음에 안정감을 가져다줄 지경이었다. 업무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좌절감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대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나에게 또 다른 업무로 인한 안정감이라니 아이러니하기 그지없었다.
돌이켜 보면 청소년기의 우울증으로 약 7년을 은둔하며 고립된 생활을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그 굴레를 벗어났던 이후로는 늘어지거나 쉬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하고는 했다. 언제나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효율적인 시간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유지하며 하루, 일 년과 같은 주어진 세월을 보냈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굳어 버리나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던 증상을 느껴 일을 놓고 쉬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도대체 나는 왜 다시 일을 찾았으며 이런 것에 안정감 따위를 느끼고 있는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첫 출근길, 기온이 낮아져서 피부가 아린 바람을 가르며 열심히 걸었다. 아무도 없는 그 시간의 길거리는 너무 아무도 없어서 혼자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차도 안 다니는데 그냥 건너 버릴까 싶었지만, 급하지 않았기에 노래를 들으며 신호를 기다렸다.
언젠간 이 눈물이 멈추길-
언젠간 이 어둠이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이 눈물을 말려 주길-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10대의 어느 계절에 알게 된 노래를 아직까지 듣고 있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의 의미가 와닿는 것들을 주로 듣는데, 요즘의 나를 위로하는 가사는 그때처럼 다시 아이유의 someday.
날 이젠 도와주길 하늘이 제발 도와주길-
나 혼자서만 이겨내기가 점점 더 자신이 없어져요-
이 가사와 같은 생각이 들 때는 늘 두려움이 극에 달한 나의 상태이자 삶을 놓고 싶은 욕구가 차오르는 순간들이었다. 내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있지만 결국엔 이 모든 감정과 상황을 나 혼자서 견뎌야 했고, 끝내 날 일으키는 건 다른 누가 아닌 나임을 알기에. 그런 나에 대한 자신이 없을 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버텨야 하는 건 오롯 나라는 것을 알기에. 이 새벽에 출근하는 나를 보면 누군가는 참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지금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을 나의 내면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냥, 나는, 아직 죽을 용기가 없다. 내가 죽기에는 내 발목을 붙잡는 것들이 이 세상에 꽤 많고, 그러니 열심히 살아야지가 아니라 그저 계속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는 내 모습이 누군가가 보기엔 바빠 보이는 거겠지. 바빠 보이니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테고. 그렇게 껍데기 같은 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다 '그래, 내가 뭐라고.' 우주의 먼지 한 톨보다도 작은 존재 주제에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이면 어떻고 도망치는 사람이면 어떻고 일단 중요한 건 그냥 먼지보다 작은 존재라도 내 발목을 붙잡는 것들을 핑계 삼더라도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잖아. 사실 불현듯 언제 또 죽고 싶어서 죽을 결심을 할지 몰라 너무 먼 약속도 못 잡고 있는 나지만(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너무 슬플까 봐), 일단은, 정말 일단 최대한 오늘은 살아남아 보기 위해 불안으로부터 도망쳐 보는 거지.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한 나, 생산적이라고 느껴지는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무가치해지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극도의 불안이 주는 영향은 가히 대단해서 정말로 그 순간 충동적인 선택으로 죽어 버리기도 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에, 애초에 불안의 싹을 자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잘못된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머리로는 알면서도, 당장의 마음이 불안하기에 나는 또 어리석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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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으로 얻은 것은 무릎과 손가락 위의 보라색 멍, 약간의 근육통, 불행하다 생각할 겨를도 없는 신체적 바쁨이었다. 저녁에 내 몸에 든 멍을 본 남편이 엄청나게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이 일 안 하면 안 되냐고 말해 버릴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솔직히 일은 빡센데, 아직 첫날이라 잘 모르겠어. 멍은 약 바르면 금방 없어질걸. 하다가 정 못 버티겠으면 그만두지, 뭐."
심드렁하게 얘기했지만, 남편의 걱정스러운 말을 듣기 싫어서 연막 치듯 뱉어 놓은 말들이었다. 남편은 눈치를 채고 그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만 했다. 참 내 남편다운 행동이었다.
"오빠, 그래도 일하고 와서 영어 예습도 하고 수업도 듣고 그러다 보면 낮에 졸리더라고. 잠깐 자고 일어나면 약간 개운한 거 같기도 하고, 바쁘니까 좀 나아. 우울한 시간이 줄어든 거 같아서."
"다행이야."
"오빤 오늘 바빴어?"
"바쁘다가 말다가 바쁘다가 말다가. 달이한테 카톡 보낼 땐 안 바쁜 시간, 달이한테 카톡 못 보낼 땐 바쁜 시간."
그렇게 서로의 하루를 떠들다가 약기운에 잠이 들 것 같았다. 내일모레까지 연이어 출근을 해야 했다. 스케줄 근무라 규칙적인 근무 일정은 아니었지만, 원체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살던 나였기에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날의 수면은 토끼잠만 여전할 뿐, 아무런 꿈을 꾸지 않았다. 지금 미세하게 느껴지는 근육통은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더 아파지다 나아지겠지. 내 눈물도 언젠간 멈추고, 내 마음도 오늘보다 아파지는 날이 찾아오더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 완전히 나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