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 (싫)다

08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

by 잉플

나이가 들면 유연해진단다.

세월이 흐르면 익숙해진단다.


인생을 먼저 살아 본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말들은 들을 때마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나이가 들면 유연해져야 하는 건가? 세월이 흐르면 익숙해져야 하는 건가? 나는 더 나아져야만 하는 건가? 다른 어른들처럼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하고, 웬만한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털어 버릴 줄 알아야 하는 걸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내 나이도 해가 바뀔수록 점점 들어가는데, 나는 어떤 게 달라지고 있는 건지, 우울한 마음을 만성처럼 달고 사는 인생이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데. 그런 위로의 말을 듣는다고 해서 지금 내 힘든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빤 우울하면 어떻게 해?"


어느 주말,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붙들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볼 때 이 사람은 무척이나 덤덤한 사람이라 겉으로 감정이 크게 드러난 적도 없었다. 크게 화를 내는 걸 본 적도, 크게 우울해하는 걸 본 적도, 이유 없이 기운이 없다거나 하질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서인지 원래부터 타고난 성격이 그런 건지, 내 남편은 겉보기에 아주 안정형의 인간이었다.


"우울?"

"우울한 적 없어?"

"슬펐던 적은 있었는데."

"그게 언젠데?"

"우리 강아지들 무지개다리 건넜을 때."


그건 당연히 매우 슬픈 일이잖아, 이 사람아.


"슬퍼서 우울감이 오래 지속됐어?"

"우울감이 뭔지 잘 모르겠네. 슬픈 감정은 알겠는데."

정말이지 내 남편이지만 신기해서 절로 박수를 치고 싶었다. 이후 남편에게 캐물어 보니 슬픔, 불안, 기쁨, 즐거움 같은 감정을 순간적으로 경험한 바는 있지만 내가 느끼는 우울의 영역이나 따분함, 무력감에 대한 경험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 말로도 나는 어떻게 사람이 우울하지 않을 수가 있지? 그럼 오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나? 하니 그렇다더라.


"힘들다고 생각은 해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우와. 우와, 진짜 신기하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내 옆에 있었구나. 어느 책에선가, 방송에선가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건 나에게 굉장히 센세이션 한 이야기였다. 멘탈이 건강한 사람들은 살면서 죽고 싶은 생각을 보통 안 한다는 내용이었고, 그 비율이 무려 약 70% 정도라는 거다. 그럼 이 세상에 있는 30%의 사람들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다고? 나는 그 생각을 아주 습관처럼 하는데? 그게 내 남편이었다니.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 정말, 진심으로 남편이 부러웠다. 그리고 이야기의 70%의 비율이 얼추 맞겠다는 확신이 든 건 우리 가족들에게 질문을 한 이후였다. 아빠, 엄마, 동생 모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다는 대답을 늘어놓았고, 나는 순간 정말로 외로웠다. 그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 없이 살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지만서도 정말 외롭기도 했다. 아직도 경이로울 수준이다. 어떻게 살면서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있냐고.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힘든 일이 없을 리 없고, 슬픈 일이 없을 리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나는 그 사람들이 그 힘듦과 슬픔, 고난과 역경을 어떤 마음으로 넘기며 살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할 뿐이었다. 사실 그들이 그 방법을 자세히 알려준다 한들 내가 그 레시피대로 내 삶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결코 없긴 하다.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면 단 하루만이라도 그 사람들의 마음으로 살아 보고 싶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라면 이 세상이 좀 아름다울까 싶었다. 내 인생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려나 싶었다. 삶이 더 즐거우려나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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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장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한때 어느 청춘들에게는 아픔을 이겨내는 문구로 이롭게 작용했을 문장이 나에게는 늘 마음의 걸림돌 같았다. 청춘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끝날 청춘이란 세월이 두려웠다. 나이가 더 들어서도 아프다면, 그때는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아프니까 노년이다'는 사람들에게 정말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문장으로 느껴졌다. 나는 내가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없다는 게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내가 나를 믿어 줘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 방법을 모르겠는걸. 나아지는 듯해서 기대를 했다가 하루아침에 바닥을 치는 감정은 늘 나에게 배신감을 안겼고, 그게 나를 점점 더 믿지 못하겠는 이유였다. 오늘 좀 괜찮아도 내일 안 괜찮을 수 있으니까라는 꼬리표가 항상 오늘을 따라다녔다. 어제 난 괜찮지 않았고, 오늘은 좀 괜찮지만, 내일을 걱정하고 있는 지금처럼. 이런 고통을 견디다 보면 나도 모르게 뭐가 좀 강해지고 있는 걸까? 될 듯 말 듯한 어떠한 것들에 대해 끌탕끌탕 마음을 졸이고, 그냥 존나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눈부시게 환한 빛이 내 인생에도 들어와 줄까? 이러한 기대를 못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기대들이 나에게 줬던 것은 허탈감과 실망감뿐이었으니까.


나의 환경은 특별히 모나거나 패인 구석이 없는 평범한 편에 속하지만, 나는 우울한 삶을 보내고 있다. 이 세상의 누군가는 내 인생을 부러워할 것 같다. 나의 남편, 가족들, 친구들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존재하는 인생이라서, 특별히 먹고사는 것에 대해 궁핍할 정도로 가난한 인생이 아니라서, 팔다리가 멀쩡히 달려 있고, 나의 환경처럼 크게 모나지 않은 외모에 적당한 목소리라서?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병원에 가고, 마음먹고 시간을 내서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는 그런 인생이라서.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부러워할 것 없다고, 나는 그런 것들이 지금 하나도 행복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이런 사람이 부럽기 때문에.


환경이 어떻든, 외모가 어떻든 나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잘 나가든 못 나가든 나의 인생을,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그들을 부러워하기 때문에 또 조심스럽다. 내가 감히 그 사람들의 전부를 모르면서 부러워해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에 함부로 그들 앞에서는 부러움을 표현할 수가 없다. 나도 나를 사랑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서 네가 참 부러워. 나의 청춘을 사랑하기 힘든 내가 너를 부러워하고 있어. 너를 닮고 싶다. 미안해, 너를 함부로 부러워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