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기분, 돌아오는 마음

“눈물 대신 손을 흔들며”

by 잉글맘

2024년 1월.
대구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남대문시장에 들러 우리 가족은 함께 빈대떡, 호떡을 먹었다.

남편과 막걸리도 한 병 나눠마셨다. 만난지 일주일 밖에 안되었는데, 또 헤어지다니...

매일 같이 있을 때는 남편이 귀찮더니, 떨어져 지내니 영국과 한국 거리만큼 남편이 더 그리웠다.


나는 딸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우리는 거의 붙어 다녔다.

열 살.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모두 이곳에서 다닌 딸.

이젠 전혀 다른 세상, 영국에서 살아야 한다. 언어도, 문화도, 친구도 모두 낯선 땅. 설렘보단 걱정이 더 많았다.

아이는 무언가를 직감한 듯 자꾸 내 손을 찾았다.

마지막 밤, 침대에 나란히 누워 딸을 꼭 안았다.


“한영아, 처음에는 힘들고 서툴겠지만, 괜찮아질 거야.
엄마 금방 갈게. 학교 잘 다니고 있어.
엄마가 언제나 응원할게. 곧 보자.”


울지 않기로 약속했다. 곧 다시 만날 테니까.
그러나 이별은 언제나 가슴 깊은 곳에서 울음을 만든다.


인천공항 출국장.
우리 가족처럼, 이곳에서도 누군가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이.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 아버지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이였지만, 그의 눈물을 보며 나도 울컥했다.
슬픔, 안타까움, 그리움, 책임감…
가족을 보내는 마음은 말없이 통했다.



남편이 “영국으로 가자”고 말한 건 2023년 5월 말경이었다.
결혼 후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 막연히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막상 현실로 닥치니 걱정이 앞섰다.


무엇보다도 “영국에서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지?”
한국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내던 공부방 사업을 접는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한국에서 십수 년을 살았다.
그동안 가족도, 친구도, 고향도 모두 뒤로하고 나와 함께 살아준 남편에게,
나는 마음속 깊이 늘 미안했다.


이제는 그가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이제는 그곳에서 우리도 함께 살아보자고,마음먹었다.

남편은 영국으로 돌아가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독일어, 프랑스어, 한국어까지 할 줄 아는 그에게 “제2외국어 교사 부족”이라는 소식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25년 전, 고등학생 때 배운 언어 실력을 이제 와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낯선 시스템, 교사로서의 책임, 외로움 속에서 남편은 매일 아침과 저녁,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우당탕탕,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한국에서 남은 일들을 마무리해야 했다.

아파트는 팔기 어려워 전세로 전환해 계약을 마쳤고,
영국으로 보낼 짐 10박스를 부치고,하나둘 남은 물건들을 정리했다.
서류를 떼고,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1월 26일, 서대구역.
엄마, 아빠, 언니가 배웅 나왔다.
내 마음은 이미 가족과 재회할 영국으로 달려가 있었기에
남겨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뒤돌아보았다.
엄마가 눈을 만지고 있었다.
아마도 눈물을 닦고 계셨을 것 같다.
무뚝뚝한 우리 가족.
서툰 감정 표현이 들키기라도 할까 봐 우리는 황급히 작별을 끝냈다.


지금, 나는 인천공항 출국장에 와 있다.
혼자지만,
곧 남편과 딸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슬픔보다는 설렘.
그 마음이 미안해서,
나는 오늘도 철부지 딸로 남아 있다.
엄마 앞에서는, 아직도 서툴기만 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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