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두 가족.. 시부모님과 함께
그동안 한국에서의 짐 정리로 힘겨웠던 나에게 남편은 편하게 영국으로 오라는 선물로 아시아나항공 직항 티켓을 끊어주었다. 영국으로 갈 때마다 가장 저렴한 외국계 항공사로 경유를 통해 들어갔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시아나항공 기내식으로 먹은 비빔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14시간의 비행 시간 이후, 드디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딸아이의 학교 적응 문제로 비자는 추후 여름에 신청하기로 하고, 지금은 비자 없이 몇 개월 지낼 예정이라 조금 긴장되었다. 하지만 여러 질문들을 대비해 서류들을 프린트해 간 덕분에 무사히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남편이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고작 못 본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한국에 홀로 남겨진 자의 슬픔이 컸던지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남편을 보니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나왔다.
'이제 남편, 나, 그리고 딸 한영이 세 명이 한 가족으로 완전체가 되는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런던 히드로 공항. 크리스마스때마다 늘 즐겨보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의 시작과 끝 장면에 나오는 바로 그 장소다. 히드로 공항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반기고 포옹하는 순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이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우리 일상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는 남편이 준 꽃다발을 안고 서로 얼굴을 부비며 포옹을 하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행복한 여주인공처럼.
장거리 비행으로 몸이 피곤했던지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벌써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내가 깬 것을 확인한 딸아이는 침대에 점프를 하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 집은 영국에서 살게 될 경우를 대비해 시부모님과 돈을 합쳐 산 곳이다. 우리가 영국으로 돌아갈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서 그동안 시부모님 두 분께서 이 큰 집에서 살고 계셨다.
방은 총 5개, 화장실 3개, 거실 2개, 그리고 큰 정원에는 울창한 나무들과 정성스레 가꾼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시부모님과 우리 가족 3명이 모두 지내기에는 충분한 크기였고, 거실 공간도 나뉘어져 있어서 독립성도 보장되었다.
주방과 베란다에는 냉장고가 3개나 있어서 함께 쓰는 소스류, 우유, 잼 등은 공동 냉장고에, 시부모님과 우리 가족의 음식들은 각자의 냉장고에 보관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간식들과 재료들을 넣을 공간도 구분해서 넣었다.
하지만 요리할 수 있는 곳이 하나다 보니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한국 요리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고 후각이 예민하셔서 요리 후 냄새나는 부분이 특히 신경이 많이 쓰였다.
한 번은 시부모님께서 외출하시는 틈을 타서 김치찌개를 끓여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셔서 남편과 나, 한영이 모두 너무 놀라서 황급히 창문을 열고 냄새 제거 스프레이를 연신 뿌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한국에 살 때 내 집에서 맘껏 하고 싶은 요리를 하며 지내던 내 공간이 그리워졌다.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이었지만, 시부모님과는 멀리 떨어져 살아서 함께 지낸 시간이 많지가 않았다. 매년 한국과 영국에서 2번 정도 만나 휴가를 함께 보내긴 했지만, 서로 한 집에서 부대끼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과는 다른 것 아니겠는가.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는 무조건 내가 시어머니께서 만들어 놓은 룰을 따르는 게 가장 쉬운 길이라고 판단했다.
결혼 12년 차에 시집살이가 웬 말인가!
한 지붕 아래 시부모님과 우리 가족 세 명.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