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돈이 아닌 시간을 번다
영국에 오니, 우리는 돈이 아닌 시간을 부자로 얻게 되었다.
한국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던 시절,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였다.
대기자 명단이 늘어나고 공부방 인기가 높아질 때마다 사업 확장 제안이 잇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 더 크게 벌어볼 기회를 잡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더 부자가 되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의 우리는 돈보다는 ‘시간부자’다.
영국의 방학 문화
남편이 공립학교 교사라 아이와 방학이 같아,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영국의 방학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여름방학은 한국과 비슷하게 7월 중순경에 시작해 8월 말까지 이어진다. 겨울방학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2주 정도로, 한국에 비하면 짧다. 대신 학기 중간마다 1~2주의 짧은 방학이 있다.
한국처럼 ‘부모 동행 체험학습’ 제도가 없어, 학기 중에 여행을 가려면 특별한 사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방학 중에는 여행 경비가 비싸지고, 간혹 ‘아이 아픔’이나 ‘가족 경조사’ 같은 이유로 휴가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여행 이야기를 하다 거짓말이 들통나는 경우도 있어, 15만 원가량의 벌금을 내기도 한다.
얼마 전, 딸아이 친구가 수두에 걸렸다며 3일간 결석했다. 등교길에 “괜찮아?” 하고 묻자, 그 친구는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씩 웃으며 “사실 여행 갔다 왔어” 하고 자랑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
한국과 닮은 교사 업무
한국과 영국 모두, 교사의 업무 강도는 만만치 않다. 매일 수업과 학생 관리, 그리고 빼곡한 서류 작업까지. 영국도 낮은 급여와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교사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국가에서 처우 개선을 위해 재정 지원을 하지만, 교사 이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남편의 새로운 도전
남편이 한국에서 16년의 생활을 정리하고 영국으로 돌아오기로 했을 때, 영국 정부의 보조금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제2외국어 교사를 대상으로 1년간 연수와 월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영국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제2외국어를 선택해 수업을 듣고, 외국어 교사는 보통 2개 이상 언어를 가르친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프랑스어, 독일어를 배웠고, 2006년 한국으로 오면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어가 가장 능숙하지만, 안타깝게도 영국 공립학교에 한국어 과목은 없다.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교사로 근무하며 교육청 교사 연수까지 맡았던 16년 경력도, 영국에서는 ‘신규 교사’다. 매일 부장교사의 피드백을 받고 수업 계획을 수정하며, 가끔은 교장·교감의 수업 참관도 받는다.
첫 직장인 학교에서 남편은 프랑스어, 독일어, 그리고 스페인어까지 3개 언어를 가르치게 되었지만, 스페인어는 사실 가르칠 만큼의 실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초임 교사에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완벽주의 부장교사와의 하루
함께 일하는 부장교사는 일중독에 가까운 완벽주의자다. 남편이 제출한 계획안을 꼼꼼하게 수정하고, 평일 저녁은 물론 주말에도 이메일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나, 좋은 선생님이 아닌 것 같아.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학교가 원하는 만큼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매일 피드백을 받다 보니 남편의 자신감은 점점 바닥을 향했다. 아내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하는 일뿐이었다.
시간부자이자 친구부자
5월 마지막 주, 1주일간의 짧은 방학이 시작됐다. 우리는 런던 여행을 가기로 했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은 우리 가족. 게다가 런던에 사는 친구들이 셋이나 있어 숙소 걱정도 없다.
“시간부자에, 친구부자네.”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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