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불편한 집
다시 한국으로
짧았지만 길게 느껴진 6개월, 그리움은 공항에서부터 차올랐다.
딸아이가 방학을 하자마자 배우자 비자 신청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며칠 머물며 서류를 준비하고 대구로 내려왔다. 6개월 떨어져 지낸 건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국에 있으면서 한국 가족들이 더 그리웠다.
역시 떨어져 있어야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걸까.
더위 속에서도 부모님의 부지런함은 여전했다.
돌아갈 우리집이 없어 부모님이 계신 친정집에서 짐을 풀었다. 대구의 여름은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영국의 여름 기온은 20도 안팎이어서, 출국 전 뉴스에서 들은 ‘뜨거운 날씨’ 경고가 우리에겐 그저 웃음거리였다.
영국 가정에는 에어컨이 거의 없고, 선풍기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25도를 넘으면 영국인들은 힘겨워한다.
마당에는 수확한 들깨가 햇볕을 쬐고 있었고, 창고에는 마늘·양파·감자·당근·고추가 가득했다. 허리도 아프신 부모님이 이 무더위에 농사일을 해내신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허리도 아프시면서 이 무더위에 농사일을 어떻게 다 하신건지..
16명이 모인 뜨거운 식탁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TV 소리가 어우러진 여름날의 저녁.
“우리 왔어요! 잘 지냈어요?” 인사를 나누자마자 가족들은 각자 주방과 창고로 흩어졌다.
거실에 큰 상 두 개가 펼쳐지고 음식이 가득 차려졌다. 부모님, 형제들, 조카들까지 16명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에어콘을 틀었는데도 인원 수가 많아서 인지 뜨거운 음식을 조리해서 그런지 공기가 후덥지근 했다.
음식 씹는 소리와 거실 중앙 TV 소리만이 흘렀다.
부모님과 3주를 지내야 했다.
우리 가족은 에어컨이 있는 거실 바닥에서 자기로 했다. 다른 방들은 에어콘이 없어서 잘 수 있는 상황이 되질 못했다. 3주 정도는 지낼 수 있겠지…
하지만 새벽 4시, 안방에서 뉴스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새벽녘에 화장실을 자주 다니시고, 청력이 나빠져 큰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셨다. TV 뉴스와 아버지의 불평이 겹쳐져 누가 더 부정적인지 겨루는 듯했다.
6시쯤 어머니의 ‘아침밥 준비 소리’가 우당탕, 덜커덩 들렸다. 아침을 하기 싫어서 그릇들을 내동댕이 치는 것 처럼 들려서 나는 누워 있기가 불편해졌다. 시차 적응으로 새벽에 겨우 잠든 우리에게는 고요한 아침이 간절했다.
부모님 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표현하시는 걸 알면서도 서운함이 먼저 생겼다.
기대와 현실의 거리
도착 후에도 부모님은 농작물 수확으로 바빴다. 몸이 편찮으셔도 농사일을 그만두라는 말은 듣지 않으셨다.평생 부지런함으로 우리를 키워내시고 자수성가한 부모님의 삶을 존경한다. 하지만, 먼 타국에서 돌아온 딸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밭농사가 더 우선시 되는 것 같아서 나의 서러움이 폭발했다. 일주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여서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이번에 가면 부모님과 뭘 할까?” 설렘으로 기다린 내가 바보 같았다. 화가 나서 짐을 싸고 호텔로 향하는 택시를 불렀다. 부모님은 내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셨다.
물과 기름 같은 생활 패턴
같은 집에 살아도, 시간의 리듬은 전혀 달랐다.
3주간 함께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건 큰 착각이었다.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부모님과, 9시가 넘어 일어나는 우리 가족의 생활 패턴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다.
집안 곳곳에 스민 청국장 냄새, 늘 켜져 있는 TV 소리, 소란스러운 부엌, 밖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농작물들…
그들의 하루는 이미 꽉 차 있었고, 우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부모님이 옆에 계셔도, 마음만큼은 고아가 된 듯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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