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가 되다
비자 결과가 늦어지면서 남편과 딸은 먼저 영국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결혼 전까지 살던 친정집 내 방에 누워 있는데, 낯설기만 했다. 태어나서 결혼 전까지 37년이나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지낸 공간이었는데도 그랬다.
9월 3일 아침 7시.
밤새 이어진 소음을 무시하며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늘 그렇듯 휴대폰을 켜 영국 이민국에서 온 메일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그토록 기다리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클릭했다. 그러나 화면에 뜬 글을 읽는 순간, 숨이 막혔다.
“이건 아닐 거야.”
과호흡이 몰려오고 가슴은 조여 왔다. 눈을 비비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읽어도 결과는 같았다.
영국은 새벽 시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잠결에 어리둥절해하는 남편은 이유를 묻지만, 목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뜨겁고 무거운 것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와,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낙오자가 된 기분
결혼생활 12년차에 닥친 우리의 고난.
연애 포함해서 15년이나 알고 지낸 이 영국 남자의 나라에서 나를 거부했다.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영국에서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10살 딸 한영이.
16년 살 던 한국을 떠나 영국에서 공립학교 신규 교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남편.
나는 혼자 삶의 경로를 이탈해 아무도 살지 않는 이상한 섬에 떨어진 낙오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혼자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 여행용 가방에 들고 온 여름 옷가지들이 방 구석에서 떠날 채비를 하다가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나를 조롱하듯 쳐다보는 듯 했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때, 방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어라. 식기 전에 빨리 와서 먹어라.”
나는 눈물을 닦고 식탁에 앉아 아무 일 없는 듯 밥을 삼켰다. 부모님은 내 기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알아차리지 않은 척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땐 무관심이 오히려 고마웠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비자 거부 사유는 재정 요건 미비였다.
첨부한 서류가 인정받으려면 단 5일 일찍 제출했어야 했다.
나는 8월 5일에 인터뷰를 했지만, 기준은 7월 31일까지였다.
아뿔싸!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실수였으니 어필로 승산이 적을 뿐더러, 설령 진행한다 해도 1년은 걸린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영국 사람들은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걸까?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
나는 매일 울었다.
처음에는 부정했고, 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 자신에게, 상황에, 그리고 주변 모든 것에 화가 났다.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의 일상 속에서 나만 시간에 갇힌 듯 멈춰 있었다.
영국이라는 국가는 나를 짐으로 여기는구나.
내 역량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자존감은 바닥을 헤매며 흩어지고 있었다.
#국제커플 #영국 #한국 #가족이야기 #나는 혼자다 #이별 #비자거부 #자존감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