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상공을 지나 프랑스로

무너진 모래성

by 잉글맘

남편은 결국 공황장애로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게 되었다.

영상통화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었지만, 내가 직접 도와줄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럴수록 화가 났고, 화는 곧 불안으로 번져 나를 잠식했다.

비자 거절 이후, 남편의 학교 월급 6개월 명세서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는데, 그 과정의 반환점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거니?”


나는 아픈 사람에게 던져서는 안 될 질문들을 쏟아냈다. 남편은 깊은 실망을 내비쳤다.

부부란 결국 서로를 먼저 돌보는 존재가 아니냐며. 그러나 우리 둘 다 이미 지쳐, 상대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기대어 줄 수 없었다. 결국 싸움 끝에 잠시 연락을 멈추기로 했다.


다른 문화, 언어를 이겨낼 만큼 우리는 너무 사랑했고, 그 사랑은 정말 단단한 바위와도 같아 어떠한 어려움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모래성은 작은 비바람에도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사랑의 깊이는 얕았고 너무 가벼웠다.



버팀목이 된 딸아이

매일 이어가던 통화는 오직 딸아이와만 했다. 의젓하게 자기 생활을 지켜가는 딸은 오히려 나와 남편보다 든든했다. 학교에서는 정서적 불안을 우려해 주 1회 미술치료 수업을 마련해 주었고, 선생님들의 세심한 관심 속에 아이는 점차 학교를 즐겁게 다니기 시작했다.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어린 딸의 당당한 일상이었다.



파리에서 만난 우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는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국 상공을 지나며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서글펐다. 떠돌이처럼 유랑하는 나의 삶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언제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은 사랑과 환영의 포옹으로 가득했다.

이번에 딸아이는 나에게 미리 신신당부를 했다. 차분하게 서로 만나서 인사를 나누자고 말이다. 태국에서 엄마가 서럽게 통곡하듯 우는 모습을 봤던 게 적잖게 충격이었던 것이었다.


두 시간 뒤, 출국장에서 딸아이와 남편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딸의 부탁대로 차분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사랑의 도시 파리. 크리스마스 불빛으로 빛나는 거리에서 우리 가족은 다시 마주 섰다.
혹시 이곳에서, 무너져가던 우리 관계에 작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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