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벤치

인더가든(In the Garden)

by 잉글맘

2011년 겨울.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늦은 밤, 바람은 차갑고 공기는 날카로웠다.
35살의 싱글이었던 나는 외국인지원센터 팀장으로 일에 파묻혀 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일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탓에 늘 긴장했고, 주변의 시선은 차가웠다.

“노처녀 히스테리.”
그 단어는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도 나는 애써 무시하며 버텼다.
일만이 내 세계의 중심이었다.



연말을 맞아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시간 속에서,
나는 행사가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랐다.
집에 가서 조용히 쉬고 싶었다.

파티가 끝날 무렵, 한 학생이 다가와 물었다.
“제 친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들어와도 될까요?”
나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빨간색 자켓을 입은 키 큰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친구에게서 선생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또렷한 한국어였다.
순간, 놀라움이 입가에 번졌다.
“어디서 한국어를 배우셨어요? 정말 잘하시네요.”
그렇게 나의 첫인사는 미소로 바뀌었다.

그날이,남편과 나의 인연이 시작된 날이었다.


나는 직장에서 만난 외국인들과는
센터 밖에서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겠다는 철칙이 있었다.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 세워둔 경계선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경계선 밖에서 나를 만났다.
그래서 방어벽이 조금 낮아졌다.

집에 돌아오니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초대해줘서 고마웠어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틀 뒤, 우리는 ‘인더가든’이라는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식물이 가득한,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의 첫 대화가 시작되었다.
말들이 참 부드럽게 흘렀고, 그의 이야기는 이상할 만큼 귀에 편하게 닿았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대화가 맛있다’는 감정을 알았다.



인더가든. In the Gargen
그곳은 우리에게 추억의 카페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와 함께할 수 없는 시간이 온다면,
나는 그곳에 벤치를 하나 두고 싶다.

First met here. Much loved and missed.


살아 있을 때,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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