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학교에는 엄격한 벌점 제도가 있다.
규칙을 어기면 조용히 점수가 쌓이고, 어느 순간 경고장이 날아온다.
하지만 그 겨울, 남편에게 가장 무서웠던 건 학교의 벌점이 아니었다.
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집에 계시는 엄마였다.
대학교를 들어가면서 남편은 부모님 집에서 독립을 했고,
졸업 이후에는 한국행을 선택해 16년을 외국에서 살았으니
남편이 부모님과 함께 산 것은 고등학교까지가 전부였다.
시부모님과 남편은 사이가 너무 다정하고 좋았다. 한국에서 늘 영국으로 1년에 2번은 왔으니, 짧은 휴가기간이라서 함께 하는 순간들이 늘 애틋했다.
111번지 영국 집 안에서는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부엌에 들어오면 다른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켰고,
식탁에 둘러앉아도 대화는 날씨 이야기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한 지붕 아래 세 세대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싸운 적은 없었다.
문을 세게 닫은 적도,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막 건너온 딸아이는 모든 것이 낯설어 온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집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전혀 못 느끼는지 눈치 없이 더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만 했다.
시부모님의 얼굴에는 많은 할 얘기가 있는 듯 보였지만 참는 게 보였고, 불편한 이야기는 삼키셨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긴장된 집안 분위기
웃고 있지만 마음으로 웃지 않는 얼굴들,
“괜찮아”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진짜 감정.
그 중간에 남편이 시부모님과 딸아이 사이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는 울음이 터지셨고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좋은 할머니가 아닌 것 같다며..
남편은 가방을 싸던 시어머니를 만류하며 눈물이 터졌고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말을 건넸다.
미안하다고..
딸과 남편은 조용히 집을 나와 2시간 남짓 떨어진 바닷가 근처 호텔에 짐을 풀었다.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 괜찮은 거지?”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다만 서로를 너무 배려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가족이야기 #영국일상 #한지붕삼세대 #다함께살아요 #가족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