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영국 음식과 딸의 한국 입맛

by 잉글맘

시어머니는 일주일의 메뉴를 미리 정하신다.
그리고 수요일이면, 그 메뉴에 필요한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신다.

카레, 파스타, 스튜, 피시파이.


영국 음식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음식이 식탁에 오른다.
시어머니는 요리책을 펼쳐 인원수에 맞게 정확히 계량하고,
저울로 무게를 재어 딱 필요한 만큼만 요리하신다.
레시피는 늘 정확하게 지켜진다. 맛이 있어서 조금 더 먹고 싶어도

그날의 음식은 접시에 놓인 만큼이 전부다.
남는 것도, 더 있는 것도 없다.


남편은 그 ‘딱 맞음’이 싫다고 한다.
한국에서 17년을 살며 정이 넘치게 음식을 더 얹어 주는 문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늘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음식을 차려주셨고,
잘 먹는 남편을 보며
“음식 하는 보람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곁에서 한참을 바라보며 흐뭇해하셨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딸에게 영국으로 돌아온 첫 해의 음식들은
냄새도, 맛도 모두 낯설었다.


시아버지는 어떤 음식을 드시든 늘 최고의 칭찬을 건네신다.
“오늘 음식 정말 맛있네.”
“이건 먹어본 것 중에 최고야.”
접시는 늘 말끔히 비워졌다.


반면 딸은 한 입을 먹고 나서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어머니의 음식 위에 핫소스를 듬뿍 뿌려 먹었다.


그날도 우리는 모두 식탁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대화는 없었고,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만이 흘렀다.

손녀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려보면 스파게티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시어머니가 주도적으로 요리를 정해 두 분 이서만 드셨다.
지금은 고려해야 할 사람이 많아졌다.
입맛도, 양도, 반응도 모두 달랐다.

시어머니는 많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손녀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음식에 까다로운 손녀딸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날의 침묵은 음식 때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조용해졌을 뿐이다.


그날 이후, 식탁은 더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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