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절약왕 시절 이야기 (1)
카톡 거지방이 한참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해서 소비하는 형태의 욜로 (You Only Live Once)가 유행했었는데 코로나 시기를 거쳐 물가가 폭등하고 지갑 사정이 어려워지자 절약을 최우선으로 하며 돈을 쓰면 욕을 먹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의 거지방이 인기를 끈 모양이다.
나도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절약을 최우선으로 하고 살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지 싶을 정도였다.
내가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 일본으로 떠났을 때 딱 천만 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돈으로 1년 동안 생활할 예정이었는데 어림잡으면 한 달에 약 80만 원을 생활비로 사용한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필요한 물건을 사느라 예상한 것보다 훨씬 돈 들어가는 일이 많았고 통장 잔고가 쑥쑥 줄어들자 절약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당장 집에 불이 안 켜져서 직접 형광등을 사 왔는데 문제는 내 키가 너무 작아서 전혀 천장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지고 온 책들을 모두 꺼내 올라가 보아도 내 팔이 천장까지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나는 사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자가 필요했다.
그 당시 나는 일본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아주 용감한 행동을 했는데, 바로 옆집에 가서 의자를 빌리려고 시도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이웃끼리 왕래가 있는 곳도 있기야 하겠지만 내가 겪은 몇 년간 본 일본은, 특히 1인 거주가 많은 맨션에서는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를 뿐 아니라 서로 엮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일본에서 나는 과감하게 옆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분명 옆집에는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는데 옆집 사람은 내가 울린 초인종 소리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럼 포기를 했어야 하는데 나는 거기다 대고 "옆집인데요~~~ 이사 왔는데 의자 좀 빌릴 수 있을까요~~~"라고 소리치며 현관문을 쿵쿵 두드렸다.
훗날 나처럼 현관문을 쿵쿵 두드리며 사람을 부르는 방식이 야쿠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나는 아무리 두드려도 나오지 않는 옆집 사람을 의아해하며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안에 분명히 있는 거 같은데 왜 안 나오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우리 집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면 나라도 안 나갈 것이다.
빈 손으로 돌아왔어도 집에 형광등은 달아야 했고 결국 나는 집 근처의 슈퍼에서 가장 저렴한 500엔짜리 플라스틱 의자를 사 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 키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작았고 플라스틱 의자를 밟고 올라가도 전혀 천장에 손이 닿지 않았다. (슬프다) 할 수 없이 나는 의자 위에 책들을 높게 쌓고 아슬아슬하게 올라가서는 손끝으로 형광등을 툭툭 쳐가며 땀을 뻘뻘 흘리는 1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간신히 형광등을 달 수 있었다.
자칫 쌓아 올린 책들이 미끄러지기라도 했으면 병원비가 더 나왔을 텐데 그 당시에는 그런 만일의 상황에 대한 걱정도 없이 오로지 형광등을 달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 그때는 그냥 눈앞에 닥친 일을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심지어 아무리 생각해도 책상도 식탁도 없는 집에 의자가 필요 없다는 생각에 형광등을 달고 나서 바로 슈퍼(후쿠오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체인 디스카운트 슈퍼마켓 미스터 맥스)에 가서 의자를 반품을 했다... 슈퍼에서 반품 안 해줄까 봐 심장이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슈퍼 주인분, 의자 반품해서 정말 죄송해요... 제가 그때 진짜 돈이 없었어요.
그 당시 나는 하루에 천 엔 (우리나라 돈으로 약 만원 정도)을 사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어디에서 우연히 쿠키 하나를 받았는데 원래는 그걸로 점심을 때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쿠키 하나로 배가 찰리가 만무했고 고민 고민을 하다가 후회할 걸 알면서도 편의점에 가서 삼각 김밥을 하나 사 먹었다.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서 나와 삼각 김밥을 까서 한입 먹었는데 정말 꿀맛이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삼각김밥이었다.
그 소중한 삼각김밥을 먹으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내 김!!!"이라고 육성으로 소리치며 잡으려 했지만 놓쳤고, 김이 떨어지자마자 어디 숨어있었는지 길고양이가 달려와서는 내 김을 먹었다.
게다가 이 길고양이가 자신의 귀여운 얼굴을 무기로 내 곁에 와서 조금 더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귀여운 건 이길 수가 없다. 나는 정말 큰맘 먹고 미워할 수 없는 길고양이에게 밥 한 귀퉁이를 떼어서 줬다. 콩 한쪽도 나눠 먹으니 맛은 있었지만 길고양이가 이 삼각김밥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아는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같이 길에 서서 삼각 김밥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