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운전면허는 없지만
어쩌다가 버스 운전이 하고 싶어 졌을까 돌이켜보면 생각의 시작은 결국 나는 일이 하기 싫은 거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할 때마다 월차를 쓸까 말까 고민을 한다. 오늘은 진짜 쉬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니까 일이 즐겁지가 않다. 근데 또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즐겁게 일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버스 운전기사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운전면허를 갖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전철이 잘 되어 있어서 나는 거의 전철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버스를 탈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 최근에 공항버스도 탔고 그냥 버스도 탈 일이 있었는데 기사님들이 참 멋져 보였다. 물론 전철 기사님들도 멋지긴 한데, 왜인지 나는 요즘 버스 운전기사님들이 멋지다. 제복 스타일로 각 잡힌 모자와 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을 하는 모습이 말이다. 능숙하게 운전을 하고 정차를 할 때마다 거울로 승객들을 세심히 살피며 운행하는 모습은 버스가 하나의 마을처럼 보이고, 기사님이 권력자이자 통솔자이며 승객들은 모두 그를 믿고 따른다. 나를 포함한 승객들은 목적지까지 태워주신 기사님께 버스를 내릴 때마다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건넨다. 기사님도 친절하게 인사해 주신다. 나도 그런 일이 하고 싶다. 내가 맡은 일을 잘하고, 사람들이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나도 그들에게 따뜻함을 건네는 그런 일.
머릿속에서 내가 버스 운전기사가 되어 운전을 하고 승객들을 상대하는 생각을 하면 행복하다. "할머니~ 이제 출발하니까 조심하세요", "아가야 다음에 너 내릴 정류장이니까 정차 버튼 눌러봐~" 이런 말을 마이크로 하는 상상도 한다. 안전 운전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추운 날이나 더운 날이나 승객들을 태우고 달리는 모습도 그려본다. 꼭 그렇게 되고 싶은 기분까지 든다. 근데 그냥 거기까지다. 나는 버스 운전은커녕 그냥 자동차 운전하는 면허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게 된 데에는 아주 긴 사연이 있다.
일단 우리 언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언니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현명하고 숫자에도 밝고 아무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좋은 수식어를 갖다 붙이고 싶을 정도로 나의 우상이다. 그런 언니가 스무 살이 넘어 운전면허를 땄을 때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내가 차로 10분 거리 정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토익 시험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운전 경험이 없던 언니는 시험장에 버스 타고 간다는 나를 굳이 굳이 붙잡아 자신이 태워다 준다며 차에 태웠다.
나를 태우고 호기롭게 나선 언니는 시험장을 코앞에 두고 길을 잘못 들었고, 당황한 나머지 백미러를 보면서 운전을 하는 바람에 급기야 순간적이지만 중앙선을 살짝 넘기도 했다. 아찔. 내가 당황하면 언니가 사고를 낼까 봐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앞뒤로 다른 차가 오지 않는지 필사적으로 살폈다. 롤러코스터보다 무서웠고 영화 파묘보다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때 나는 언니를 보며 저렇게 똑똑한 사람도 운전을 하면 바보가 되는데 나 같은 똥멍청이가 운전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운전면허를 딸 생각조차도 안 하고 살았다.
20대 때는 종종 주변 사람들이 왜 스무 살 때 면허 안 땄냐고 묻기도 했지만 별로 개이치 않았고 (심지어 약간 왜 남들이 다 딴다고 나도 따야 하는데 라는 아웃사이더적 마인드까지 장착), 그러고 나서는 일본으로 넘어왔고, 30대에도 운전할 생각은 안 했었다. 그냥 나는 평생이 뚜벅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근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 지금은 괜찮지만 아이가 좀 더 크면 운전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그러다가 '난 절대 운전 못해.'가 '난 운전 안 해.'가 되고, '운전할지도?'가 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버스 기사님들을 보고 심장에 큐피드의 화살이 꽂혀버린 것이다.
아직 30대지만 살면서 많은 생각이 변했다. 매일 살고, 매일 죽어 지금의 내가 있는 기분이다. 운전을 할 생각도 못했던 내가 있었고 운전을 할지도 모른다는 내가 있었고 버스 기사가 되고 싶은 내가 여기에 있다.
2026년 1월 13일 인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