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원망스러워
'글을 써야지, 써야 해, 써야 산다...'
생각하면서도 매일 잠깐의 시간도 내지 못하고 있다가 그럼 읽기라도 하자 하며 요 며칠 책을 뒤적거렸다. 훌륭한 작가들은 왜 이렇게 다들 글을 잘 쓰는지 책을 읽으면서 감탄이 나왔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 읽으면서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에 깊이를 느낀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밥을 먹고, 어떤 하루를 보내며 어떤 인생을 살면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건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작가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단순하게 말하는 문장 밖에 쓸 줄을 모른다. 아무도 내 글에 관심이 없는데 나 혼자 내 글이 창피하다. 나도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것이다. 누구는 이렇게 멋진 글을 쓰고, 누구는 이렇게 멋진 인생을 사는데 나만 "ㅋㅋㅋ" "ㅎㅎㅎ"가 붙는 메신저에 툭 던져 버리고 마는 한마디 한마디 같은 글밖에 쓸 수 없는 거 같아 슬퍼진다.
한 때 (사실 지금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원망했(하고있) 다. 그건 내가 무라카미 히로키의 에세이를 읽었을 때였다. 그가 그린 그의 하루를 보며 그가 싫어졌고 세상까지 미워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굵직한 작품을 쓴 업적이 있으면서도 40년 이상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6시간씩 글을 쓴다. 오후에는 달리기를 하고 단순한 일상과 휴식을 유지하면서 다음날을 위해 일찍 잠이 든다는데 내가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천재가 노력까지 한다면 나 같은 게으른 미물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땅을 쳐보기도 하고 소리를 쳐보기도 해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보다 명백하게 훌륭한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속이 상한다. 비단 무라카미 하루키만 원망스러운 게 아니다. 진작에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해 큰돈을 번 사람의 후일담을 들을 때도 같은 기분이 든다. 스스로가 적당히 뒤처지다 못해 또랑에 빠지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나는 매일 아기 울음소리에 간신히 눈을 떠 찌푸린 인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감자돌이의 회사 가기 싫어 송을 부르면서 회사에 가서 일하기 싫어 죽겠다고 노래를 부르며 업무를 한다. 퇴근하면 닥치는 대로 어찌어찌 육아를 하다가 아기가 잠을 자면 핸드폰이나 주야장천 붙들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다.
"바보! 멍청이!"
마음속에 메아리가 울린다.
한심한 나라도 어쩔 도리가 없어서 나는 이렇게라도 글을 써본다. 어제는 왜인지 모르게 그러고 싶어서 샤프를 샀다. 얼마 만에 쓰는 샤프인지 이질감까지 들었다. 오후에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새로 산 샤프로 글을 써봤다. 너무 오랜만에 쓰는 샤프라 그런지 소름이 돋았다. '이 느낌이 맞나?' 몸이 거부하는 기분이었다. 0.3mm를 사고 싶었는데 고민하다가 0.5mm를 구매했다. 0.5가 남은 샤프가 별로 없는 게 인기가 많은 거 같아서 그 인기에 편승해 보려는 꼼수였다. 샤프로 노트에 글자를 몇 자 끄적거리다가 다시 스마트폰에 눈이 갔다.
"바보! 멍청이!!"
메아리는 점점 작아지고 유튜브를 보며 낄낄 거리는 내 웃음소리는 커져갔다.
2026년 1월 24일 인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