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새해가 되고 또 갓생 바람이 몰아쳤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벽장에 처박아두고 바를 생각도 안 하던 수분 크림을 얼굴에 듬뿍 올린다. 그러고는 손을 위로 올려 기지개 한번 쭈욱. 왼쪽으로 몸통 한번 비틀고 오른쪽으로 몸통 한번 비틀어본다. 그 상태로 거실로 나와 따뜻한 물 먼저 마시고 비타민도 챙겨 먹는다.
뜨거운 커피를 내리고, 아침으로 계란을 삶아 먹었다. 어제 아침에는 남편 챙겨주면서 나도 얇게 슬라이스 한 오이를 얹은 참치 샌드위치를 먹었다. 감자칼로 얇게 오이를 슬라이스 해놓고 보니 스스로의 요리 창의성이 감탄스러웠다. 분명 어디서 본 걸 따라한 걸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칭찬이 하고 싶어 졌었다. 아마 일찍 일어난 남편을 챙겨줬다는 것부터가 칭찬받고 싶은 시점이었을 거다. 그저께는 아주 작게 썬 스팸과 계란 스크램블을 넣은 주먹밥이었다. 맛이 있나? 싱거운가? 짠가? 이러면서 주먹밥을 만들었다가 풀었다가 한참 실랑이를 하면서 아침을 먹었다.
갓생 바람은 비정기적으로 분다. 보통은 새해가 되면 몇 가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정해서 실행해 보는 정도다. 놀랍게도 세월이 흘러가는 거랑은 별개로 새해 목표는 늘 비슷한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절약이나 영어 공부, 건강 챙기기, 글쓰기 같은 것들이다. 새해가 아니어도 미디어나 책을 통해 감명받는 일이 있으면 갓생을 하고 싶어진다. 우울이 극에 달했을 때도 갓생이 치료법이다. 갓생, 갓생, 노래를 부르면서 한동안은 카카오톡 프로필 메신저도 갓생으로 바꿔두는 지경에 이른다.
갓생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유난을 떤다. 인간은 언젠가 죽으니까 딱히 갓생이 아니어도 죽음은 올 걸 알기에 외치는 것뿐이다. 그런 안일한 마음 정도니까 갓생 열풍은 금방 또 식곤 한다. 너무 추레하게 다니지 말자고 외모를 가꿔보다가 "가꿔도 왜 이렇게 못생겼지?"라는 마음이 들면. 영어나 한자를 몇 자 들여다볼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쇼츠를 보게 되면. 용기를 내 글을 써보다가 아무도 읽어 주지 않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되면. 그때 갓생을 잊는다.
아뿔싸 아기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유리의 성을 들으며 감성을 충전하고 있던 나는 급하게 음악을 껐다. 아기는 나에게 와서 아침 인사를 하고 (아침식사로 빵과 바나나 그리고 딸기를 달라고 말하는 것) 터벅터벅 걸어가 아기상어 노래를 튼다. '아기 상어 뚜루두 뚜뚜 귀여운 뚜루두 뚜뚜' 내가 의도한 적 없는 빠른 비트와 함께 또 하루가 시작된다.
며칠 전 눈 오는 날 사진.
2026년 1월 29일 인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