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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_살아있는 무대 '카페 난다랑'

피나바우쉬의카페 뮐러(Café Müller)

독일의 무용가이자 현대무용의 혁명가라 불리는 피나 바우쉬(Pina bausch)는 부모님이 작은 여관을 운영하셨는데 여관에 딸린 카페 뮐러(Café Müller)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그곳을 찾는 사람들, 서로의 관계들에 대해 바라보며 많은 상상을 했다고 한다.


기존 발레의 유미주의(aestheticism), 탐미주의(耽美主義)와 다르게 자유로운 개인의 정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1910년 이후 '이사도라 던컨'을 통하여 모던댄스(modern dance)가 등장하였고 이후 피나바우쉬는 모던댄스에 무용수들 개인의 개성이 더 자유롭고 선명하게 표출될 수 있도록 연극적인 요소를 춤에 도입하였다.


이것이 바로 탄츠테아터(Tanz theater)이다.


피나바우쉬는 탄츠테아터를 통해 카페 뮐러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드라마를 1940년 초연작 '카페 뮐러'에 녹여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었다.


유치원을 다닐 무렵부터 선명히 기억나는 어머니의 카페 '난다랑'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한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살아있는 극장이자 유년시절의 전부이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그때의 어린 나이이다.


故 김광석 님이 먼길을 가시기 이틀 전에도 늦은 밤 난다랑을 찾아 커피 한잔 드시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으시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얼마전에 들었다.


내가 조금만 더 스스로 어른에게 소통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면,


그를 위대한 아티스트 이전에 무대 밖에서 만난 한 사람으로 바라보며 무언가 묻기 이전에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난다랑에 왔는지 생각해보고 좋은 마음 담아 커피 한잔 대접해드렸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유치원이 끝나면 늘 어머니와 손잡고서 카페 난다랑으로 달려갔다. 초기의 난다랑은 파트타임 근무자가 없어 어머니가 카페를 혼자 운영하셨기에 나도 집보다 난다랑으로 먼저 갔다.


카운터에 긴 원형의자에 올라타 있으면 내 앞에 사이다나 콜라로 만든 아이스크림 파르페가 놓인다. 그 황홀한 맛은 미처 글로 옮기기가 어렵다.




기억 중에 하루는 카페 밖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젊은 이모 삼촌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오늘따라 경찰 아저씨들의 모습도 무서워 보인다.


카페 유리창 전면을 가득 메우는 뿌연 연기에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고 누군가 코를 수건으로 가리고 급히 난다랑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아 처음 손님을 만나면 얼른 도망치면서 다락방으로 피신했는데 바로 앞에 원두를 갈고 계신 어머니 모습에 마음이 풀리기를 한번, 두 번째로 전해오는 헤이즐넛 커피의 향은 어린 녀석이 맡아도 어찌나 좋은지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가도 이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참 곱고 아름다운 어머니 모습이 창 밖의 모든 괴음을 잠재웠다.




그 당시 혜화로터리에는 심심치 않게 최루탄 냄새가 났지만 사람들은 그냥 휴지로 코를 막고 덤덤하게 가던 길들을 가며 크게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런 아수라장도 오래가지 못하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청자켓이 정말 멋진 대학생 형도 보이고 긴 머리가 참 아름다운 누나들도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보는 나도 신날 정도로 즐거워한다.


다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을 입김으로 조심스럽게 불며 그렇게 저녁시간을 채워간다.



카페 안쪽 공간도 따로 있어 그곳으로 들어가면 마치 정말 옛날로 시간여행을 간 듯한데 앉아 있는 손님들을 보면 '나는 예술인이다'라고 이마에 써져 있었다.


영화감독 아저씨는 베레모 모자를 머리에 쓴 건지 얹은 건지 도통 모르겠는 모습에 심각한 표정을 더해서 무슨 열띤 토론을 그렇게 하는지 나도 덩달아 심각해진다.


또 반대편에 보이는 사람은 표지부터 범상치 않은 잡지를 들고 있는데 무용수 부럽지 않은 포즈로 다리를 꼬고 우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따라 해 보면 내 목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서로 뒤섞여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카페의 배경음악 삼아 다락방에서 숙제도 하고 간식도 먹고 있으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운다.


언제 잠들었는지 흐르는 침을 닦고 눈을 떠보면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앉아있을 작정인 정예 멤버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빨리 사람들을 보내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즈음이면 예정에 없었던 통기타 연주가 들리기도 하였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들이 눈을 감고 다 같이 그 곡을 음미하고..


그때, 난다랑의 모습은 그랬다.




최근에 난다랑이 있던 곳을 찾아갔을 때 그 마법 같던 공간은 어디 가고 우리은행 건물이 지어져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장 최근의 기억들이 선명할 것 같음에도

그 예전 난다랑의 모든 분위기는 눈을 감고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가장  풍성하게 떠올려진다.


훗날 이 모습들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보자 하는 생각이 크게 밀려오지만 기억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작품을 무대에 올린 적은 있어도 아직 난다랑의 이야기 그대로를 작품으로 발현하지는 못했다.


몸만 성장했지 아직도 미성숙한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며 이렇게 긴장이 되는데


함부로 표현 못할 어머니의 사연들, 어떠한 미장센으로도 대체할  없는  아련한 카페의 모습을 지금의 기억보다도 못하게 망쳐버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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