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나는 눈이 나쁘다. 어렸을 적부터 난시가 심해 5살 즈음 안경을 썼다. 달에 한 번은 안과를 가고 그렇게 몇 번이 되면 렌즈를 바꿨다. 난시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지금은 코앞에 있는 글자도 보이지 않는다. 시야에 집중하지 않으면 상은 늘 두 개로 흩어져버린다. 국어시험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이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지문의 글자가 전부 두 개로 겹쳐 보이던 게 아직도 악몽처럼 남아있다. 안경을 쓰는 것도 싫었다. 렌즈에 먼지 한 톨 붙는 걸 못 견뎌 늘 주머니에 안경닦이를 가지고 다녔다. 또, 눈이 워낙 나쁜 탓에 안경만 쓰면 눈이 너무나 작아 보였다. 그런 내가 스물이 되자마자 한 일은 콘택트렌즈를 맞추는 일이었다.
라식 혹은 라섹은 시술에 대한 두려움 내지 불안감으로 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꽤 무던한 성격이다. 렌즈의 불편함과 눈의 피로쯤은 안경을 벗고 지낼 수 있다는 기쁨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일상적인 풍경을 내 흐린 시야가 아닌, 사진 속 장면처럼 또렷하게 바라보고 싶었다.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기, 그걸 한 번 겪어보고 싶었다. 렌즈를 끼고 잠들어봤자 아침에 다가오는 건 뻑뻑한 이물감과 흐린 시야뿐이었다.
내가 하지 않는 일이 아닌, 할 수 없는 일을 향한 열망은 보다 컸다. 무척 사소한 일이기는 하나 원래 사람은 이토록 일상적인 일에 매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전히 시술은 생각이 없으니 하는 수 없었다. 흐릿하고 번져있는, 안경이 제자리를 벗어나 있기라도 하면 그를 찾는 데만도 한참이 걸리는 시야로 아침을 맞이하는 수밖에는.
요즘 날이 추워져 일을 하다 피곤해지면 종종 전기장판이 깔려있는 침대로 슬그머니 들어간다. 누우면 30분은 자겠다는 요량이다. 눕기 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안경을 벗는 것이다. 눈앞이 흐려지면 그제야 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니 늘 그랬다. 글을 쓰다 잠깐 제자리에서 쉴 때도, 가끔 안경을 낀 채로 향한 카페나 도서관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항상 안경부터 벗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흐린 시야는 내게 쉬는 시간이 되었다. 눈앞이 안 보이면 불안함이 아닌 평온함이 나를 찾아온다. 잠을 청할 때도 온통 번지고 섞인 천장과 벽의 모습이 내게 고요를 준다. 눈을 떴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흐릿한 이불의 형상 속에서 나른한 기분을 맞는다. 뭉개진 시야와 따뜻한 침대 속에서 가끔은 다시 잠들기도 하며 평화를 느낀다.
그토록 바랐던 선명한 시야로 맞는 아침을 상상해 본다. 이제는 그리 내키지 않았다. 안경을 찾는 수고로움과 함께 지금과 같은 아늑한 아침도 없을 테 였다.
불청객처럼 여기던 난시가 가져오는 풍경이 요즘은 꽤 좋다. 여행을 마치고 늦은 시각 공항으로 돌아와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차창 너머로 가로등과 건물의 불빛, 차의 불빛이 한 데 섞여 번졌다. 아름다웠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토록 비사실적, 감각적인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준 내 시력이 만족스러웠다. 이것이 나의 일부분이었기에 나는 또렷한 시야로는 볼 수 없는 추상화 같은 세계를 지각할 수 있었다.
사소함에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건 가끔 복잡한 마음을 일으킨다. 떨칠 수 없는, 난시 같은 문제도 그렇다. 그리 간절하거나 절망적이지는 않으나 또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 그런 찝찝한 마음으로 순간을 함께한다. 분명 또렷한 시야로 살아가는 것은 여러 가지로 편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지금의 눈이 가진 특별함을 알았다. 어느새 난시가 내 삶을 함께 하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밤이 되면 일부러 안경을 벗고 창밖을 본다. 가로등은 둥글게 번지고, 차 불빛은 물감 번지듯 길게 흘러내린다. 나는 이 흐릿한 풍경을 사랑한다. 선명함 대신 부드러움을, 정확함 대신 여유를 가르쳐 준 눈.
안경을 벗으면 찾아오는 휴식과 번져 보이던 가로등, 흐릿한 아침 이불 위에서 느끼던 평온함, 그리고 모든 것을 또렷하게 보고 싶던 시절에서 흐려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 지금까지의 시간을 떠올린다. 잘 보이지 않는 눈 덕분에, 이제는 나의 다른 ‘난시’들도 천천히 하나씩 바라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