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혼밥 레벨에 관한 sns글을 본 적 있는가? 혼밥, 즉 혼자 밥 먹을 때 식당 별 난이도를 언급하며 어디까지 해 보았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 묻는 글이다. 보통 가장 쉬운 단계엔 분식집이, 가장 어려운 단계엔 고깃집이나 레스토랑, 뷔페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모두 해 봤다. 당장 며칠 전에도 고깃집에서 삼삼오오 모여 식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조용히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곱창을 구워 먹었다. 나는 식사할 땐 핸드폰도 잘 보질 않는다. 정말 묵묵히 앉아 굽고, 먹고, 맛있다 생각하기만 반복하다 나왔다. 혼자 식당은 당연하고 놀이동산도 간다. 내게 혼자 놀기란 그만큼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예전엔 그러지 못했다. 대부분이 공감할 법한 학창 시절 급식시간 역시 그랬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면 차라리 안 먹은 날도 많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 하는 모든 것들을 잘하지 못했다. 코인노래방도 혼자 갈 때면 괜히 신경 쓰였으니 말이다. 함께인 게 즐거워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왠지 혼자는 주눅이 들었다. 친구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모든 게 신경 쓰이고 지금 이곳에 나의 편은 나뿐이라는 느낌, 무슨 일이든 오로지 혼자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막막함, 그런 것들이 있던 것 같다.
사실 난 함께 있는 게 불편하다. 엄마와 삼촌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의식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기분, 생각 등이 끊임없이 신경 쓰인다. 나는 모두가 어색하다. 그렇기에 늘 어색함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대화를 하면서도 이어질 대화 주제를 찾고, 농담을 던진다. 도대체 왜 그럴까.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살아보고자 꽤 긴 시간 노력했지만 오히려 앞서의 피로에 또 다른 피로만이 더해진 꼴이었다. 그러면서도 혼자 있기 싫어 늘 약속을 잡는다. 내게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밝고 재밌으면서 외향적인 사람을 수행하는 시간이었다.
요즘 시대엔 이럴 때 또 MBTI만큼 쓸만한 게 없다. 예상했겠지만 난 I다. 그것도 99 퍼 I였다. 그러나 모두가 E로 안다. 나는 그게 좋았다. 사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없었다. 1학년 때 전학 간 그 학교에서, 왜인진 모르겠으나 그냥 그렇게 됐다. 사실적시로, 난 친구가 없어 보이는 게 두렵고 싫었다. 혼자 있으면 티가 날 것 같았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과 sns에서 마주쳐 친구가 됐다.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무렇지 않게 “나 고등학교 때 친구 없어서 혼자 다녔잖아.”라고 말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말하던 모습만큼이나 마음도 평온했다. 예전이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새 새 친구들이 생기고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은 아니다. 아마 여전히 친구가 없어도 더 이상 그건 내게 별 거 아닌 일일 거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내게 중요한 가치가 변하며 나에 대한 시선은 전만큼 의식되는 일이 아니게 됐다. 꽤 단단해진 모습이다. 나는 이제 나 혼자로도 꽤 자신 있고 편안해졌다. 친구에 매이지 않다 보니 나를 착취하던 관계들, 알고는 있었지만 누군가 보았을 때 우리는 오래된 이상적인 친구였기에 붙잡고 있던 관계를 미련 없이 정리했다. 불편함을 견디고 오로지 혼자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캘린더를 가득 채우던 약속들을 잡지 않았다.
외향적으로 보이고 싶은, 어색함을 티 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버리지 못했다. 누군가를 편하게 대하기가 지독하게 어렵다. 중학교 때까지는 오히려 너무 편안히 대해서 문제였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 시절이라 정말 그랬는지, 내 착각인 지는 모를 일이다. 어차피 그리워한다고 고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기에 그냥 함께 살고 있다. 혼자인 걸 의식하지 않는 지금, 이것들은 내게 전만큼의 피로를 주지 못한다.
어쩌면 혼밥 레벨이라는 건 식당의 난이도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난이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분식집 문 앞에서도 남의눈을 의식하며 서성였고, 지금은 고깃집에서 혼자 곱창을 굽는다. 밖에서 보기엔 레벨이 올라간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 달라진 건 그저 하나뿐이다. 혼자인 나를 초라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마음.
가끔은 급식실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서던 예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아이를 지금의 내가 마주한다면 뭐라고 말해 줄까. 혼자 밥 먹는다고 해서 친구 없는 사람도 아니고,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고, 무리 속에 섞여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아마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언젠가는 고깃집에서도, 놀이공원에서도, 카페에서도 혼자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게 될 거라고. 그때의 너는 혼자인 모습이 창피하지도 않을 거라고, 그냥 그런 너로 사는 일이 지금보다 조금 덜 두렵게 느껴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