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어느덧 이번 해의 끝이 다가오며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나는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한 달 전부터 기대에 잠겨 이번 크리스마스엔 무얼 할까, 어떤 케이크를 사고 무슨 옷을 입을까 상상에 젖어있고는 한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두 종류나 예약했고 이브부터 크리스마스까지의 아늑한 휴일을 꿈꾸었다. 11월 중순 즈음부터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생각으로 하루하루가 조금은 더 즐거웠던 것 같다.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와 당일 모두 학원에 나갔다. 이브는 원래 나가는 날이었으나, 당일은 아니었다. 원장님이 성화에 못 이겨 결국 크리스마스에도 학원 문을 열기로 했고 근무할 선생님이 없어 적잖게 곤란하신 모습에 제가 나가겠노라 했다. 부모님들의 열의와 다르게 아이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오늘 놀러 가요, 내지는 오늘 몸이 아파요, 같은 연락을 그날만 30통은 받은 듯하다. 원래는 부모님께 확인 연락을 하는 원장님도 그날은 자기도 그러고 싶을 거라며 그래, 이런 날은 놀아야지. 재밌게 놀고 와.라는 말로 아이들을 보내주었다.
결국 그날 학원에 한밤까지 덩그러니 남은 건 나와 원장님뿐이었다. 20층짜리 건물엔 우리 학원 말고는 아무 곳도 문을 열지 않았다. 심지어는 우리 학원에서도 국어과만 문을 열었다. 덩그러니 교무실에 앉아 교재라도 보다가 할 일이 없어 핸드폰을 켜보면 SNS에는 온통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토록 설레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대한 만큼 조금은 나의 처지가 슬프게 느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평소의 날처럼, 오히려 그 한가함이 분주한 학원에 드물게 오는 평화처럼 느껴져 참 평온했다.
생각해 보면 많은 일들이 그랬다. 어렸을 적 기대됐던 체험학습이나 게임 업데이트의 순간, 매년마다 돌아오는 나의 생일, 꿈같은 연휴, 그 모든 일들이 내게 주었던 행복을 떠올리면 늘 기다림에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당일보다는 여행을 앞두고 있는 날들에 힘이 나고 생일 또한 그랬다. 그리고 당일이 되면 기다림의 설렘 너머 정말로 그날이 왔구나, 하는 묘한 기분이 남았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무궁무진한 상상을 할 수 있고,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신날지, 현실의 미정은 오로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축제를 그렸다. 그러면 무슨 일이 있든지 조금은 더 힘이 났다. 지금 힘들어도 그날이 오면 쉴 수 있으니까, 그날이 오면 오늘 못 한 것들을 해야지. 마법 같은 말들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다림의 대상은 단지 기념일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마침내 모두 해결될, 혹은 지금보다는 나아졌을, 그날들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리도 힘들지만 더 이상 힘들지 않은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에 나는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상상을 하면 잔뜩 가라앉아 있다가도 이것이 영원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러면 나는 그날의 나를 보기 위해 일어난다. 궁금하니까, 머릿속에 그려보는 내 모습은 무궁무진하다. 기대를 안고 살아가는 일, 허황돼 보이면 어떤가. 어쩌면 나는 영원히 지금의 문제를 안고 살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터무니없게도 느껴질 상상으로 나아진 나를 그린다.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을 이겨나간다.
그러고 보면 나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며 여기까지 왔다. 체험학습, 생일, 방학, 게임 업데이트, 그리고 힘든 순간들에는 마법처럼 괜찮아진 미래의 내 모습까지. 기다리던 것들이 항상 상상만큼 특별하지는 않았다. 기대하던 여행도, 생일도, 이번 크리스마스도 결국은 평범한 하루의 형상으로 지나갔다. 그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날이 얼마나 특별했는지가 아닌, 그날이 내게 준 희망과 용기이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종종 별것 아닌 날들에 의미를 덧씌우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거창한 기적 대신, 그렇게 작은 기다림들을 품고 오늘을 살아가는 마음이 결국 내 삶을 끝까지 지켜 줄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