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나는 마음근육이 약하다. 슬픔이 싫다. 내게 무엇보다도 가장 피하고 싶은 감정은 슬픔이었다. 슬프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난다. 숨이 가쁠 때까지 통곡하다 보면 이러다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언제나 지독하게 슬플 때에는 그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차라리 죽고 싶어졌다. 나는 슬픔과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어렸을 적 엄마가 종종 예기치 못할 야근을 할 때가 있었다. 평소 나는 집착하다시피 엄마의 안위를 살폈다. 엄마가 자는 듯싶으면 조용히 다가가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그런 내게 늦게까지 연락이 안 되는 엄마는 모든 끔찍한 상황의 출발지였다. 3시간 정도 연락이 안 되면 벌써 내 머릿속 엄마는 이미 죽어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그 생각만 하면 너무나 슬퍼져 나는 그때부터 종일 울면서 동아줄이라도 붙잡듯 계속해서 전화를 건다.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일이어도 그 순간의 감정들이 잊히질 않는다. 사실 내 소원은 만약 엄마가 죽는다면, 다음날 죽는 거였다. 도저히 그 슬픔을 떠안고 살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잠깐도 그 감정을 느끼지 않게 내가 더 먼저 죽고 싶다. 그러나 엄마도 나같이 슬플 걸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생각하면, 하루는 더 살아야지 싶었다.
내 슬픔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슬픔도 싫다. 가끔 뉴스나 SNS에서 무척이나 슬픈 사연을 본다. 그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차마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눈에선 벌써 눈물이 줄줄 흘렀다. 동정과는 달랐다. 그냥 그 사람이 얼마나 슬플까 느껴져 끔찍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상황처럼, 슬픔을 겪게 만드는 일들 자체가 너무나 밉게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슬픔을 느끼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앞에서 참 힘들었다. 내가 그들의 슬픔을 덜 수 있는 상황은 차라리 나았다. 속수무책으로 위로밖에 할 수 없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나는 슬프다는 감정 자체가 잘못된 것, 애초에 존재하면 안 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소설, 영화 등 작품에서의 허구적 상황 속 슬픔은 괜찮다. 슬퍼하다가도 다 거짓이라고 되새기면 가슴 아림은 금세 멎어 들었다. 오히려 가끔 새드엔딩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슬픔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고만 싶다. 참 희한한 감정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슬픔으로 성장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슬픔을 이겨낼 수가 없으니까. 생각해 보면 내게 슬픔이라는 감정은 무엇도 이길 수 없는 영원 같은 수렁인 듯하다. 그러니 내게 슬픔은 곧 끝이었다. 그 후로는 아무리 행복하다 한들 완전히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늘 슬픔이 따라다닐 테니까. 돌아보면 여태껏 슬픈 일이 꽤 많았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아직도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 행복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 둘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각의 감정을 가져다준다. 즉, 내 행복에 잊히지 않은 슬픔이 힘을 쓰진 못한다는 거였다.
현재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슬픈 상황을 겪은 후에도 그럴까, 그건 모르겠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할머니를 여인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지금도 종종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내 생각처럼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는 분명히 그 슬픔과 별개로 행복한 순간들이 많다. 한 달을 행복으로 살다가 하루 정도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슬퍼도 살아가지는 거구나, 어떤 슬픔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는 거구나, 조금은 용기를 가지고 슬픔을 바라보아야겠구나.
내가 당시의 슬픔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는 나 때문에 견뎠다. 슬픔을 견뎌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오면, 그저 일상으로 여기고 살던 무언가가 동아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아직은 전부 어렵지만, 그래도 슬픔은 끝이 아닐 수 있다는 마음만으로 조금은 세상이 달라 보이는 기분이다.
요즘은 슬픔을, 존재하면 안 될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 언젠가 꼭 손을 잡고 건너야 하는 강 같은 것으로 상상해 본다. 그때 내가 무엇을 붙잡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슬픔이 곧 삶의 끝이라는 마음만큼은 조금씩 내려놓으려 한다. 그 마음 하나로, 슬픔이 좀먹어 여태껏 제대로 그려보지 못했던 미래를 천천히 다시 그려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