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교입니다. 이번에 종교와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는 수업을 들었는데 기말과제가 직접 단답식 10문제 만들기와 중간고사 때 만들었던 자신만의 의례(제의)를 수업을 통해 달라진 사유로 다시 만들어보는 거였어요. 문제 한번 풀어보세요^^ 답은 문제의 끝 부분, 사유 글 직전에 있습니다.
1. 이것은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시민들이 의무적으로 관람해야 했던 대상으로 고통과 상실, 운명 같은 공동체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다. 이것을 관람함으로써 공동체는 연민과 슬픔 등의 정서를 공유하며 공동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아테네 인들의 개인적, 공동체적인 면에 큰 영향을 주었던 이것은?
2. 이 인물은 춘추 전국시대에 생존하여 그 말과 행동이 유교 최고의 경전인 <논어>에 기록되어 있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며, 제의는 통치수단이 아닌 타자를 극진히 공경하여 덕을 수양하는 수단으로 삼아야 함을 논설하여 타자에 대한 공경인 예를 바로 세우는 데에 주목했으며, 유교 제의의 주체를 왕에서 모든 사람으로 확장시키는 데 이바지한 이 인물은?
3. 이것은 신화의 한 유형이다. 주로 그리스 신화, 서구문화권에서 발달했으며 신들이 만든 운명과 한계에 도전하는 존재가 등장한다. 인물은 고난에 승리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이처럼 과업의 성공이나 실패, 선과 악에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자아 확립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내는 인물의 이야기가 핵심이 되는 신화는?
4. 이것은 앎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종교사상이다. 이원론적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며 이 세계를 악으로 바라본다. 빛으로 충만한 정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육체와 물질에 구속되었다고 여겨 육체와 물질, 그리고 인간 역사에 대한 혐오와 회의 등을 담고 있다. 결국 인간은 자신에 대한 지식을 앎으로 구원에 이르러 빛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이 사상은?
5. 이것은 공동체의 올바름에 관한 것으로 공동체적인 지식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중요시됐던 대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에서 이것을 인간의 덕목 중 유일하게 “타인의 선”으로,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유익하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이렇듯 덕의 일부가 아닌 덕 전체로써, 완전한 덕으로 여겨지며 준법적인 것과 공정한 것을 포함한 이것은?
6. 이것은 우리의 정보와 지식에 담겨야 하는 대상이다. 인간을 도구적으로 인식하고 물화하는 현대의 방식을 전복하여 인간의 신성을 되찾고 서로를 주체로 인식하기 위해 이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인식주체와 대상 그리고 방식을 스스로 성찰하게 하여 지식을 바로 잡고 지식은 세계를 구성한다.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 삶의 환경을 변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이것은?
7. 이 인물은 예수의 처형을 십자가 밑에서 지켜보았으며 매장 후에도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찾아가 예수의 시신을 수습하여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려 했던 용감한 여인이다. 빈 무덤의 목격자이자 증인이 된 이 인물은 부활한 예수를 가장 먼저 만나는 영광을 얻었다.『도마복음서』, 『야고보 묵시』와 같은 외경에서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과 달리 성서에서는 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으로 규정된 이 인물은?
8. 이것은 기독교정신의 핵심으로 천국과 영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폭력에서 벗어난 자비의 공간인 이곳은 약자들의 영역이며, 고난하고 조촐한 이들의 삶에 주목하여 중시하고 조명한다. 가난한 이들이 삶 속에서 보여준 돌봄과 상생의 가치를 담아내어, 천하게 여겨지는 대상을 귀히 보고, 쓸모없다 취급받는 대상을 사랑의 눈길로 보는 일에서 출발하는 이것은?
9. 이것은 있음에 대해 묻는 것으로 종교적 사유의 출발지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출발 또한 이 사유에서 시작되었다. 종교적인 이것은 단순히 원리뿐 아니라 그 삶의 의미와 가치, 생명의 신비와 같은 그 가치나 의미까지의 총체성을 담고 있다. 연기설, 범신론 등 다양한 종교에서 이것을 찾기 위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며 의미를 내놓았다. 탈레스가 세상을 올바르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긴 이것은?
10. 이것은 종교적 수행으로 떠남의 연습이기도 하며, 일상에서 벗어난 수행의 시간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자기 비움을 깨달을 수 있는 행위이다. 이것을 위해 유대교의 성인 남성은 1년에 한 번 예루살렘 성전으로 떠나며, 이슬람교 신자들은 메카로 떠난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새롭고 발전된 사유를 통해 인생을 살기 위해 자기를 만나는 길을 떠나는 여정인 이것은?
1. 비극
2. 공자
3. 영웅신화
4. 영지주의
5. 정의
6. 인간적인 가치
7. 막달라 마리아
8. 하나님 나라
9. 존재물음(존재사유)
10. 순례
어떠셨을까요? 저는 이틀 동안 만들었네요 ^^ ; 기말 글 제시 전 중간 때 만들어 글의 기반이 된 의례 소개 하겠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아침에 어떤 방에 들어가 한 주의 고난, 슬픔, 걱정 등을 이파리 모양 종이에 써서 벽에 그려져 있는 나무에 붙입니다. 그렇게 매 한 주를 견딘 저를 기리는 의례라고 창작했었습니다.
다시 만드는 의례
나는 지난번 의례 만들기에서 고난을 지나 오늘날에 이른 나에 주목하여 살아있음에 중점을 두고, 스스로를 기리기 위하여 슬픔과 아픔, 고민 등을 기록하는 의례를 제작했다. 따라서 이때의 고난은 그저 사실의 나열과 같은 기록, 견딘 나를 바라보기 위한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아주 고된 경험을 넘어 꿈을 이룬 이가 그토록 힘든 시절도 있었지, 하고 현재 자신의 상황과 대비되는 과거를 단순히 떠올릴 뿐인 행위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은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의미가 있었다. 아테네에서 비극을 관람하고, 기나긴 인간 역사에서 고통을 사유하듯이 시련들은 우리를 붙잡는 장애물이 아닌 더 나은 삶, 정의로운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니 이것이 단순히 떠올리고 기록하는 대상으로만 남아서는 안 되겠다. 고난을 지나 오늘날에 다다른 나를 기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고난 하나하나에 주목하여 이것이 내게 무슨 깨달음을 주었는지, 어떻게 나를 이끌었는지를 성찰하고 기록해야 했다. 그렇게 모인 나뭇잎들은 그 자체로 나의 사유와 가치의식을 형성한 내 심리적 기반이었다.
나는 내가 느낀 감정에 초점을 두어 나의 시선에서 일기를 쓰듯 사건을 기록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건 속 다른 인물도 나와 같은 하나의 주체로 인식하여 사건의 의미와 영향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했다. 즉, 인간적인 면모와 인간적인 가치, 의미에 주목하고 이들을 사유의 중심으로 이끌어와 나의 나무속 이파리에는 사회의 더욱 다양한 인간 주체의 존재를 깨닫고 우리 모두의 시선으로 시련을 바라보는 성찰이 담길 수 있어야 한다. 고난의 기억은 나를 지탱하는 증거를 넘어서 새 가지를 뻗고 이파리들이 늘어가는 의례의 나무 형상처럼 나의 성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는 나를 알고, 나의 자아를 찾아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수많은 일들 속에서 나는 끝없이 생각하고 판단하며 나를 이루는 가치체계와 나의 본질을 발견해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어쩌면 나는 영웅신화의 영웅과 같은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의 영웅신화 속, 나를 마주하는 여정을 이어나가고 있는 영웅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그렇다. 이번 수업에서 그 사실을 접한 순간 마음의 벅참이 일었다. 인간이 물화되고 가치가 주변화 된 현대사회에서 대개는 삶의 목적이 실용적 요소에 있겠지만, 우리가 정말로 추구해야 하는 삶이란 나를 찾는 것, 나를 마주하고 타인 역시 나와 같은 존재임을 알아 우리를 아는 것,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 영웅이 돼야 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처음 이 의례를 고안하던 당시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사실 이 행위는 영웅이 되기 위한 여정이자 고통의 가치를 깨닫도록 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인간적인 사유를 그 중심에 둘 때 단순히 나의 자아를 찾는 영웅이 아닌 사람과 공동체를 알고, 자비를 깨닫는 옳은 인간의 형상에 다가설 수 있겠다. 어쩌면 하나님 나라에서 담고 있는, 고난한 삶 속 자비를 보여주던 여성들은 이미 그 삶의 고달픔 속에서도 자신의 고통만이 아닌 모두의 고통을 함께 바라보아 서로를 자신과 같은 인격 주체로 여기고 옳은 사회를 꿈꾸던 인물들이 아닐까. 이를 느끼자 나는 삶의 방향을 깨달았다.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논설한 덕의 추구를 통한 행복이 무엇인지 이해되었다. 나를 넘어서 타인을 생각하는 일에서 오는 숭고한 행복, 그것은 우선 우리를 나와 같은 주체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의례는 여전히 주에 한 번 토요일 아침에 진행되며 나는 경건한 태도로 이에 임한다. 고통과 슬픔, 고민의 이파리를 남기나 그 내용은 이전과 다르다. 단순한 기록이 아닌 사건 속 인물들을 주체적으로 인식하고자 노력하여 의미를 재정립하고 그 과정 속에서 내 의식, 나의 자아를 발견한다. 고난 또한 그것을 견디어서가 아닌, 그것이 주어졌기에 성장했음을 알고 고난이 준 성찰과 가치를 깨닫는다. 나는 그렇게 내 삶의 방향을 정하고, 나를 알고, 자비와 행복을 알고, 정의를 알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는 시험 보는 것보다 어려웠습니다.. 문제 만드는 부분이 쓰면서도 정확한 내용이 맞는지 엄청 확인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