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향날>, <국물 있사옵니다>, <파수꾼>,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비사실주의적 연극
비사실주의적 연극이라 함은 우선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해설자 등의 장치를 통해 관객이 무대와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이 연극의 형태는 국내에서 브레히트를 공식적으로 다룰 수 있던 1988년 이전에도 이미 1960년대부터 차츰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근삼은 서사극의 형식을 주로 활용한 대표적인 극작가로 그의 희곡 <국물 있사옵니다> 역시 서사극, 부조리극의 형태를 띤다. 조리 있게 작중 상황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사실주의 작품과 달리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며 이치에 맞지 않는 구성과 묘사로 작품의 주제를 형상화한다. <국물 있사옵니다>는 “그 사이에 벽이 가로막혀 있다고 상상하면 된다.”, “공간 처리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등의 사실적이지 않은 무대 설정과 더불어 주인공이 극의 해설자로 기능하는 장치를 통해 서사극의 면모를 강하게 보인다. 각 장면들은 짧게 이어지며 그 사이 해설자의 역할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긴 호흡으로 작품에의 몰입이 어렵도록 만든다. 이는 서사극의 기법 중 하나인 소외 효과로 관객이 무대와 극중 인물에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무대를 이성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를 통해 극이 제기하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작품은 브레히트가 제시한 서사적 해설자와 달리 극중 인물인 주인공 김상범이 해설자로 등장한다. 김상범은 자신의 내력과 심리를 설명하며 가끔은 다소 자기변명적, 자기중심적인 일방적 해설로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하는데, 이 때문에 무조건적인 거리 두기보다 주인공 김상범의 행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사실주의극이라면 활용할 수 없었을 이러한 주인공의 직접적인 심리 해설은 오히려 인물의 비윤리적인 타락 과정에 나타나는 자기 합리화와 변명적 사고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인물의 문제점과 한계를 더욱 잘 인식할 수 있는 장치로 느껴지기도 한다. 또 인물이 사회적 풍조를 언급하며 핑계 같은 해설을 이어나가는 부분은 작품이 문제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세속적 출세주의를 타락의 배경과 시작점으로 관객에게 환기하도록 기능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김상범의 해설은 비단 김상범이라는 인물의 행적을 넘어 현실의 많은 고위 인물과, 그러한 삶을 꿈꾸는 자본주의 속 대상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들을 상징하여 모순을 드러내는 게 김상범의 존재가 아닐까 추측했다.
즉,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는 비사실적인 무대 설정, 비논리적인 인물들, 해설자로 등장하여 사건을 설명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주인공 등의 구성으로 사실주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며, 이를 통해 관객에게 무대 위 문제 상황을 거리를 두고 이성적으로 바라보아 현실의 문제로 연결하여 인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실제 현실, 특히 작품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주의의 자본 중심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작품에서 쓰인 부조리극의 기법이 오히려 작품을 보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기여했다고 느꼈다.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구성이 마치 우연적으로 배치된 현실을 감각적으로 지적하는 듯해 현실 사회의 모순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강백의 <파수꾼> 또한 서사극의 형식을 보인다. <국물 있사옵니다>와 유사하게 마분지로 만든 초생달을 걸어 놓는 방식으로 시간의 변화를 표현해 나타나는 비사실적인 무대 설정뿐만 아니라 운반인과 촌장의 역할을 겸하는 해설자의 존재로 서사극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파수꾼> 역시 브레히트의 서사극 관점 속 해설자와 다른 유형의 해설자가 등장한다. 세 명의 파수꾼만이 개별적인 등장인물로 나타나고, 파수꾼들의 세계와 다른 곳에 있는 마을의 운반인, 촌장을 맡은 인물이 해설자의 역할까지 1인 3역의 배역을 갖는 모습은 해설자 역시 마을의 인물로 느껴지게 해 파수꾼의 세계를 더욱 고립된 형태로 그려낸다.
또, 파수꾼들의 세계를 벗어난 곳과 그 안의 인물들을 뭉뚱그려 나타내는 모습으로도 보여 마치 이 세상을 좌우하는 건 파수꾼들의 행위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에 종속되는 대상으로 여겨져 가상의 공포를 활용하는 지배층과 이에 휘둘리는 대중을 환기하는 작품의 주제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도 느껴졌다. 서로 반대되는 위치에 있는 듯한 운반인과 촌장을 동일 인물이 맡으며 사실 이 세상 속 존재는 권력을 가졌든 아니든 마찬가지인 대상이거나, 혹은 만약 파수꾼 나가 진실을 고수했다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처럼 촌장도 언제든 운반인처럼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장치로도 보였다. 그 속에서 관객은 마을 사람들로 묘사되어 작중 일부가 되고, 파수꾼과 함께 새벽을 보내고 진실을 마주한 증인으로 1인 2역을 맡은 듯한 느낌도 갖게 되며 우리라면 어떤 사고와 행동을 할지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이는 실제 현실의 문제를 고발하는 작중 상황을 우리 주변의 현상으로 인식하고, 그 과정을 통해 사회 속 감추어져 있던 실태를 깨닫도록 기여한다고 느꼈다.
이강백의 <파수꾼>은 “이곳은 황야입니다.” 등의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배경과 비사실적인 시간 표지를 이용한 무대 설정, 해설자와 배역의 분배 같은 요소를 통해 사실주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통해 무대를 가상의 허구로 느껴지게 하며 그러면서도 그 속의 갈등 상황은 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관객에게 상상적 체험의 가능성을 줌으로써 현실의 은폐된 문제를 깨달을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비사실주의 연극에서 인물은 보다 상징성을 가진 대상으로 인식되는데, <파수꾼>에서 또한 파수꾼 나와 다, 촌장 그리고 운반인은 개별적 존재라기보다는 이를테면 촌장은 목적을 위해 허위 공포를 이용하는 인물 등, 각자 현실의 어떤 위치에 있는 집단으로 대치되어 느껴졌다.
서사극의 형식이 아님에도 비사실주의적 연극의 요소가 나타나는 작품들이 있다. 우선 살펴볼 채만식의 <제향날> 또한 그러한 희곡이다. 극은 최씨가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렇기에 회상을 장면화하여 서로 다른 여러 시간대를 교차적으로 다루고 있는 점부터 사실주의 희곡의 성격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시간대에 따라 섬세하게 달라지는 무대 설정과 객관적인 태도로 묘사하는 개연성 있게 이어지는 내력 등은 분명히 사실주의적인 성격을 가짐에도 왜 이러한 시간 구성을 보였나 추측했을 때 이는 작품에 핵심적으로 상징을 부여하는 후반의 프로메테우스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고 느꼈다. 과거부터 순행적으로 시간이 흐른 후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보다, 세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등장한 후 마지막에 제시되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는 앞의 사건들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고 명확한 의미를 부여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각각의 이야기를 곱씹어 공통점을 깨닫게 하고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정신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에게 금지되었던 불을 개척자의 정신으로 인류에게 전하여 인간 세상을 변화시킨 자기희생적 존재인 프로메테우스는 극 중 인물이면서 작가의 의식을 전달하는 극적 은유의 기능을 한다. 짧은 등장이지만 이 인물로 하여금 성배와 영수, 그리고 상인이 프로메테우스의 의미를 지닌 존재임을 암시한다. 즉 그들의 대의가 결국 세상에 변화를 가져온 불씨와 같음을 상징하며 작품이 추구하는 가치가 드러나는 부분이라 보았다. 또, 이 불씨에도 주목할 수 있는데 작품에서는 전해진 불씨를 지키는 일 또한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이 부분은 보다 앞부분에 언급된 집집마다 불씨를 지키던 일을 떠올리게 해 직접 운동에 뛰어들고 혁명에 가담하는 인물뿐 아니라 최씨와 같이 그들을 지지하고 보조해 주던 인물 역시 큰 의미를 가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최씨가 영수를 돕던 모습에서도 이 같은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채만식의 <제향날>은 회상의 장면화, 상징적 인물을 통한 주제의 형상화 등으로 사실주의에서 벗어난 연극적 요소를 가진다. 후반에서 등장할 극적 메타포의 효과를 극대화할 구성으로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다루었다고 느꼈으며, 이야기들은 프로메테우스로 하여금 강력한 의미를 갖고 관객에게 인식되며 이야기를 완성한다. 이는 단순히 직접적으로 의미를 풀어가며 주제 의식을 전하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관객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 곱씹어 헤아리게 되는 장치로 기능한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볼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1970년대 대표 희곡으로 주로 한국 전통 설화에서 소재를 가져와 비극적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가운데 한국적 심성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했던 최인훈의 작품이다. 작품은 특히 그 속도감과 여백, 여운의 영역에서 문학적으로도 여겨지는 느림, 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희곡을 읽는 동시에 시를 읽는 듯한 효과를 주어 시극을 추구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근대 이후의 극이 산문의 형태로 시보다는 소설에 가깝게 이해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런 속도감을 갖기 위해 지문을 써 내려간 방식 또한 시를 쓰듯 행이 자주 바뀌며 호흡은 짧게 끊어진다. 아비가 말더듬이인 설정 또한 더욱 짧은 호흡에 기여한다. 극의 지시문에는 무대에서의 수행을 ‘말더듬이처럼 움직임 더듬이로’라고 지시하는 모습을 통해 더욱 그 여백과 느림에 대해 떠올려볼 수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희곡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마치 여백이 많은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게 하며, 이렇게 무대화되었을 때 공연의 질감이나 분위기가 꿈속 세계처럼 몽롱하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정한 기법 없이도 최인훈의 희곡에서 지향할 수 있었던 비사실적 요소이겠다.
극의 소재를 설화에서 차용하던 특징 또한 설화의 이야기들이 몽롱하고 꿈결 같은 연출에 적합하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의 분위기 덕분에 비사실적 영역으로도 보이는 극의 후반 부분, 자연, 동물 그리고 십장생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도드라지게 느껴지지 않고 전체적인 부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된다. 이 길몽으로도 보이는 분위기로의 전환은 작품의 가장 비밀스럽고도 무거운 상징의 문둥이 어미를 통해 드러나는데, 이후에도 탈을 나누어 쓰고 그저 자연과 어우러지며 몽환적으로 끝나는 결말은 어떤 가족의 온정과 같은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나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정확히 제시하지 않아 상상의 영역에 가능성을 두게끔 한다. 그렇기에 더욱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인륜의 정과 감동이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것은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듯 탈을 나누어 쓰고 비현실의 세계로, 그들만의 공간으로 떠나는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더욱 작품이 이야기하는 가치를 체감할 수 있게 했다고 보았다.
작품 전반의 느린 호흡은 배우로 하여금 사실주의 연극이 추구하는 모방 혹은 재현의 사실성 있는 ‘연기’와는 거리가 있는 실험적 의미의 ‘수행’, ‘퍼포먼스’를 요구했다. 수행자의 육체적 감각을 입체적으로 드러내어 특별한 수행성을 통해 희곡의 의미와 가치를 폄하하지 않으면서도 여백과 여운을 살려 느린 진행을 이어나가야 했다. 이 미학의 연출은 고난도의 수행을 요구했기에 희곡을 읽으며 독자가 상상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연의 수준에 닿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작품을 무척 여운 있게 읽어 무대화된 영상을 찾아보았는데, 작품이 여백과 몽롱한 분위기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에 큰 역할을 부여했기에 각 독자마다 형상화한 배경과 실제 무대에서 연극되는 극이 다소 다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키기 어렵다는 작품의 까다로운 설정들을 작가의 의도대로 따랐을 때 그려질 풍경과 이상적 무대는 비사실주의가 우리의 보편적 심성에 닿을 수 있는 정서의 고양을 극대화하고 정말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극의 세계에 압도된 것 같은 극적 체험을 전할 수 있을 듯했다.
특히 연출 속 어미의 문 두드림 부분이 큰 여운을 남겼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되는 문 밖의 소리야말로 이 꿈결 같은 희곡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더욱 묘하게 느껴지는 효과를 지녔다고 느껴졌다. 막상 달래를 보내주어야 할 때가 오니 더 이상 오지 않겠다는, 문 밖의 소리가 실제 어미였다고 파악할 수도 있게 하는 이 부분은 소리의 정체를 드러내는 최적의 위치로 느껴져 독자에게 여운과 인륜의 정을 효과적으로 느끼게 했다고 보았다.
이렇게 최인훈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어떤 특정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극 전체의 여백과 여운, 몽롱한 분위기를 섬세하고 전략적으로 조성함으로써 사실주의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는 독자 혹은 관객에게 사실주의적 연극과 현실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특별한 극적 체험을 제공하며 특히 작품의 서정적 정서와 지향하는 가치를 마음 깊숙이 느낄 수 있게 기능한다고 느꼈다.
네 작품을 통해 비사실주의적 연극이 단순히 현실을 벗어난 극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더 직접적이고 날카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와 이강백의 〈파수꾼〉이 서사극과 부조리극의 기법, 해설자의 존재, 비사실적인 무대 설정을 활용해 관객을 극으로부터 한 걸음 떼어놓음으로써 자본주의적 출세주의와 허위 공포의 기제를 이성적으로 바라보게 했다면, 채만식의 〈제향날〉은 시간의 병렬 구성과 프로메테우스라는 상징적 인물을 통해 ‘불씨’를 지키는 자들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현실의 저항과 연대의 가치를 관객 스스로 연결해 생각해 보게 한다. 최인훈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몽롱한 분위기와 여백, 느린 호흡, 시극에 가까운 수행성을 통해 사실주의적 재현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정서의 층위를 보이며, 문둥이 어미와 탈을 나눠 쓰는 장면에서처럼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오히려 인륜의 정과 가족의 온기를 더 깊이 체감하게 한다.
네 작품이 선택한 비사실주의적 방법들은 형식적으로는 모두 사실주의에서 멀어져 있지만, 그 목적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더 잘 보게 하는 기능을 한다고 느꼈다. 감정을 과도하게 소비시키거나 눈앞의 사건에만 몰입시키는 대신, 거리를 두거나 상징과 여백을 활용해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하게 만드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작품들을 통해 난해하고 낯선 형식으로도 받아들여졌던 비사실주의적 요소들이 현실의 모순과 인간의 정서를 어떤 방식으로 파헤치고 드러내는지 느꼈고, 그 지점이 비사실주의적 연극의 요소가 지닌 큰 효과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희곡 수업의 기말대체 과제 두 개 중 하나였습니다. 네 작품의 비사실주의적 요소를 살펴보는게 주제였네요.^^ 그렇기에 분량이 좀 있습니다...
희곡에 큰 관심이 생기게 한 수업이었어요. 이제 희곡 수업은 대학원에나 있다는 게 다소 아쉽더라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