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제 약간의 스포를 곁들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안의 화제작인 이 작품의 표면적 줄거리는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베이비 레인디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끈질기게 스토킹하는 이야기다. 남자는 회를 거듭할수록 아기 순록보다는 굶은 멸치에 가까운 몰골로 변해가며 정신적 시달림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제 7개의 에피소드를 몰아본 나는 보는 내내 이 단어가 마음 한켠에 맴돌았다.
"음침함"
십여년전 런던에 잠시 살 때는 제법 운치있다고 느끼기까지 했던 그 곳의 날씨와 빈티지한 도시의 풍경이 이제는 이 영화의 스토리와 버무려지며 밑도 끝도 없는 음침한 기운을 뿜어냈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기운, 즉 파동을 부여받아 태어난다.
그 기운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무수한 사건들을 만들고, 그 사건들의 합은 삶이 된다.
그리고 내 주변인들은 나의 파동이 끌어당긴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20대 시절, 난 이렇게 푸념했다. "남자가 없는 건 아닌데 똥파리들만 꼬여서 미치겠어" 안타깝게도 그 시절 똥파리들은 내가 유인한 것이다. 파리지옥 수준으로 그들이 좋아하는 파장을 미친듯이 뿜어대면서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베이비 레인디어의 기구한 남주 역시 이 점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혹독한 시련들을 겪어야만 했다. 별 볼일 없던 동네 무명 코미디언인 그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온갖 해괴한 사건들을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는듯이 결국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뒀던 자기혐오를 토하듯이 뱉어낸다. 게다가 그 장소는 혐오스런 자신의 그림자가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할 무대 위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때는 그가 유일하게 무대 위에서 관객 눈치를 보지 않았던 순간이다. 평소 조악한 소품 개그로 웃음을 구걸하다시피 하던 그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으로 스토커를 자기 곁에 묶어둔 장본인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끝내 인정한다.
That’s what abuse does to you, you know? It made me this sticking plaster for all of life’s weirdos, this open wound for them to sniff at.
학대는 저를 온갖 이상한 인간들의 반창고로 만들었어요.
그들은 이 벌어진 상처의 냄새를 맡죠.
Hating myself.
I love it. I'm addicted to it.
I don't know anything else.
Because God forbid ever taking a chance at life.
God forbid ever taking a chance at happiness.
자기혐오. 전 그걸 사랑해요. 그거에 중독됐어요. 다른 건 하나도 몰라요.
살면서 기회란 걸 잡아본 적이 없으니까, 행복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장장 10분 가량의 긴 독백을 보며 과거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나는 관계에 있어 나를 좋아하고 잘해주는 누군가가 적정선 이상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내게 등을 돌릴 사람들이라는 두려움을 견딜 수가 없어 결국 내가 먼저 그들에게 등을 돌려버리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상황들은 적잖이 반복됐고 결국 어느 날, 나 또한 아기순록처럼 스스로 인정을 해버리고 만다. 그 모든 것의 원인은 '자기혐오'였다는 걸.
그 즈음 나는 거의 일주일 내내 일상 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가슴을 치고 바닥에 통곡하며 밤낮으로 울기만 했다. 난생 처음 가본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처방받은 약은 한 번만 먹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SNS의 댓글을 읽지 않기 시작했다. 그 어떤 실낱의 맥락적 연관성도 없는 게시물에 잔뜩 화난 댓글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면서 피로감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경험상 자기혐오를 인정하는 건 몹시 어렵고 괴롭다. 그 어떤 끔찍한 말로도 묘사할 수 없을 만큼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인정하는데 십수년이 걸렸다. 결국 인간은 자기혐오를 인정하는 대신 타인에게 투영하는 더 쉬운 방식을 택함으로서 교묘하게 자신의 그늘을 요리조리 피해다닌다. 단언컨대 혐오가 만연한 시대가 된 이유를 나는 여기서 찾고 싶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았지만 놀랍게도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이자 동시에 감독이었던 리차드 개드(Richard Gadd)는 실제 사건의 당사자라고 한다. 그는 자기혐오의 늪에서 빠져나왔을까? 아니면 빠져 나올듯 더 깊이 빠지는 그 곳에서 아직도 외롭게 싸우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