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는 존재를 부연한다
창가에 무언가를 말하는 듯 흩뿌리며
내리는 비는 성의가 없어야 하며,
잠깐 눈이 마주친 그녀가 건네는
간단한 인사는
무심한 듯 목례 정도여야 하며,
그런 그녀는 나와 국적이 달라야 한다.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모를
가느다란 바람은
기억을 더듬어 봐도 알 수 없이 낯설어야 하며,
저마다 앉아있는 주위 사람들의 눈동자나 머리카락은
나와는 다른 색깔이어야 한다.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그때와 다르게
이를테면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 정도였으면 좋겠다.
이 정도면 좋겠다.
이 정도면 내가 너를 기억해서 지워내도 미안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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