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고리의 하루

2020년 2월 17일, 네팔, 랑탕 트래킹

by 장인

어두운 산 위의 달은 생각보다 더 밝다. 12시부터 바람이 세게 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트래킹을 시작해야 한다는 빠상의 말에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시간에 롯지를 나섰다. 4000미터가 넘는 고도에 걸맞지 않게 바깥공기는 푸근하면서 고요했다. 풀 뜯어먹는 야크 무리와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시작은 평지였다. 너무 평화로워서 언젠간 깨질게 확실한 그런 평화였다. 올라야 하는 고도가 1000미터임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앞에 축 늘어져있는 평지가 달갑지 않았다. 평지를 걸으면 걸을수록 나는 앞으로 올라야 하는 고도를 더 걱정했다. 맞다. 나는 자주 다가올 미래가 닳을 정도로 걱정하다가 현재를 잊는다.

평지의 끝에서 본 체르고리의 꼭대기는 역시나 너무 높았다. 내가 고개를 45도로 꺾어서 하늘을 향해 올려다봐야 하는 그런 경사, 그런 높이였다. 너무 높아서 꼭대기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오르막길은 중간은 없다는 듯이 날카롭게 위로 뻗어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 너무나도 잘 알았다. 이젠 초입부에 있는 평지랑 내리막에 속을 짬이 아니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저 꼭대기를 어떻게든 도착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걸어 올라갔다. 허리를 펴고 편하게 서있을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오르막이 계속 계속 계속 이어졌다.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보통은 빠상과 내 거리가 멀어지면, 아무도 안 보이는 그 길에서 나는 나아갈 이유를 찾고 나 자신을 설득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엔 뭔가 달랐다. 나는 나를 설득할 수 없었다. 풍경은 숙소에서 보는 것과 비슷했고, 숨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찼다. 다리는 점점 더 무거워졌고, 몽롱해졌다. 고산증이 왔다. 아무리 헐떡여도 증상은 그대로였다.


"빠상. 나 더 못 가! 내려가자!".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는데도 저 멀리에 있는 빠상은 내 절규를 듣지 못했다. 처음으로 산에서 포기를 입 밖으로 냈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적은 많았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로선 범상치 않은 포기 선언이었지만 결정적으로 빠상이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계속 갔다. 어쨌거나 내가 선택한 길이긴 했다.

우리는 바람이 세서 눈이 쌓이지 않는 비탈길에 앉았다.

나는 금방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빨리 주저앉아야 했다. 주저앉을 수 있는 땅바닥을 찾기 위해 걸었다. 그 이상의 이하의 이유도 없었다. 저 멀리 빠상이 서있었고, 내 속도를 보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린듯했다. 드디어 가까스로 평지라고 할 수 있는 지형이 나타났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주저앉았다. 포기 선언은 잠시 삼키고 먹기 싫은 쿠키를 입에 쑤셔 넣었다. 씹는 일 조차 버거웠다.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올라와버렸다. 이렇게 힘을 많이 들이고도 포기자가 되는 게 억울하기도 했고 엄마가 놀릴 것도 분명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머리까지 아파왔다. 두개골이 뇌를 감싸고 있는 게 느껴졌고 가만히 서있어도 심장소리가 들렸다. 줄줄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을 힘도 없었다. 그래도 여러 비이성적인 이유들이 낳은 이상한 오기로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눈도 많아졌다. 빠상은 얄미울 정도로 발이 잘 빠질만한 지점을 알았고 나는 몰랐다. 나만 걸리는 악어 이빨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혼자 20번도 넘게 걸렸다.


큰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당장 직면한 작은 목표에 집중했다. 멀리 있는 꼭대기를 보기보단 내가 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나와 약속한 열 걸음을 걷고 숨을 몰아쉬면서 서있다가 다시 출발하곤 했다. 돌에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발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 빠진 다리가 젖기 전에 빨리 빠져나오는 방법을 터득했다. 비스타레이, 비스타레이. 길 같지도 않은 길을 넘고 기어서 드디어 체르고리 꼭대기 이마가 다시 보였다. 해냈다는 마음으로 꼭대기까지 펄쩍 뛰어 올라가기엔 체력이 부족했다. 끝없는 오르막을 오른 지 6시간쯤 되던 때였다.

솔직히 말하면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보단 이제는 드디어 위로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아마 울 힘이 남아있었으면 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눈물 대신 콧물이 흘렀다. 콧물이 흐르다 못해 바람에 뚝 끊겨서 빗방울처럼 날아갔다. 가끔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내 패딩에 안착하기도 했다(이 패딩은 생각난 김에 내일 당장 드라이를 맡겨야겠다).


내 눈과 카메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날 압도했고, 봉우리들의 이름과 생김새를 세세하게 기억하는 건 포기했다. 느낌만이라도 제대로 기억하기로 했다. 타멜거리에서 급하게 오백 원 주고 산 모자, 주체할 수 없는 콧물, 3일 간 물이라곤 땀밖에 못 만난 내 머리카락을 내 나름 성심성의껏 정리하고 사진도 몇 장 찍었다.


풍경 다음으로는 바람이 날 압도했다. 바람이 무섭게 느껴진 적은 있어도 아프게 느껴진 적은 없었는데 이 날은 바람이 아팠다. 빠상이 말한 대로 12시가 되자마자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고, 5분 이상 꼭대기에 서있을 수가 없었다. 올라올 때에도 답이 없었던 길은 내려갈 때에도 마찬가지로 답이 없었다. 산신령인 우리 아빠도 여기는 힘들어할거다.


내려가는 길에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이안 할아버지였다. 이 큰 산에 나랑 빠상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안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얼굴이 새빨갰고 나보다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랬듯 할아버지는 천천히 위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 와중에 따뜻한 격려의 말도 잊지 않으셨다. 덕분에 세네 번은 엎어질 내리막에서 한 번도 안 엎어졌다.


내려가다가 얼굴이 아프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겼다. 다리, 심장소리, 콧물에 집중돼있던 신경이 다른 곳까지 퍼졌다는 건 여유가 생겼다는 얘기다. 문득 바트가 선크림 왜 안 바르냐며 잔소리를 했던 게 기억이 났다. 선크림이 가방 어디에 처박혀있는지도 모르는데 선크림을 발랐을 리가 만무했다. 얼굴이 후끈후끈하고 무릎이 아파올 때쯤 드디어 망할 평지가 보였다. 다리가 너덜너덜해져서 롯지에 도착했다. 4층에 있는 다이닝룸은 이 날의 마지막 고비였다.

끝은 장황하거나 간결하지도 깔끔하지 않다고는 했지만, 체르고리의 끝은 확실했다. 콜라. 그리고 내 영혼을 치유해줄 미역국. 씨위드는 싫고 위드만 좋다는 바트는 다이닝룸에서 여유롭게 혼자 솔리테어를 하면서 앉아있었다. 미역국을 경건하게 먹고 고도 때문에 뿜어져 나오는 콜라도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서 누웠다. 햇살이 딱 내 가슴 쪽에 오는데, 내가 왜 이 좋은걸 두고 체르고리를 다녀왔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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