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 리뷰

헬조선식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by 김인혁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사회주의 진영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자본의 물결은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는 얼마 가지 않아 자멸할 것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이 우습게 들릴 정도로 자본주의는 오랫동안 인류의 경제체계로 자리매김했으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사회를 떠 받드는 동시에 지배하고 있다.

제목과 포스터부터 단도직입적인 영화 <돈>은 이런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각기 다른 인간군상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시스템에 길들여진 순응형 인간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일현 역시 초짜 주식 중개인으로서 어떻게든 이 시스템에서 효율적인 노동력으로 인정받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그의 유능한 동료들이나 직장 상사 또한 이 시스템에서 어떻게든 살기 위해 하루 종일 전화를 붙잡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며 '고객들'의 신임을 받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며 오늘도 살아가는 시스템의 지배를 받는 '부품'일뿐이다. 일현은 회사라는 시스템 속 시스템에 묶인 채 살아가는 삶을 탈출하고 더 시스템에서 허락하는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증권사에서 입소문으로만 존재하는 '번호표'를 찾아가게 된다.

유지태가 연기하는 이 '번호표'라는 인물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고 거기서 이득과 희열을 느끼는 편승형 인간이다. 그는 이 시스템에서 어떻게든 더 많은 것을 차지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순응형 인간들을 유혹하고 이용한다. 영화는 이 번호표의 뒷배경이나 인물 묘사를 철저히 배제한 채 끝까지 모호한 정체를 유지한다. 그가 이런 '작전'들을 세우는 이유는 단 하나, 오직 재미를 위해서이다. 그의 행동에는 어떤 금전적 동기도 없다. 그저 판을 설계하고 사람들을 자신의 말로 삼아 계획대로 움직이게 하고 변수를 통제할 뿐이다.

이런 '번호표'의 존재는 찬란하게만 보이는 자본주의의 허점을 나타낸다. 키보드 몇 번 두드리는 걸로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현실과 누군가 돈을 얻으면 누군가 돈을 잃는 이 복잡하고 차가운 현실 속에서 번호표는 지금도 살아서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이 시스템을 감독하는 감시형 인물들, 바로 금감원의 한지철 같은 인물들이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정의를 실현하고 이 필드에서 페어플레이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한지철은 언뜻 보면 시스템의 가장 위에 위치한 최상위 포식자 같아 보이지만 결국 그 또한 시스템이 있기에 존재하는 시스템에 묶여있는 인물이며 일현과 똑같이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순응형 인물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런 다양한 인물 군상들을 모아 한 때 유행이었던 기득권층의 부패와 정경유착을 다루는 사회고발물이 아닌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회초년생 일현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이 시스템에서 어떻게 인간이 변해가는지 일현의 내레이션을 더해 관찰하고 바라보기만 한다.


물론 일현의 성장 스토리 같은 초반 전개와 달리 뒤로 갈수록 자꾸만 범죄 스릴러와 흔한 사기꾼 영화로 되어버리는 전개가 아쉽지만 시스템이 아닌 그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을 가까이 분석하고 보여준다는 점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런 연출을 통해 영화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꼬집어내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시스템에 이용당하는 인간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더불어 어리바리한 사회 초년생부터 돈의 맛에 길들여져 서서히 미쳐가는 연기까지 가능한 류준열을 원탑으로 내세워 다시 한번 류준열이 원탑 주연까지 가능한 좋은 배우임을 <독전>과 <더 킹>에 이어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는 점은 높게 쳐주고 싶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단순히 '번호표'를 잡기 위한 '범죄 스릴러'로 변하는 연출과 이런 연출로 전반부에 차곡차곡 쌓아둔 스토리텔링이 순식간에 그저 단순한 범인 잡기 게임으로 끝나는 점이 매우 아쉽다. 권력의 맛에 길들여져 자멸하는 인간 군상을 다룬 영화가 발에 치일 정도로 많고 매번 비슷한 패턴으로 끝나는걸 일부러 피하기 위해 이런 결말을 택했다면 이해가 가지만 좀 더 깊이 시스템 내에서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더 깊은 고찰과 분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일현과 같은 처지에 있던 인물들 또한 번호표에 의해 전부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번호표의 악행을 강조하고 번호표가 잡혀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억지로 넣은 장면처럼 느껴졌다. 굳이 죽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욕심에 의해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조금 더 영화가 말하려는 바가 뚜렷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초반부터 내레이션과 1인칭으로 전개되는 연출을 통해 일현이라는 인물을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몰입하게 만들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예측되는 '이용당하다가 뒤통수 친다'라는 범죄 오락 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기지 못한 채 허무하게 결말을 맺는다.

영화 결말부에서 카메라는 복잡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각자 이 시스템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과 우리 모두 언젠가는 '쨍하고 해 뜰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사람들을 헤치고 지하철에 오르지만 모두가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일현은 이 시스템의 허점이라는 단물을 빨아먹고 그토록 원하는 '부자'가 되는 데 성공한다. 이런 결말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가 보여주려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는 생각이 든다.


한줄평: 억 소리 나는 숫자도 결국은 0으로 끝난다는 허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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