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백> 리뷰

식구란 무엇인가

by 김인혁

영화 <미쓰백>을 단순히 모성애에 관한 영화라고 재단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모성애라는 가치가 영화에서 미쓰백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중요하게 쓰이지만 영화의 연출은 포커스를 모성애나 사회적 가치가 아닌 미쓰백의 정신적 성장에 최대한 맞추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또한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아이와 여자라는 존재를 전면에 내세워 다른 누구가 아닌 오로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도 한 작품이다.


제목부터 자기주장이 강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쓰백이라는 인물의 성장을 그리는데 초점을 둔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소녀 ‘지은’ 은 미쓰백이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며 동시에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극복해 나갈 수 있게 미쓰백을 도와주는 영화적 도구 같은 존재로만 묘사된다. 물론 영화는 이 둘 사이의 교감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짧은 러닝타임 내에 이야기를 전개시켜야 하다 보니 많은 것을 생략한 느낌이다. 오직 자신의 생존이 주된 목표였던 미쓰백이 갑자기 아이에게 연민을 느끼고 아이와 함께 도망치는 모습 또한 갑작스럽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필자는 미쓰백이 모성애라는 걸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무의식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라는 갈증에 시달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기에 누구보다 더 간절했던 이 ‘모성애’라는 감정은 늘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고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었던 미쓰백을 각성시키고 자신만의 생존이 아닌 모두의 생존을 위한 이타적인 삶을 살도록 만든다.




미쓰백과 지은은 둘 다 어린 시절 가정으로부터 학대를 받고 사회에서 외면받는 존재들이다.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둘은 억압받는 여성층을 대변한다. 성폭행을 당할뻔한 ‘피해자’였지만 가해자가 사회 지도층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순식간에 ‘살인 미수’로 전과자로 찍힌 미쓰백과 늘 폭력에 시달리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방치된 여아 지은. 어딘가 닮은 이 둘 이 처음으로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 오로지 즐기기 위해 간 곳은 식당이나 놀이공원이 아닌 그 옆에 있는 바다다. 온종일 비좁고 냄새나는 화장실과 집에 갇혀있던 지은이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무한한 바다, 겉보기에는 마냥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는 먹이사슬로 뒤 덮인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생물체들이 득실 한 세계. 영화는 이 바다의 이중성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영화는 미쓰백과 지은의 관계와 교감보다 이 둘을 둘러싼 외부적인 갈등 요인에 주목한다. 틈만 나면 뉴스 화면과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가정 폭행의 현실을 고발하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자꾸 주려고 한다. 더군다나 짧은 러닝타임 내에 미쓰백과 지은의 관계를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이 둘 사이를 방해하는 악역을 투여해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쉽게 동요하고 연민을 느끼게 하려고 한다. 가정폭력이라는 복잡하고도 많은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 사회적 이슈를 단순히 편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로 단순화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연출 때문에 영화의 전반부는 미쓰백과 지은의 사랑을 다루고 후반부로 갈수록 이 둘이 사회적 질타를 피해 사랑의 도피를 하고 악당부터 히로인을 구출해내는 히어로의 모습을 그리는 범죄 스릴러로 분위기가 변주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쓰백>은 이런 기승전결이 뻔한 이야기를 배우들의 열연으로 채워나가며, 특히 한지민이라는 배우의 연기적 스펙트럼을 넓힌 내면의 아픔을 가지고 강한척하는 인물 연기가 인상 깊었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결말부에 지은이 새로운 가족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밝은 톤으로 그려지는 이 장면은 미쓰백과 지은이가 그토록 원했던 가족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사소하면서도 일상적이라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야말로 같은 밥을 먹는 ‘식구’라는 공동체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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