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혁 Aug 25. 2022

그럴듯한 상승, 실소만 나오는 추락

영화 <비상선언> 리뷰

사람마다 말하는 '좋은 영화의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의 기준은 '기본'에 충실한 영화다. 각 장르마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일종의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룰 같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는 범인과 형사 간의 치밀한 두뇌싸움이 그려져야 하고, 액션 영화에서는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액션이 펼쳐져야 하며, 공포 영화에는 또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관객들을 기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언뜻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세상에는 이 당연한 것들을 지키지 못하는 영화들이 정말 많다. 때로는 너무 부족해서, 때로는 너무 과해서 수많은 영화들이 금세 잊혀지고 만다. 좋은 영화는 관객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그 기대감을 만족시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영화도 트렌드다. 사회에 따라, 시대에 따라, 관객의 기대에 따라 영화들의 주제도 조금씩 변화한다. 과거 재난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재해는 주로 홍수나 지진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대부분이었다.  


마치 <해운대>나 <감기>처럼, 과거의 재난 영화는 위대한 자연의 힘 아래 무너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아낸다. 재해라는 외적인 갈등을 통해 새롭게 연대하고 화해하는 개개인의 모습과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건 재난 영화의 오래된 클리셰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의 재난 영화는 자연재해에서 인재로 시선을 돌린다. 자연재해와 인재의 차이점은 재난의 원인, 즉 재난의 주범이자 갈등을 일으키는 근본적 인물 또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연재해가 등장하는 재난 영화는 주로 재난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수동적으로 휩쓸리는 인간을 그려낸다면, 인재가 등장하는 재난영화는 개개인이 재난에 어떻게 맞서 어떻게 반응하고 또 맞서는지 담아낸다. 이전보다는 재난에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훨씬 더 능동적으로 변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 <비상선언>의 재난 또한 인간에서 시작된 그런 종류의 재난이다. <비상선언>의 재난은 임시완이 분한 '류진석'이라는 인물이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그의 짧은 대화씬을 통해 우리는 류진석이라는 인물이 정장이라는 '일상적'인 의상으로 일상에 숨어들려고 하지만, 비일상적임을 넘어 일상을 파괴하려 드는 인물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진석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이중성'이다. 침착하지만 지극히 감정적이고, 타인의 고통을 즐기지만 자신의 고통엔 누구보다 예민하며, 누구보다 친절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상스러운 욕을 면전에 내뱉는 사람. <비상선언>의 재난 그 자체이자, 등장부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부담이 큰 '진석'이라는 역할을 임시완은 마치 제 옷처럼 소화해 낸다.    

 

그러나 영화는 진석이 비행기에 탑승하며 그동안 쌓아 올린 서스펜스가 극에 달하는 순간, 진석이라는 인물을 죽게 만들고 아예 서사에서 배제한다. 관객들의 기대가 첫 번째로 무너지는 순간이다. 비행기에서 벌어지는 테러범과 탑승객의 갈등이라는 서사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비상선언>은 갈등의 대상을 끊임없이 교체한다. 

감염자와 비감염자라는 개인 간의 갈등에서, 지상과 공중 간의 사회적인 갈등, 국가와 국가 간의 정치적 갈등까지. 게다가 주요 인물들 간의 개인적인 서사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 수많은 갈등이 등장하고, 허무하게 해결됐다가 사라진다.  


'비행기 테러'라는 재난을 통해 한국의 사회를 담아내겠다는 감독의 의도는 좋았으나, 문제는 그 의도를 전달하는 과정이 너무 서툴다. 일상과 비일상의 충돌이라는 영화의 핵심적인 갈등을 제대로 담아내지도 못하면서, 테러 사건 하나로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얼굴을 담아내기에는 욕심이 과하다. 


재난영화라는 장르도 동일하며, 사회 풍자라는 메시지도 성공적으로 담아냈으며 흥행도 성공한 <터널>의 경우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생존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면, <비상선언>은 반대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오히려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부수적인 요소로 전락한다. 한 마디로 메시지를 위해 영화가 존재하는, 우선순위가 바뀐 기현상이 영화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 외에도 주연 배우들을 제외한 엑스트라들의 처참한 연기 수준과, 너무나 작위적인 대사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실소만 터져 나왔다. 게다가 뉴스 송출 장면이나, 탑승객들이 영상 통화로 가족들에게 마지막 할 말을 남기는 장면을 큰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연출은 '세월호'라는 국민적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 같아 거부감까지 들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마치 영웅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것도 다 큰 성인이 아닌, 어린아이의 입을 빌려,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사고를 지닌 '올바른' 아이는 이런 것'이라는 지극히 의도된 연출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다수의 생존을 위해 개인의 희생 정도는 감수해도 된다면, 영화에 등장하는 자위대의 가미카제 또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위험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상업영화를 기대하고 갔던 관객들에게 감독의 개인적인 가치관을 '교육'시키는 영화, 딱 여기까지가 <비상선언>이 지닌 연출의 한계다.  


<더 테러 라이브>를 꿈꿨으나 <부산행>으로 시작돼 <연가시>로 진행되고, 결국 <설리>로 끝난다. 모든 것들이 뻔하고 어설픈 이 영화의 의외성은 임시완이 유일하다. 한국 영화가 가지고 있던 '빈약한 스토리텔링'과 '작가주의'라는 오랜 고질병을 다시 체감하고, 그나마 임시완이라는 배우에서 새로운 한 줄기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영화. 배우들은 성장하고 있지만, 배우를 담아내기 위한 영화라는 그릇은 아직도 턱 없이 부족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리극의 탈을 쓴 현대 사회 우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