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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Sep 02. 2022

승부수는 없고, 기교만 잔뜩.

영화 <서울대작전> 리뷰


세상에는 다양한 영화들이 있다. 꼭 세상 모든 감독들이 봉준호나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거장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짙은 여운이 남는 무거운 영화를 좋아하는 한편, 또 누군가는 굳이 영화를 보면서까지 깊은 생각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취향이 존재한다.  


분명히 작품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시간을 때우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영화. 그런 영화들을 우리는 팝콘 무비, 또는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부른다. 팝콘 무비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간단한 설정'이다. 관객들이 머리를 쓰지 않고도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흥미를 끌게 만드는 그런 서사가 필요하다. 


가령 <콰이어트 플레이스> 같은 영화가 그렇다. '소리내면 죽는다'는 간단하면서도 치명적인 한 줄의 설정을 하나를 가지고 무려 90분에 달하는 스릴러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는? 1700만 달러의 제작비로 3억이 넘는 극장 총 수익을 달성했다. 간단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영화의 설정은 관객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두 번째는 '자극'이다. 자극의 종류는 다양하다. 폭력이 될 수도 있고, 섹스가 될 수도 있고, 화려한 액션씬이나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범죄가 될 수 있다. 자극은 일종의 속임수다. 자극은 영화에서 흘러가는 서사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이 집중을 놓지 않게 만든다.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영화에 완전히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 '자극'의 가장 큰 목적이다. 


마지막은 '적당한 메시지'다. 팝콘 영화의 메시지는 절대로 직접적이어서는 안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총을 난사하던 주인공이 뜬금없이 의미심장한 대사를 날린다거나, 유쾌하게만 흘러가던 영화의 분위기를 뚝 자르고 갑작스럽게 무거운 이야기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사실 팝콘 영화뿐만 아니라, 어느 영화여도 주인공이 직접 입을 열어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는 사실상 연출에 실패한 영화다. 메시지는 듣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이 인물의 행동을 통해 스스로 발견해 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서울대작전>에 대입해 보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바로 '메시지'다. 

<서울대작전>은 하이스트 영화의 구조를 따라간다. 하이스트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모두 자신만의 주특기가 있다. 이 주특기를 가지고 하나의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것이 하이스트 영화의 묘미다.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캐릭터'다. 영화 <도둑들>의 예니콜이나 뽀빠이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으면 하이스트 영화는 시작부터 꼬여버린다.   


여기서 <서울대작전>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서로 어떤 관계이며, 어쩌다 모였는지부터 저 '빵꾸'라는 곳은 어떤 곳이며 인물들이 맡은 포지션은 무엇인지 관객들은 눈치로 알아맞춰야 한다. 인물 간의 서사부터가 빈약하니 이야기 전체의 서사가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 동욱의 라이벌이라고 하는 갈치는 어떤 인물인지, 왜 그렇게 동욱에게 열등감을 갖는지 제대로 설명도 되지 않은 채 오직 영화의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인물로만 활용된다. 


'안검사'라는 역할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의인'이라는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를 가지고, 영화는 안검사를 단순히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인물로만 이용한다. 인물들의 매력을 제대로 탐구하기도 전에, 영화는 흘러가는 사건을 쫓아가기에만 바쁘다.   

아무리 팝콘무비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고민도 없이, <서울대작전>은 온통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쓴 영화다. 요즘 트렌드인 '레트로'를 의식한 듯한 의상이나 소품들은 분명 시선이 가게 만들지만, 문제는 그게 전부다. 

장면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분명 광고의 한 장면처럼 멋있어 보이지만, 한 영화의 장면으로서 멀리서 보면 흔한 광고 카피를 갖다 붙여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어울리지 않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봐줄 수 있는 한국 영화에서는 낯선 '카 레이싱'이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점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정작 카 레이싱이 등장하는 장면은 몇 번 있지도 않고 특별한 점도 없다는 것을 넘어, 아예 무난한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카체이싱 장면이 더 나을 정도로 볼거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결점은 바로 '메시지'다. 한없이 가볍게 시작한 영화에서 갑작스럽게 독재 정권에 맞선 용감한 청년들의 정의감을 이야기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던 주인공들이 갑작스럽게 애국자로 변하고, 나름 진지하게 다룰 줄 알았던 카 레이싱이라는 소재는 몇 번 등장하지도 않다가 그마저도 영화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어설프게 쓰이는 데서 그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볍게만 흘러갔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어설프게 담아낸 정치적인 메시지가 영화의 정체성까지 흐리게 만든다. 영화에 등장하는 '빵꾸팸'의 멤버들 같은 기백은 봐 줄만 하지만, 끝까지 보여주기식 허세에만 열을 올리다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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