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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Sep 13. 2022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 리뷰

이전보다 뜨겁지만, 치열하지는 않았던


수리남. 이 낯선 단어를 듣고 곧바로 나라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라 이름이라고 하기엔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의 이 땅을, 윤종빈 감독은 자신의 다음 서사가 펼쳐질 장소로 선택했다. 마약과 범죄, 돈과 부패한 정치세력으로 뒤덮인 이곳에서 윤종빈 감독은 무엇을 봤을까.  


<수리남>에는 윤종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익숙한 모습이 등장한다. 제일 먼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암흑의 세계로 발을 디딘 가장의 모습이 눈에 띈다. 전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최민식이 보여줬던 최익현이라는 한 가장의 역할을 영화에 함께 출연한 하정우가 이어받은 듯, 하정우가 맡은 강인구 역에는 '최익현'을 포함한 그동안 윤종빈의 서사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의 특성이 군데군데 묻어있다.


'가족'이라는 목표 하나로 암흑가의 세계에 발을 디딘다는 점은 앞서 언급한 <범죄와의 전쟁>의 최익현이, 조직의 스파이가 되어 잠입한다는 설정은 <공작>의 흑금성이 떠오르기도 한다. 차이가 있다면 강인구라는 인물은 최익현보다는 조금 더 합법적인 선에서, <공작>의 흑금성이 추구하는 국익보다는 돈과 가족이라는 '사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묘하게 다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끝없이 서로를 의심해야 했던 전작들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믿음과 의심이 드라마의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한다. '목사'라는 성스러운 역할로 처음 등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마약왕이라는 추악한 모습을 가린 채 모두를 속이는 전요환. 복수를 위해 자신의 정체와 과거를 숨기고 전요환에게 접근하는 강인구. 그리고 전요환을 잡기 위해 브로커로 위장하는 국정원 요원 최창호까지.


모두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 원하는 '누군가'가 되어 연기한다. 이 시리즈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단어는 바로 '이중성'이다. 누군가에겐 지친 삶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자 희망이 되는 신앙이, 누군가에겐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아버지'라는 가족과의 의미 있는 추억을 상징하던 '홍어'라는 음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에 이용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다음으로는 굉장히 현실적인 설정들이 눈에 띈다. <수리남>의 주인공 인구는 국익을 위하는 애국가도, 개인의 복수만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대신 '사업가'로서의 모습을 강조한다. 어설픈 정의감이나 복수심으로 움직이지 않고, 철저히 비즈니스적으로 이익이 되는 관계를 추구하는 인구의 인물상은 관객들에게 종잡을 수 없는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낸다. 언제나 정의를 위해 몸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전형적인 주인공 상에 지쳐있었던 관객이라면, 인구라는 캐릭터는 관객조차 뒤통수를 만지작거리게 만드는 신선한 캐릭터의 등장이다. 

윤종빈의 서사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살던 세계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발을 내미는 소시민.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히로뽕을 파는 것에서 시작해, 암흑가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최익현이 그랬고, <공작>에서는 국익이라는 가치를 위해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를 거짓으로 포장해야 했던 흑금성이 그랬다. 


<수리남>의 인구 역시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수산업자'라는 소시민의 타이틀을 달고 그는 닥치는 대로 가족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됐던 홍어 판매 역시, 어디까지나 가족을 위해 선택한 그의 결단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윤종빈의 아버지 3부작이라는 표현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의 아버지들과 인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구는 관객조차도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분명 정의를 행하는 듯 보이지만 그는 분명 돈에 움직이고, 친구의 복수를 위하겠다는 명분을 잊은 듯 보이면서도 언제나 그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사는 인물이다.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수리남>의 서사는 그래서 더 긴장감이 넘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방관자의 역할로서 끝날 수 있었던 인물에게 계속 서사를 부여하다 보니, 몰입이 깨지는 지점들도 존재한다. 평범한 사업가였던 인구가 총을 들고, 갱의 보스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면하며 국정원의 지시에 반기를 드는 장면은 살짝 의아하다. 순간순간의 의아한 지점들을 넘어가면, 자본으로 똘똘 뭉친 화려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권총으로 시작해 각종 중화기와 탱크, 헬기까지 등장하는 장면들은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자본의 힘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다.  

마약과 폭력이라는 눈속임 거리를 제하고 나면 이야기꾼 윤종빈 감독의 단단한 서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리남>은 한 마디로 '구라'의 향연이다.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능청스럽게 상대방을 속이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두가 거짓을 말한다. 


이렇게 끝없는 이중성의 굴레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또다시 서로를 의심하고 또다시 믿음을 건다. 인물의 심리 묘사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빈틈들은 이국적인 풍경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액션들과 한 층 거대해진 스케일들이 매워 넣는다. 언뜻 보기에 이 공식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들은 있다. 분명 자본의 힘으로 순간순간의 장면들은 더 뜨거워졌지만, <공작>이나 <범죄와의 전쟁> 같은 치열한 심리 싸움이나 인물들의 내면 묘사는 조금 느슨해졌다.  


한 편으로는 그동안 말로만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번 기회에 모두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윤종빈 감독의 결단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범죄와의 전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반달로서 살아온 최익현의 껍데기 같은 삶을 비유하는 '총알 없는 빈 총' 같은 소품처럼 인물을 상징하는 메타포들의 활용은 여전히 반짝거린다. 전요환이 인구에게 남기고 간 '야구공'처럼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남기고 가는 것도 익숙하게 봐온 윤종빈식 서사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아쉬운 점 또한 어디까지나 '윤종빈'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느껴지는 아쉬움일 뿐이지, 드라마의 퀄리티를 의심하게 만드는 수준의 아쉬움은 아니다.     

좋게 보자면 그동안 해 오던 것들을 착실하게 해 낸 케이스로 볼 수 있고, 나쁘게 보자면 늘 해오던 이야기에 늘 봐오던 배우들의 연기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 됐든 간에, <수리남>의 이야기는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자극적인 맛이다. 영화가 아닌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쪼개진 시리즈의 특성을 잘 살린 줄거리 분배가 다음 에피소드를 어떻게든지 보게 만든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의 흥행 실패로 넷플릭스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진 지금, <수리남>은 아마도 그 해답을 쥐고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영화 이야기는 여기서: https://maily.so/weekly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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