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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Sep 27. 2022

현실의 물음에 답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상

영화 <브로커> 리뷰 

아이의 생모, 아이를 팔려는 2인조 브로커, 그리고 이들을 뒤쫓는 경찰들. 영화 <브로커>는 이 기묘한 동행에서 시작된다.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이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시 한 번 이들의 동행을 통해 '가족'이라는 존재에 질문을 던진다. 


전혀 일면식도 없던 이들이 이렇게 복잡하게 엮이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우성'이라는 이름의 한 아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 그래서 '아기'라는 존재는 숭고한 생명을 상징하기도 하며, 연민과 보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브로커>에 등장하는 '아기'의 대접은 각박하기만 하다. 브로커들은 그 의도가 어찌 됐든, 결국 '아기'를 팔아넘겨야 하는 상품으로 본다. 아무리 허울 좋은 핑계를 갖다 붙이며 상현과 동수가 자신들의 행동을 변호하려고 해도, 소영이 그랬듯 세상은 이들을 '브로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들로 바라본다. 


이들을 뒤쫓는 경찰들의 행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기를 팔아넘기는 현장을 체포하기 위해 아이의 판매를 유도하는 등 아기를 생명이 아닌 사건 해결을 위한 하나의 단서로만 바라본다. 영화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의미의 '브로커'는 결국 이들 모두인 셈이다. 

버려진 아이와 주변인들. 사실 이미 이 정도의 설정이면 <브로커>가 나아갈 방향은 이미 분명하다. 불완전한 가족을 경험했던 이들이 '아기'라는 생명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고, 더 나아가 이들이 직접 서로의 가족이 되기로 결심한다. 중요한 것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이 이야기를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현실과 이상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에서, '이상'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낙태와 입양, 부모가 되기 위한 조건, 가족의 의미 등등 현실의 문제들에 대한 답은 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연성이 전혀 없는 신파를 통해 관객들에게 눈물로 호소하지도 않는다. 


대신 영화는 이들의 동행을 감성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미 가족이라는 존재에 상처를 받았던 이들이, 다시 가족을 통해 위로를 받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영화는 잔잔하게 바라본다. 충분히 극단적인 설정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브로커'라는 거창한 이름에 맞지 않게 인간적이며, 감정적인 상현과 동수의 모습을 통해 이들에게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연출이 가장 대표적이다. 

또한 처음에는 아이를 버리려고만 했던 소영이, 사실은 누구보다 엄마가 되고 싶었음을 보여주는 연출을 통해 영화는 이들 모두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사실은 모두 가족이 되고 싶어 했다고 말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현실이 아닌, 지극히 이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이해가 가능한 이야기다. 이들의 행동이 납득이 가능한 이유는 오로지 '감성'뿐이다. 왜 소영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긴 아이에게 모성애를 느끼는지, 누구보다 이 일을 몇 번이고 더 해봤을 2인조 브로커가 갑자기 왜 가족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는지 영화 내내 봐왔던 장면들로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점이 바로 <브로커>의 장점이자, 약점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상품도, 수단도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아기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이들이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분명 현실이 원하는 이상적인 결말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작은 환대의 말에 마음의 문을 한 번에 열었다는 빈약한 이야기들이, 영화에 짧게 스쳐 지나가는 범죄와 낙태라는 현실 속의 무거운 이야기들이 <브로커>를 마냥 동화 속 낭만적인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기엔 발목을 잡는다.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보여줬던 '가족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내놓은 섬세한 대답 대신,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의 문제에 대한 답은 작은 관심과 사랑이라는 성의 없는 대답만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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