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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May 05. 2019

영화 <악질경찰> 리뷰

현실에 대한 '예의'의 부재

한줄평: 과감함과 유치함의 차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실화라는 것이 늘 대중의 관심을 이끄는 흥미로운 소재이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나 사실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흥행이 보장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실화라는 현실이 아무리 드라마틱하고 정말 '영화' 뺨치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영화의 흥행 여부는 이 실화를 영화에 맞게 '가공'하는 감독의 역량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가공'을 한다는 의미는 세 가지 의미이다. 첫 번째는 실화가 가지고 있는 드라마틱함에 중점을 두고 그 점을 더 부풀리고 부각시키는 '가공'. 영화를 예로 들자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이 있다.

두 번째는 실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이야기 틀은 유지하고 나머지는 감독의 영화적 상상과 재치로 마구 채워 넣는 형식의 '가공'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바스타즈: 거친 녀석들>과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배경으로 한 <아이들...>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실화와 픽션을 잘 균형 있게 배합하다는 전제 하에 흥행에 가장 성공하기 쉬운 가공이지만 이 역시도 팩트와 픽션,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지 않으면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위험 요소가 있다.

마지막으로 실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기는 '가공'이 있다. 실화를 그대로 옮겼다는 점에서는 호평을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이 점 때문에 자칫 다큐멘터리처럼 지루한 영화 같지 않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감독에게는 제일 꺼려지는 유형의 '가공'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오락과 편의를 위해 '가공'된 현실을 보러 가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이지 정말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러 가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가공을 택하는 영화는 주로 역사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데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이 가공법을 자주 택하곤 한다. 병자호란을 다룬 <남한산성>이나 임호화변을 다룬 <사도>가 대표적인 영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라는 아직까지도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영화 <악질 경찰>에서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악질 경찰>은 위에서 언급한 그 어떤 유형의 가공도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을 택한다. 부패경찰이 기득권에 맞서 싸운다는 한국영화에서 과소비된 클리셰 범벅인 스토리 틀에 좀 더 자극적인 맛을 주기 위해 세월호라는 예민한 이슈를 조미료처럼 사용한 것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물론 너무 명확하다. 명확하다 못해 유치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배우들은 현 시국을 비판하는 직접적인 오그라드는 대사들을 남발하고 영화는 메시지 전달에 초점을 맞춘 채 영화를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개연성이나 인물의 감정선은 깡그리 무시해 버린다.

영화는 자신이 제일 악질이라고 믿었던 조필호 (이선균)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부패 공무원인 남검사 (박병은)라는 더 악한 인물을,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어른들에게도 욕설을 퍼붓는 소녀 미나 (전소니)에게는 정말 '악한' 어른인 태주 (박해준)를 등장시킴으로써 "정말 '악질'인건 주인공들이 아닌 이 사회와 기득권층이다"라는 구닥다리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혼수상태인 민간잠수사를 제외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전부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기적인 악인들 뿐이다. 문제는 남검사나 태주 같은 이런 안타고니스트 캐릭터들을 통해 주인공들의 악행을 상대적으로 축소시키고 이 더러운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악하게 살았다는 변명거리를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주인공들보다 더 진짜 '악한' 인물들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가 이렇게 썩었다"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거기에 세월호라는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이름도 바꾸지 않고 등장시켜서 어떻게든 이 영화의 현실을 현 시국에 빗대어 어쭙잖은 '현실비판'을 하고 심한 말로 한철 장사를 하기 위해 세월호라는 이슈를 억지로 영화의 큰 줄기에 끼워 맞춘 느낌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심하게 들었다. 물론 세월호라는 이슈를 철저히 배제하고 영화 자체만 봐도 그동안 많이 봐 온 뻔한 소재인 데다 세월호를 이용해 이슈 몰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세월호라는 소재를 억지로 끼워 넣어 영화의 이음새 또한 엉성하다.

자신의 이익이라면 사람이 죽어도 눈 깜빡하지 않던 악질 경찰 조필호가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미나와 감정적 공유를 통해 그렇게 가까워졌는지, 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가 사실은 흑막이었다는 갑작스러운 반전을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한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세월호 희생자의 친구라는 설정의 미나는 시종일관 현 시국을 겨냥한 통쾌한 '사이다' 발언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유치한 대사들을 남발한다.

"진격의 거인이 돼서 청와대 지붕부터 잘근잘근 씹어버릴 거야."

"이런 것도 어른들이라고..."

이런 대사들을 들을 때마다 정말 박수갈채가 아닌 한숨부터 나왔다. 이런 대사들을 내뱉으려면 어느 정도 미나가 왜 이렇게 됐는지 설득력이 있는 상황 설정부터 배우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영화는 세월호를 들먹이면서 이 소재를 영화의 큰 줄기에 제대로 연결시키지도 않은 채 안일하게 관객들의 지지만을 노렸다는 불순한 의도가 느껴졌다. 엉성하게 짜인 스토리에 사회 비판하는 대사 몇 줄 넣으면 시의성도 잡고 관객들에게 먹힐 거라는 이런 안일한 감독들의 생각이, 이런 영화들이 정말 다시는 나오지 읺았으면 좋겠다. 


세월호라는 아직도 응어리가 남아있는 현재 진행형인 이슈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영화는 이 소재를 스토리 속에 자연스럽게 풀어놓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전혀 다른 범죄 액션물과 신파라는 소재를 동시에 억지로 진행시키려 한다. 이 때문에 영화의 핵심이자 감독이 말하고자 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결말 부분은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신파극으로 전락해버린다. 세월호는 어설픈 눈물 몇 방울로 소비될 소재가 아닌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추고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할 우리 모두의 부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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