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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May 09. 2019

영화 <공포의 묘지 (2019)> 리뷰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한줄평: 주제는 좋지만 말주변은 없다.


인간은 두려운 것이 많은 존재이다. 불을 발견하기 전 인류의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은 야생의 동물이었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 없이 그들에게 맞서야 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물론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그 사용 법을 알게 된 순간부터 오랜 시간 지배해온 이 먹이사슬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그러나 불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오르게 된 인류는 또 다른 공포와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질병이라는 자연의 순리에 100퍼센트 달려있는 이 공포의 대상들은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마마라 불리는 천연두 같은 질병들은 아예 신으로 추앙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류는 이번에도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질병의 대부분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질병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천성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모든 두려움들은 죽음이라는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절대적인 공포와 직결되어 있다. 영화 <공포의 묘지>는 이런 인류의 원초적인 공포인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죽음이란 무엇인지, 죽음 후의 세계는 어떤 것 일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는 죽음을 직, 간접적으로 목격한 인물들이다. 의사이자 아버지인 루이스에게 죽음은 생명체인 인간으로서 당연한 결과이며 자연스럽게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루이스의 신념은 딸 엘리의 죽음으로 완전히 뒤바뀌어 버리며 죽음 후의 세계도 믿지 않았던 그는 이미 죽은 엘리를 죽음에서 되돌리기 위해 애완동물 묘지를 찾게 된다. 어쩌면 죽음에 대하여 대처하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에 대해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했던 루이스는 교통사고 난 환자의 죽음과 딸의 죽음을 통해 점차 변해가고 마침내 죽음이라는 것을 부정하며 끝까지 딸과 함께하는 선택을 한다.

루이스의 아내 레이첼은 자신의 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지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죽음은 시도 때도 없이 그녀를 괴롭히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그녀의 아이들에게도 죽음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며 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려는 인물이다. 죽음과 멀어지려는 그녀에게 있어서 애완동물 묘지는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트리거였을것이다. 엘리의 죽음 이후 변해버린 루이스에게 이 묘지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창구 같은 장소라면 레이첼에게는 그저 원치 않는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불길한 장소이자 공포의 대상 그 자체이다. 영화 후반부 죽음에서 돌아온 후 달라진 엘리의 변화를 제일 먼저 눈치채는 것도 그녀이다.

엘리 역시 할머니와 고양의 처치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인물이다. 어린 나이 때문에 죽음에 대한 뚜렷한 태도는 없지만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을 알고 이해하려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루이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어떤 존재'에 의해 이용되는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가족들의 이웃인 주드 역시 그의 애완동물 비퍼의 죽음과 그의 아내의 죽음을 목격한 인물이다. 그는 이 애완동물 묘지가 저주받은 곳임을 알고 있지만 한번 이 묘지의 힘을 알게 된 이후로 그 힘을 잊지 못하고 계속 근처에 머무르는 인물이다. 결국 그는 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루이스에게 이 비밀을 알려주며 묘지가 힘을 사용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맞는다는 것도 외면한 채 결국 다시 한 번 이 묘지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물론 그의 의도는 엘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그 선택으로 인해 엘리의 가족이 파멸을 맞는 결말을 보여주며 영화는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숙지시킨다.

영화 속 인물들은 묘지의 힘을 이용하여 죽음이 주는 상실감과 공허함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그토록 살리고 싶어 했던 소중한 사람들에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가 공포영화인 동시에 가족들이 등장하는 가족영화이기도 해서 결말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어쩌면 이것이 궁극적으로 영화가 말하려는 캐치 프레이즈 "때로는 죽는 것이 낫다"라는 메시지에 부합하는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영화는 교통사고 희생자 빅터의 입을 빌려 묘지는 저주받은 곳이며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계속해서 했지만 결국 주인공들은 소중한 존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묘지에 이끌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공포의 묘지> 포스터


하지만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빠르게 몰아치는 전반부와 달리 허술한 개연성이 아쉽다. 이미 묘지의 비밀을 알고 있던 주드가 루이스에게 고양이를 묻으라고 제안한 이유가 그 고양이는 착해서 괜찮을 줄 알았다는 어이없는 이유부터 묘지에서 돌아온 후 변해버린 고양이 처치의 모습을 보고 묘지의 사악한 힘을 알게 된 루이스가 왜 자신의 딸을 묘지에 묻으려는 선택을 하고 그렇게 집착하는지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고 스산함을 유지했던 영화의 전반부와는 달리 뒤로 갈수록 좀비 난투극(?)으로 변질된 것 같아서 아쉬웠다. 부활한 엘리의 모습도 기괴하다기보다 자세히 보면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면도 있어서 뒤로 갈수록 <처키>를 보는듯한 느낌도 들었다. 공포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좋았지만 분위기만 잔뜩 잡은 채 아무런 답을 내리지 못하는 허무한 결말이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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