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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Jun 25. 2019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리뷰

시스템을 위해 존재하는 인간

자주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제목과 달리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카메라는 주인공 블레이크의 시점을 담기보다는 제 3자의 시선에서 멀리서 방관하듯이 바라만 본다. 이런 카메라의 연출 때문에 영화는 관객들이 블레이크가 마주하고 있는 사건들을 그의 시선에서 동화되어 바라보게 만드는 것을 철저히 막고 관객들이 이 부당함을 온전히 객관적인 시선에서 냉정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묘미는 자극적이지 않은 하나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담담한 연출이다. 영화는 블레이크가 처한 이 비참한 상황을 드라마틱한 음악이나 아련한 음악으로 꾸며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극적인 묘사 없이 블레이크가 마주한 이 사회의 부당함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이 관객의 입장에서는 더 와 닿았다. 가난이라는 주제를 단순히 감성팔이 소재로 만들어내지 않고 오히려 가난의 극적인 요소보다 일상적인 모습들을 담어냄으로써 이런 부당함과 사회적 문제들이 먼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이 당장 처한 상황임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든 복지제도라는 이 시스템이 오히려 인간을 옭아매는 사슬이 되어 어떻게 한 개인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영화는 말하고 있다. 극 중 블레이크는 단 한순간도 돈을 구걸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그의 마지막 자존심인 공구를 끝까지 팔지 않으며 언젠간 다시 건강을 회복해서 일터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복지제도라는 이 거대한 시스템 아래 블레이크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수많은 리스트와 서류에 적힌 하나의 이름으로 단순히 취급되어 결국 갑작스러운, 어쩌면 피할 수도 있었던 죽음을 맞이한다.

극 중 "코코넛이랑 상어 중 어떤 것이 사람을 더 죽일까?"라는 블레이크의 질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비 확실성과 갑작스러움으로 차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누가 걸어가다가 갑자기 코코넛에 맞아 죽을 것이라고 생각할까. 그래서 코코넛에 맞은 사람의 죽음은 갑작스러우며 블레이크의 죽음 역시 '코코넛'을 피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갑작스러움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지제도라는 시스템은 블레이크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메뉴얼이라는 시스템내의 또 다른 시스템에 갇혀 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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