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탑건: 매버릭> 리뷰
영화는 '보는 것'이다. 당연한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의외로 영화에서 본다는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는 종종 놓치곤 한다. <아바타> 시리즈로 이미 이 분야에서 이름을 굳힌 제임스 카메론의 사례만 보더라도, 감상을 넘어 체험하는 영화의 수요는 이전부터 꾸준히 존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편으로부터 무려 3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관객들이 <탑건: 매버릭>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광활한 하늘 위를 질주하는 전투기들과, 다이내믹한 앵글로 마치 실제로 F18를 모는 듯한 착각이 드는, 시각적인 감각을 극대화하는 연출. 전작에 이어 <탑건 :매버릭>은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않은 채 관객들의 요구에 충실히 답한다.
그러나 <탑건: 매버릭>의 주제의식은 단순히 이런 '체험하는 영화'로부터 나오는 원초적인 재미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는 크게는 인간과 기계, 영건과 베테랑, 전통과 현실 등 상반되는 가치들을 쉴 틈 없이 서로 부닥치게 만들고, 그에 대한 답변을 영화의 주인공 '매버릭'을 통해 내놓는다.
초인적인 정신력, 자신의 신념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뚝심, 무결해 보이지만 개인적인 아픔과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 어느 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를 묘사한 내용이라고 해도 별문제 없어 보이는 이 모든 수식어가 가리키는 인물은 바로, <탑건> 시리즈의 주인공 매버릭이다.
모든 것이 현실적인 이 영화에서 매버릭이라는 캐릭터의 존재는 유일하게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완벽한 인물이다. 인간적으로도, 실력으로도 전혀 결점이 없어 보이는 이 인물을 통해 영화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 마디로 '오래된 것의 가치'다.
영화는 오랜 숙원이었던 마하 10의 벽을 앞두고, 무인기 사업에 밀려 프로젝트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매버릭의 서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과 기계, 또는 인력과 AI. 너무나도 노골적인 이 상반되는 가치의 충돌은 매버릭이라는 초인적인 인물에 의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매버릭이라는 노장으로 대변되는 '오래된 것의 가치', 다시 말해 전통의 가치는 이후 영화에서 몇 번이고 다시 등장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매버릭이 당연히 마하 10의 벽을 뚫어낼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탑건:매버릭>은 현대 영화의 문법에서 거의 금기시되는 클리셰적인 연출을 어설프게 포장하는 대신,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며 자신이 지향하는 길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인간 VS 기계에서 시작된 이런 갈등은 곧이어 영건과 베테랑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다시 탑건 스쿨로 돌아온 매버릭은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젊은 조종사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도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매버릭은 자신을 무시하는 교육생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며, 결코 녹슬지 않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이 둘의 충돌은 <탑건: 매버릭>을 관통하는 주요한 서사이자, 영화의 메시지 그 자체이다. 그렇다고 영화는 단순히 오래된 것은 좋은 것, 새로운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강요하지 않는다. 젊은 신예인 루스터와 베테랑 매버릭의 콤비를 통해 신구의 새로운 조합을 선보이기도 하며, 전작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갈등을 화해로 마무리 짓기도 한다.
누군가는 '뻔한' 스토리라고 표현할 정도로, 정석에 가까운 이 서사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톰 크루즈'라는 배우의 무게 때문이기도 하다. 불혹이 넘는 나이에도 본인이 직접 스턴트를 하는 그의 신념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매버릭의 존재는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처럼 생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매버릭이라는 인물의 존재는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전통의 가치이자 오늘도 묵묵하게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는 수많은 노장들에 대한 헌사와도 같다. 새로운 세대들이 앞다투어 등장하는 지금의 시대 속에서,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매버릭은 존재는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확신을, 갈피를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는 묵직한 닻이 되어준다. 영화 속에서의 이야기가 스크린 밖을 벗어나, 현실이 되는 이런 메시지들은 <탑건: 매버릭>을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닌, 인생의 길을 제시하는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또한 영화는 이런 가치들을 전하기 위해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런 노력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작전의 상대인 테러위험국이 어디까지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연출이다. 영화는 단한번도 테러위험국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관객이 그 정체를 짐작해 볼 만한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는다. 대체로 이런 장르의 영화들을 익숙하게 봤던 관객들이라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톰 크루즈가 직접 밝혔듯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현실의 문제들을 단순히 영화 속의 갈등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정치적 올바름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항공 영화의 클리셰와도 같았던 마초주의적인 장면들은 철저히 배제하며 영화의 메시지처럼 '오래된 가치를 지금의 현실에 맞게' 성공적으로 재가공해낸다.
옛것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현실의 가치에 맞게 완벽하게 구현해 낸 이 영화가 사랑받지 않을 이유는? 없다. '체험하는 영화'로서 관객들이 원하는 볼거리를 보여주고, 아무 사유 없이 휘발되는 스토리가 아닌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지금의 시대에 딱 맞는 메시지까지. 톰 크루즈, 그리고 <탑건> 시리즈. 결코 대체되지 않는 배우와 영화의 만남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