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어스> 최현주 대표 인터뷰
*해당 콘텐츠는 시현하다 > 위클리 매거진에서 발행된 콘텐츠입니다.
사진관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눈도, 코도, 입도, 생김새는 모두 다르지만 각자만의 매력으로 빛나는 수많은 얼굴들을 보곤 해요. 단순히 ‘예쁘다’ 또는 ‘못생겼다’는 단어들로 평가를 내리기엔 우리들의 얼굴은 너무나도 다채롭고 하나하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하는데요.
그런데 고작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손길이 닿기도 전에 차가운 바닥에 버려지는 농산물들이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이런 못난이 채소들이 외면받지 않도록, 오늘도 각자의 사연이 담긴 못난이 채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있는 어글리어스의 최현주 대표 님을 만나봤어요.
안녕하세요, 어글리어스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 최현주입니다.
‘어글리어스’는 못난이 농산물을 정기 배송해 드리는 서비스예요. 어글리어스를 만들기 전, 저는 행복하게 회사를 잘 다니고 있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농산물들을 활용해, 새로운 식품으로 재탄생시키는 ‘푸드 리퍼브’ 활동을 알게 됐죠.
전문 셰프들을 초대해서 못난이 농산물로 멋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등, 못난이 농산물의 인식 벽화를 촉구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 역시 소비자로서 그런 음식들을 직접 사 먹어 봤던 게 출발이었죠. 막상 먹어 보니까 너무 맛있고, 모양만 조금 다를 뿐이지 아무 문제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왜 국내에는 아직 제대로 된 시도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걸 제가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부터 수익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던 건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못난이 농산물들을 판매하는 전문적인 시장 자체가 없다시피 했으니까요. 간간이 마트에서 이벤트성으로 팔거나, 길가 트럭 같은 데서 모양이 고르지 않은 채소들을 마대 자루에 담아 싸게 판매하는 정도가 전부였거든요. 게다가 신선식품이 온라인으로 옮겨오던 시기였기도 해서, ‘이걸로 정말 돈을 벌 수 있을까?’ 물음표가 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래도 시작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해외에서는 이런 시도나 노력들이 굉장히 오래됐다는 점이었어요. 이런 시도들을 통해 조금씩 성공적인 사례들도 나오고 있었고, 국내에서도 인식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주변 지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봤어요 ‘제가 먹은 못난이 농산물들을 똑같이 한번 보내 드려 볼 텐데, 맛이 있는지 또 구매할 의향이 있는지 평가해 달라’ 부탁을 드렸죠. 그렇게 7명 정도에게 보내 드렸는데, 다들 저랑 같은 반응이더라고요. 그런 반응들을 보며 사람들이 아직 잘 몰라서 그렇지, 못난이 농산물에 대해 자세히 알려드리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면 국내에서도 이런 모델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어요.
사지 마세요, 구독하세요!
기존의 커머스 플랫폼은 대부분 단순히 판매와 구매를 중계해 주는 모델이었거든요. 플랫폼에서 주문 정보를 전달하면 농가에서 상품을 발송하는 시스템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모델이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니, 한 가지 떠올랐던 게 바로 배송 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어요.
배송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상품의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품을 받아본 소비자들이 ‘못난이 농산물은 품질도 좋지 않구나’라고 인식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긍정적인 인식 변화를 일으키려면 품질 관리를 위해 저희가 이 모든 과정들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산지에서 직접 소비자에게 배송되는 D2C 모델을 떠올리게 됐어요.
농가에서는 주로 박스 단위로 생산을 하시거든요. 생산하신 농산물을 판매하려면 최소 3~5KG 단위인 거예요. 그런데 요즘엔 소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오랜 기간 저장이 가능한 고구마나 감자 같은 농산물이 아니면 몇 킬로나 되는 농산물을 구매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역시 100여 종이 넘는 못난이 농산물들을 모두 다루고, 소비자분들에게도 지속 가능한 소비를 제공하기 위해선 ‘소포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구독 모델로 처음 시작하게 됐어요.
저희의 목표는 환경과 소비자와 생산자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거예요.
어글리어스라는 브랜드 자체가 못난이 농산물들이 잘 유통이 되지 않고, 버려진다는 게 너무 비합리적이고 환경 파괴적이라는 생각에 시작된 거였거든요. 그래서 이름에도 어스 (earth), 지구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도 해요.
처음부터 환경과 소비자와 생산자가 선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게 저희의 목표였기 때문에, 못난이 농산물을 배송하는 포장재 역시 너무 과하거나 불필요하게 많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초기 단계에는 그런 욕심이 과해서 심지어 아예 포장 없이 보내 봤을 정도예요. 지금은 농산물의 신선도를 보장할 수 있는 선에서 종이 포장재와 생분해 비닐로 포장을 하고 있어요.
어글리어스의 과정이 조금 특별하다는 걸 이해하시려면 평소 우리가 먹는 농산물이 어떻게 식탁위까지 올라오는지 그 과정을 알고 계시면 좋아요. 거의 대부분의 농산물들은 산지에서 수집이 되면 아주 큰 도매시장으로 흘러 들어가요. 도매 시장에서는 중매, 소매, 이렇게 여러 유통 단계를 거쳐 마트에 오고 마침내 저희의 손에 잡히는 구조예요.
저희는 그런 시장을 거치지 않고, 농부 분들에게 직접 사입을 해온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모든 상품은 시장으로 가면 급이 매겨지거든요. A급, B급 이런 식으로 가격이 결정되고 그걸 위해 선별을 해내는 과정도 필요해요. 그런데 저희는 못생겨도 괜찮고, 조금 작아도 괜찮고, 커도 괜찮다는 저희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저희만의 기준으로 저희만의 시장을 만들어 내기로 했어요. 그래서 산지와 직접 소통하고, 산지에서 직접 공수해 오는 구조를 택했죠.
MD 분들이 출장을 다니시면서 산지와 파트너십을 맺으면, 구독한 농산물이 배송되는 그 주차에 바로 입고가 되어 들어와요. 입고가 되면 센터에서 하루 이틀에 걸쳐 포장을 하고 출고가 되고요.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못난이 농산물들을 구출해 내고 있어요.
못생겨도 괜찮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별 이름이 다 있었던 것 같아요. ‘댕구르르’ 같은 이름도 있었고. 아무래도 소비자분들에게 저희가 들려드리고 싶은 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선 ‘어글리’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너무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저희는 사실 이런 농산물들을 ‘못생겼다’고 명명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디까지나 시장의 기준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분류가 되는 것이지,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더 좋은 농산물이라고 생각해 더 긍정적인 이름을 붙이고 싶었거든요.
오늘 함께 촬영한 천혜향만 봐도 겉에 가지가 스친 상처 같은 것들이 남아서 약간 검은 점박이가 생긴건데, 시장에서는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유통이 되기 어려워요. 사실 맛은 똑같아요. 품질도 똑같고. 이 사과는 벌레가 살짝 먹고 간 자리가 여드름처럼 남아 있는 건데, 이런 것들은 심지어 더 맛있어요. 왜냐하면 당도가 높은 것들을 새나 벌레들이 알아보거든요. 감자나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들은 땅속에서 돌을 만나거나 하면 조금 굽어져서 자라기도 해요.
그래서 떠올렸던 게 ‘어글리’를 붙이되, 조금 귀엽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붙여주기로 했어요. 그렇게 ‘어글리어스’라는 브랜드명을 떠올리게 됐죠. ‘못난이네 식구들’ 같은 느낌으로. 어스에는 ‘지구’라는 의미도 있으니까 입에 딱 맞더라고요.
이렇게 어글리어스라는 브랜드명을 짓는 데는 오랜 시간 고민을 했는데, ‘못생겨도 괜찮아’라는 슬로건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떠올렸어요. 못난이 농산물들을 현지에서 봤을 때 바로 딱 떠올랐던 문장이었고,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슬로건이라고 생각했어요.
박스에 써진 저희의 슬로건을 보고 위로를 받으셨다는 리뷰도 있었어요. ‘괜스레 마음이 더 좋아지더라, 위로가 되더라’라는 같은 말씀들을 남겨주시더라고요. 저희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다 굉장히 개성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무리 속에서 나 혼자만 B급이라거나, 아니면 집단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느껴졌을 때 저희의 메시지가 나를 향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텍스트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부분에도 역시 저희의 가치를 녹여내려고 해요. 비록 어글리어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저희는 이런 농산물들을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채소들의 이름을 지을 때도 ‘통통이 청경채’나 ‘스마일 오이’ 같은 긍정적인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고, 사진을 찍을 때도 약간 밑에서 위로 찍어서 이 친구들이 히어로처럼 보이게 하려는 시도를 한다거나. 색감도 좀 더 밝게, 키치하게 해서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나 워딩을 담아내려고 해요.
어글리어스를 만들기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
저희는 아직 2년 차 스타트업이거든요. 팀원들이 정말 고생하면서 만들어 온 브랜드에요. 새벽까지 감자 선별을 하거나 포장을 한 적도 있고, 잠도 못 자고 2~3시간씩 출근하고 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에요.
그런 시간들을 거쳐서 ‘역시 이 브랜드를 만들기 잘했어’라고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은 생산자 님들에게 땡큐 메시지가 들어올 때예요. 먼 곳에서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실 때 너무 뿌듯하죠. ‘친환경 농업이 너무 어렵고, 왜 하는지도 몰라서 때려치우려고 했다가 어글리어스 같은 브랜드가 나와서 다시 해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감사하죠.
저희를 통해 못난이 농산물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농산물을 바라보던 가치 기준이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마트에 가면 본능적으로 흠 없고 예쁜 것만 고르게 되잖아요. 그런 시선과 마음가짐을 모두 바꿔보고 싶어요. 단순히 못난이 농산물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훨씬 합리적이고 신선하고 맛있기 때문에 구매하는 거죠.
소비자는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고, 생산자는 중간 유통 과정을 줄일 수 있는,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이런 움직임들이 확산이 되어서 앞으로 모든 농산물들이 그렇게 생산되고 유통될 수 있도록 벨류 체인을 바꿔보고 싶어요.
세상의 모든 못난이 채소들에게
알고 보면 채소들도 못난이로 규정되어 온 사연들이 참 기구해요. 왜냐하면 세상의 기준에 자신의 모습을 억지로 맞추고 있거든요. 진짜 본인의 모습은 따로 있어요. 예를 들면 오이는 원래 굽어진 채로 자라요. 그런데 이걸 예쁘게 만들기 위해 농부 분들이 항상 뭔가를 씌우고, 굽으려고 하면 뽑으면서 관리하고 계시는 거예요.
사실 그게 조금 굽었다고 맛이 다를 리가 없거든요. 나뭇가지에 스치거나, 새가 쪼아 먹고 간 자리가 남은 채소들도 마찬가지고요. 그 채소에 문제가 있거나 품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도 똑같아요. 사람도 다 자신만의 개성이 있잖아요.
바람이 쓸면 쓸리는 대로, 햇빛이 비치면 비추는 대로 자연스럽게 자란 채소들이 훨씬 맛있는 것처럼 사람도 자신만의 기준에 맞춰서 자라고 성장해 나가는 사람들이 훨씬 멋있고 또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런 본연의 색깔을, 여러분도 꼭 잃지 않고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dited by 김인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