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독백> 임승원 인터뷰
*해당 콘텐츠는 시현하다 > 위클리 매거진에서 발행된 콘텐츠입니다.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 그 안에서도 <원의 독백>을 만들고 있는 임승원의 목소리는 가히 독보적이다. 그가 담아내는 세상이 특별한 이유는, 삶의 단조로운 순간들에서도 한 줄기 낭만을 발견할 줄 안다는 점이다.
모든 크리에이터가 걷고 싶은 길을 착실히 따라 걷다가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삐딱선을 탈 줄 아는 사람, 임승원을 만났다.
‘임승원’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린 유튜브 채널 <원의 독백>은 어떤 면에서는 영화 같은 구성을 취하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브이로그 같기도 해요. <원의 독백>은 어떤 채널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원의 독백>을 장르로 보자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까 싶어요. 로맨틱이라는 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것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낭만’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삶에서 낭만을 계속 추구하는 게 굉장히 좋은 자세라고 생각해요.
삶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잖아요? 슬픔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그런데 그런 과정들이 그 자체로만 받아들여지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반면에 그런 순간들조차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낭만적이게, 로맨틱하게 그려지거든요. 삶의 다채로운 순간들을 로맨틱하게 그려내는 게 이 채널의 목표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그렇게 이해해 주셔서 기분이 너무 좋은데요. 그게 바로 제가 지향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슬프다고 무작정 슬퍼하지 말고, 지금의 순간이 영화의 어떤 한 장면이라고 받아들이면 좀 더 길게 보는 눈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저 스스로도 이 채널을 운영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요.
<원의 독백>을 보면 항상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평소 일상에서도 스스로의 삶이나 존재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는 편인가요?
그런 편이에요. 친구가 지나가듯이 한 말도 기억해 놨다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고.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생각이 많아요. 그래서 가끔은 힘들기도 한데, 대신 그런 생각들을 메모장에 적어 내려가면서 풀어내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더라고요. <원의 독백>에 올라간 영상을 보면서 ‘2년 전에는 내가 저런 별스럽지도 않은 걸 가지고 고민을 했구나’ 하며, 내가 저런 것쯤은 고민이 아니게 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도 느끼게 되고.
채널 <원의 독백>과 함께 인간 임승원도 같이 성장하는 중인 거네요.
맞아요.
대부분의 영상에서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도 <원의 독백>의 특징 중 하나예요. TV를 보면서 처음 영어를 배웠다고 들었는데, 인상 깊게 봤던 콘텐츠가 있나요?
중학교 때부터 보기 시작했던 시트콤 <The office>를 정말 좋아해요. 언젠가 한국에서 저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원의 독백>이 만드는 시트콤이라, 기대가 되네요. 그 시트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최근 들어서 무속인에 대해 한번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무당이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각기 다른 고민을 가지고 상담을 하러 오는 거죠. 매 에피소드마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달라지고, 매 에피소드마다 그 사람의 스토리가 옴니버스처럼 이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무당은 진짜 무당이 아닌 거죠. 얼떨결에 무당 자리에 앉아서 점을 봐주는데, 의도치 않게 사람들에게 위안과 해결책을 주고 사람들도 나름의 해석을 갖고 만족하며 떠나가는 모습을 코미디로 담아보고 싶어요. 일종의 치유물 코미디랄까요.
영화감독 중에서는 데이빗 핀처를 가장 좋아한다면서요?
맞아요. 일상적인 내용을 그리는데, 거기서 뭔가 뒤틀린 사건이 나타나는 영화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데이빗 핀처가 대체적으로 그런 걸 잘 만드는 감독인 것 같고요.
<세븐>처럼 일상 속에서 일어날 법한 비일상적인 것들을 말하는 영화들 말이죠? 최근에 감명 깊게 본 작품 중에서 그런 유의 작품이 있나요?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 (Beef)>를 진짜 재밌게 봤어요. 사소한 사건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심리 상태도 디테일하게 드러나는 것도 재밌었고요. 최근에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좀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요즘따라 사람들이 굉장히 화가 나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 또 저 역시 별거 아닌 일에 혼자 화를 내기도 하는 모습을 보기도 해서 공감이 많이 갔어요.
저도 그 시리즈 봤는데, 감정이 계속해서 쌓이고 쌓이는 스토리다 보니까 끝까지 보기 힘들더라고요.
전 보기 힘든 걸 기본적으로 좋아해요. 감정적으로 힘들어지는 영화들. 데이빗 핀처가 그렇고, <유전>과 <미드소마>를 연출한 아리 애스터도 그렇고.
<원의 독백>을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유머라고 생각해요. 어떤 영상이든 간에 보다가도 괜히 ‘피식하게 되는 순간’은 빠지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재밌는 사람이 아니라서, 유머에 대한 철학이나 노하우는 없지만 그냥 이 모든 게 좀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나의 문제, 나의 고민 같은 것들이 좀 더 가볍게 들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긴 것 같아요.
제 영상을 보면서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거나, 제 이야기에 공감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거잖아요. 예를 들어 <취준생의 일상>을 주제로 다룬다면, 취업이 안 되는 것으로 인해 고통받는 분들이 계실 텐데 만약 제가 이 주제를 너무 무겁게 풀어버리면 영원히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전체로 봤을 때, 지금의 고통은 인생의 한 일부분일 뿐이고 영원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영상 중간중간에도 실없는 농담을 하곤 해요.
인간 임승원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줬던 크리에이터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식상한 답변이긴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아닐까 싶어요. 저의 디자인적인 심미안을 처음 만들어준 사람이자 ‘제품이나 콘텐츠가 보여줘야 하는 지향점은 바로 이런 거야’라고 보여줬던 사람인 것 같아요. 애플의 제품을 보면 정말 많은 기능이 있고, 정말 많은 의도들이 숨어있지만 디자인 자체는 굉장히 심플하잖아요. 저 역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있어 그런 점을 적용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채널 <원의 독백>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줬던 크리에이터는요?
CaseyNeistat. 미국의 유튜버인데 진짜 오래전부터 봤어요. 뉴욕에서 브이로그를 찍는 아저씨인데, 그 아저씨가 계속 말하는 게 있어요. ‘창작이라는 건 모든 게 다 준비가 됐을 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금 네가 갖고 있는 걸로 하는 거야.’
원의 독백을 시작하기 전에도 많은 고민들을 했었거든요. ‘이거 누가 먼저 한 거 아닌가?’ ‘장비도 별로고, 내가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올리면 누가 볼까?’라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CaseyNeistat의 말을 듣고, 바로 원의 독백을 시작하게 됐죠.
그렇게 시작한 <원의 독백>으로 무신사에 취업까지 했잖아요. 자신이 만든 콘텐츠로 일자리를 얻고, 한 분야의 파이오니어가 되는 것. 아마 모든 크리에이터들의 꿈이 아닐까 싶은데 그 모든 것을 이룬 소감은 어떤가요?
전혀 다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너무 재밌고, 즐겁고, 감사한데 요즘에는 오히려 불안해요. 채널의 규모도 커지고,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니까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까 불안한 마음이 앞서더라고요. ‘언젠가 내가 실력이 없다는 게 들통나서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건 아닐까?’ 같은 걱정이 되게 많았거든요. 요즘에는 그런 불안감을 떨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주로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어요?
의식적으로 마음속에 새겨요. 이건 내 생계가 아니고, 나의 먹고사는 것이 여기에 달려 있지 않다고. 이건 나의 취미니까 너무 힘주지 말고, 너무 고민하지 말자는 걸 계속 스스로에게 되뇌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려고 해요.
무신사 오리지널랩의 콘텐츠 PD로 합류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원의 독백>이라는 장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고생길을 걷던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그런 영화요. 그런데 무신사를 나와서, 다시 새로운 길을 선택했어요.
결론적으로 저에게는 조금 맞지 않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기민하게 트렌드를 쫓아가는 스타일도 아니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편도 아니거든요. 그 사실을 깨닫게 된 다음부터, 회사에 ‘나’라는 사람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동안 모아둔 돈이 없어서 당장의 생계가 고민이 됐지만, 저는 회사에서의 저의 위치에 대해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장 먹고사는 문제보다, 내가 쓰임 받고 유용한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커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사실 원의 독백을 시작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취업 때문이었다고 밝히기도 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라는 결정을 내리는 게 후회되지는 않았나요?
물론 되게 망설였고, 하루가 다르게 결정이 바뀌기도 했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그냥 ‘많이 생각하지 말자’였던 것 같아요. 나한테 지금 딸려있는 식솔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퇴사를 하지 않으면 더 나은 조건은 없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개인사업자 임승원으로서 최근에 한 작업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최근에는 10cm와 조매력이 함께 준비한 프로젝트에 함께했어요. 천 명의 뮤지션을 모아 놓고, 10CM의 신곡 <부동의 첫사랑>을 연주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그 프로젝트의 비디오 디렉터로 참여했죠. 20명의 카메라맨들을 통솔하고, 카메라를 다 컨트롤하고, 나중에 제가 직접 편집하는 작업들을 했어요.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원의 독백을 운영하면서 배우이자 연출자, 편집자 등 멀티플레이어로 활동해 왔는데 혼자 일하는 작업 방식이 좀 더 익숙하지는 않나요?
보통 혼자 일을 많이 해왔다 보니, 혼자서 일을 하는 게 좀 더 편하고 좋은 것 같긴 해요. 근데 욕심은 있어요. 언젠가는 내가 고용한 사람들을 거느리면서, 이래라저래라 독불장군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제가 원래 남들에게 모질게 하는 성격이 아닌데, 솔직히 말하면 <원의 독백>을 찍을 때나, 아니면 현장에 가서 작업을 할 때도 감독으로서 진짜 완벽할 때까지 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제 눈에도 거슬리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요.
그런데 시간은 한정돼 있고,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퀄리티를 희생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런 것들을 희생하지 않는 현장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기는 해요. 모든 디테일을 갈아 넣어서. 그런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엄청 고통받겠죠. (웃음)
그리고 사실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현장은 없기도 하니까요.
그런 게 모든 감독들이 가지고 있는 꿈일 것 같아요. 본인의 예술적인 곤조와 디테일을 모두 살릴 수 있는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것. 거기까지 가기 위해 <원의 독백>이라는 채널을 테스트 베드 삼아 계속 성장해 나가는 느낌이에요. 언젠가는 저한테 그런 일을 맡겨주시지 않을까요?
이제 고용인이 아닌 고용주가 된 입장으로서, 같이 일하고 싶은 스타일의 사람이 있을까요?
아직 고용을 할 만한 능력은 안 되긴 하지만요. (웃음) 고용주로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 일일이 보고하지 않아도 되니까, 제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 본인의 소신이 있어서 자기의식대로 하는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 사람 입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결과물일 테니까, 어떻게든 저와 조화롭게 엮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 소신이라는 게 정말 예술가한테 필요한 덕목인 것 같아요.
회사를 들어가면 사실 그런 것들을 희생하게 되잖아요. 상사나 회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고, 그러면서 자기의 발랄함을 잃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에는 트렌드가 좀 바뀌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개인의 소신이나 고집들이 대단하게 받아들여지면서, 기업에서 내는 결과물도 되게 다채로워지고 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점점 변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앞으로 승원 님이 ‘독백’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원의 독백>을 통해 제가 다루고 싶은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형식이 바뀔 수도, 아니면 저 대신 다른 배우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여러 가지로 확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드는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앞으로도 <원의 독백>에 너무 가르치려는 스탠스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영어로 말하자면 ‘passive aggressive’ 한 느낌일 것 같아요. 그냥 힘없이 ‘나는 이래, 그냥 그렇다고’ 하면서 나의 얘기를 하는 거죠. 그런데 꼭 그런 사람들한테 와서 괜히 시비를 걸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굴하지 않는 채널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혼자만의 얘기를 꾸준히, 계속해 나가는 걸 보고 싶네요.
이 채널을 통해서 창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저도 영상 전문가가 아니고, 영상을 배워본 적도 없거든요. 근데 영상을 만들면서 어찌 됐든 간에 제 생각을 창작하고 있는 것처럼, 본인만의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원의 독백>이 그런 사람들을 묶어주고, 용기를 주는 채널이 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