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산업의 게임체인저, <제주맥주> 권진주 부대표 인터뷰
*해당 콘텐츠는 시현하다 > 위클리 매거진에서 발행된 콘텐츠입니다.
안녕하세요, 제주맥주 부대표 권진주입니다.
제주맥주에서는 MH (Marketing Head)라고 쓰고, 맨땅에 헤딩을 맡고 있어요. 하하. 창립 멤버로 시작해 지금은 주류 사업 부문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애석하지만 지난 80년 동안, 한국 맥주 시장에는 이렇다 할 만한 변화가 없었어요. 제주맥주는 그 흐름을 거슬러, 새로운 바람을 한번 일으켜 보겠다고 시작한 브랜드예요. 이미 시장에는 맛있고, 좋은 품질의 맥주들이 참 많이 있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세상에는 훨씬 더 다양한 맥주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더 좋은 원료를 써서 만든, 더 좋고 다양한 맥주들을 소개해 드리기 위해 제주맥주를 시작하게 됐죠.
‘첫사랑 같은 맥주가 되자’
처음 제주맥주를 시작하면서 저희가 생각했던 모토예요. 그렇게 현재는 저희의 시그니처 상품이 된, 제주 위트 에일을 처음으로 선보이게 됐죠. 사실 대부분의 F&B 사업에서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얻고, 우리의 제품을 먹어보게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저희는 당시만 해도 극초기의 스타트업 브랜드였으니, 말할 것도 없었죠.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방식을 고민하던 중, ‘제주’라는 네이밍을 떠올리게 됐어요.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곳을 하는 곳인지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만큼 강력한 이름이 없더라고요. ‘제주’라는 지명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키워드들이 있잖아요. 자연, 다문화, 다양성 등. 이미 제주도라는 곳이 그만큼 브랜딩이 잘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굉장히 좋은 원료를 사용할 것 같고, 자연주의 적이고, 각자 다양한 삶의 방향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기존의 정형화된 맥주 시장을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되고 싶다는 저희 바람과도 일치했죠.
‘제주’라는 이름이 있다면 저희가 어떤 삶을 담고, 어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지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내부에서도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제주라는 단어 자체가 지명이다 보니 상표권 보호를 받을 수 없거든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이 이름을 쓰는 게 옳은 선택일지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우리가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가 된다면 우리의 이름을 지켜낼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맥주, 민트, 성공적
제주맥주를 상징하는 브랜드 컬러로 ‘민트’를 선택한 것 역시, 저희를 상징하는 컬러가 푸른 계열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맥주와 제주라는 곳의 공통점을 떠올렸을 때, 기존에 있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이 연상될 수 있는 색으로 잡고 싶었죠. F&B 사업에서 잘 쓰지 않는 민트 컬러가 바로 그 답이 되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민트라는 컬러에는 색다른 가치, 혁신, 미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믿었어요. 과거에 썼던 컬러들이 단순하고, 직설적인 언어였다면 우리가 만드는 맥주는 다양성과 복합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민트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맞아떨어졌죠.
또 시장 전략적인 이유로는, 저희는 마케팅을 할 때 ‘3초의 법칙’을 항상 새기거든요. 저희야 설계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디테일한 부분에도 의미 부여를 하려고 하지만 사실 고객들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바라봐요. 그러다 보니 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각양각색의 맥주 중에서, ‘우리의 제품은 뭔가 다르다’는 걸 3초 안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맥주 브랜드들이 굉장히 쨍한 컬러를 제품에 주로 사용하는데, 저희는 오히려 채도를 조금 낮춰서 오히려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접근방식을 떠올렸어요.
맥주 산업을 보면, 대부분 과거에 기반을 두고 있거든요. 역사가 오래됐고, 보수적이고, 정통성이 있는 브랜드들이 대부분인 시장에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저희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커요.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줄게
제주맥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아마 타 브랜드와의 꾸준한 콜라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사람만 봐도 똑같아요. 주변 사람 10명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거든요. 저희는 스타트업이다 보니까, 우리가 누구인지를 직접 우리의 입으로 말하려고 애쓰기보다, 우리가 어떤 친구들과 노는 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함께 놀고 싶은 브랜드들에게 먼저 제안을 하기도 해요. 덕분에 영광스럽게도 블루보틀이나 AOMG 같은 브랜드들과 함께 재밌는 프로젝트를 해 볼 수 있었죠. 사실 트렌드를 읽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다만 그런 트렌드들을 어떻게 제품에 빠르게 녹여낼 수 있었냐고 물어보신다면, 제주맥주만의 TMI 문화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마다 항상 많이 말하고, 또 많이 들으려고 해요.
SNS에서 화제가 됐던 맥 MBTI 역시 TMI 문화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죠. 정말 우연히 한 팀장 분께서 MBTI로 맥주를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하고 툭 던지신 거예요. ‘맥주가 네 캔에 만원 정도 하니까, 알파벳 별로 MBTI 맥주를 만들면 수집욕구도 자극하고 좋지 않을까?’에서 시작됐죠. 당시에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캔 하나를 만들 때마다 최소한으로 제작되어야 하는 수량이 있잖아요. 그런데 MBTI의 특성상 8가지 글자가 들어가는 맥주를 만들어야 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크리스마스이브날, 직원들끼리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팀장 한 분이 갑자기 소주잔을 들고 부르르 떨면서 말하시는 거예요. ‘양면 인쇄를 하면 되잖아요?’ 한 캔에 두 글자를 넣자는 게 지금 들으면 굉장히 간단한 생각이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저희 모두 한 제품에는 하나의 이름만 들어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있었던 거죠. 8개는 어려울지 몰라도, 4개 정도는 쉽잖아요? 바로 당시 CEO 분께 전화해서, 제품을 출시하게 됐죠. 아이데이션을 하는 과정이 자유롭고,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문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맥 MBTI 맥주는 세상에 나오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 외의 원칙으로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높지 않다고 예상되면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효율성, 효과성을 말하는 것도 맞지만 더 큰 의미로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커요. 일을 하다 보면 디벨롭을 할수록 우리가 예상했던 방향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미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 우리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요. 결과물이 우리가 바라는 만큼 훌륭하게 나올 게 아니라면, 90% 넘게 진행된 일이라도 그만하는 것이 차라리 더 손실이 적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한 번 타협하기 시작하면 습관이 되거든요.
제주맥주, 그리고 나의 여정
올해로 제주맥주가 6주년을 맞이했거든요. 저희의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는 의미로, 저희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제주 위트 에일을 색다른 패키지로 선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당일 수확한 감귤피를 사용하는 것도, 샴페인 바틀이 연상되는 새로운 패키징을 선택한 것 역시 그 때문이었고요. 특별한 날 먹기 좋은 맥주이면서도, K- 푸드와도 페어링 됐을 때 손색이 없는 맥주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디테일한 부분에도 한국적인 느낌을 더했어요.
지난 6년 동안 제주맥주가 걸어온 여정이 쉽지 않았듯이, 마케터로서 저의 여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첫 직장에서는 꼴찌 인턴이었거든요. 마케팅 인턴 4명을 뽑는데 처음엔 채용이 안 됐다가, 한 분이 입사를 거절하는 바람에 공석이 생겨서 마지막에야 합류하게 됐어요. 그러다 마케팅을 너무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마케팅을 가장 잘한다고 알려져 있던 맥도널드에 입사하게 됐어요. 그런데 햄버거를 파는 게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하하.
사실 마케팅은 나의 브랜드를 파는 거잖아요. 저는 확실히 제가 좋아하고, 애정 있는 것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됐어요. 그런 고민들을 하던 차에 ‘술’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왜냐하면 술을 싫어하는 예술가는 없잖아요. 여담이지만 저 역시 한 명의 예술가로서 대학교 시절 연극 무대에 서보기도 했었고. 그러다 보니 마케팅이면 마냥 다 괜찮다는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마케팅으로 풀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저에게 마케팅은 ‘상업적인 종합 예술’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술을 다루는 브랜드인 ‘진로 하이트’에 들어가게 됐죠. 입사 후에는 1664 블랑을 한국에 처음으로 런칭하기도 했어요. 당시만 해도 ‘프랑스는 와인이지, 누가 프랑스 맥주를 마시겠어?’라는 인식이 팽배했을 때였는데 블랑을 발굴해서 런칭에 성공했죠. 전 세계에서 블랑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가 우리나라인 걸로 알고 있어요. 하하.
마케터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이유
그러다 우연히 크래프트 맥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스타트업으로 뛰어들었죠.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체감했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내 일을 한다’는 느낌이에요.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오너십을 가지고 스스로 결정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물론 그만큼 일은 더 많을지 몰라도, 일에 속박된 삶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일에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나의 생각과 일이 상호작용하고 교류하다 보니, 이유도 모른 채 일을 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더라고요.
마케팅이라는 건 결국 ‘시장을 움직이기 위함’이거든요. 물론 지금이야 브랜드의 철학, 가치관, 목적 등을 많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것 역시 결국 물건을 더 잘 팔기 위한 전략이고 또 그것이 먹히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마케터로서 저희 역할은 결국 우리의 상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것이거든요. 우리의 가치관과 철학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시장을 움직여야 한다는 사명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물론 독창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것에 끌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마케터라는 의미 자체가 ‘시장을 움직이는 것’에서 파생됐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해요.
브랜드가 말하고 싶은 것과 소비자가 듣고 싶은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흔히들 말하는 ‘화려한데 깔끔하게’ 라거나 ‘깊지만 자극적인 카피’ 같은. 그런데 전 그런 것들이 가능하다고 봐요. 그 미묘한 지점을 해결했을 때 결국에는 탁월한 결과물이 나오고, 시장에서도 반응이 나오고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좋은 마케터가 된다는 건
제가 생각하는 좋은 마케터는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이에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취향들이 있고, 그 모든 취향을 저는 따라가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취향을 알고 있는 것보다, 한 가지라도 아주 깊숙하게 빠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20대 때부터는 TV를 보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다녔거든요. 십 년 전에는 독립 출판에 관심이 있어서 워크숍 같은 데도 가보고, 작년에는 스탠드업 코미디도 해봤어요. 스탠드업 코미디 시장에 있는 분들이 굉장히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분들과 함께 놀다 보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콘텐츠들을 소비하지 않아도 요즘에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또 관심 있어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들도 많더라고요.
너무 많은 것들이 빠르게 생산되고, 또 소비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내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들을 캐치할 수 있을까에만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를 깊숙하게 파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걸 찾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것이 마케터에게 중요한 자질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많이 만드시길 바라요. 저는 최근에 최고심에 빠져있어요. 하하.
지금의 세대들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세대거든요. 예쁜 쓰레기, 쓸고퀄 같은 신조어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고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 오히려 더 가치를 느끼는 현상이 최고심에도 반영되었다고 봐요.
우리의 ‘앞으로’는
너무 먼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희의 꿈은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가 되는 거예요. 국내에서 F&B 브랜드라고 하면 단순하게 ‘먹는 것’으로만 인식되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F&B가 제조업이기 때문에 굉장히 구시대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많고요.
그런데 우리가 열광하는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만 봐도 ‘음료’라고 하는 휘발성 짙은 상품을 하나의 상징물로 만들고, 브랜드에 문화 콘텐츠를 녹여내고 또 시대상을 녹여내고 있거든요. 나이키도 제조업 브랜드예요. 운동화의 정의조차 미비할 때 운동화를 하나의 문화적인 상징으로 만들어 낸 것처럼 저희도 맥주 브랜드로서 그런 시대상을 녹여낼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참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목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