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괴물은 누가 낳았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 리뷰

by 김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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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이 있다. 이는 한 생명이 바르게 자라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레 그 반대로 향한다. 한 개인이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 또한 집단의 책임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목격해온 ‘괴물’들은 과연 누구의 산물인가.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은 이 질문의 답을 13세 소년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 제이미는 학교에서는 성적이 뛰어난 우등생이며, 가정에서는 사랑받는 아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피상적인 묘사에 불과하다. <소년의 시간>은 4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4명의 시선으로 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사건의 당사자인 제이미부터, 그를 수사하는 경찰관, 그를 면담하는 심리학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가족까지.


먼저 경찰관의 시선은 학교라는 집단에 속한 '학생'으로서의 제이미를 파헤친다. 학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완전히 단절된 세계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결코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 제이미를 수사하는 형사 루크는 그의 아들을 통해 간신히 아이들의 세계를 조금씩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인셀, 80대 20의 법칙, 색마다 다른 하트의 의미. 어른들에게는 마냥 수수께끼 같은 말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서 이 말들은 무엇보다 치욕스러운 욕설이 된다. 어른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소한 다툼 역시 누군가의 인생을 뒤흔드는 비극이 된다.


다음은 제이미를 분석하는 심리학자의 시선이다. 그녀는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제이미를 파헤친다. 억압된 남성성, 제이미와 아버지와의 미묘한 파워 게임 등 제이미의 의중을 떠보는 대화들이 1시간이 넘게 오가지만 그 안에 결론은 없다. 제이미에 대한 보고서는 아직 미완성이라는 그녀의 대사처럼, 이 시리즈는 제이미가 어떤 인물인지 완벽하게 매듭짓지 않는다.


마지막은 제이미와 가장 가까우며,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가족의 시선이다. 그들은 '아들'로서의 제이미를 돌아본다. 사랑하는 아들이 끔찍한 살인범이 된 비극 속에서 이들은 괴물을 만든 것이 바로 자신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아버지의 폭력성이 대물림된 것은 아닌지, 자신들의 양육 방식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자책하기까지 이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괴물이 만들어진 원인을 가족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문제 없이 자란 제이미의 누나를 돌아보며, 그녀 역시 제이미와 똑같은 방식으로 키웠다고 대답한다.


결국 왜 13살 소년이 동급생을 살해하는 비극이 일어났는지, 그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영화 <파수꾼> 속 아들의 죽음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치지만 결코 진실에 닿지 못하는 아버지처럼, 작품 역시 이 비극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몇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사회의 시선에서 보자면 이 비극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저항한 사건으로, 아동심리학적인 시선에서는 가부장적인 가장으로부터 대물림된 폭력의 굴레로, 개인의 시선에서는 한 돌연변이의 일탈로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이제 다시 한번 묻겠다. 그 괴물은 누가 낳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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