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열의 음악 앨범> 리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기에 가치 있는 것들

by 김인혁

1.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

영화 속에선 영원할 것 같았던 모든 것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우와 미수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던 빵집은 세월이 흘러 부동산으로 변하고, 천리안에서 시작해서 윈도우로 마무리되는 컴퓨터도 그렇고 메일로 시작됐던 둘의 연락은 핸드폰으로 끝난다. 그러나 변하는 모든 과정을 보여주는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바로 둘의 추억을 연결하는 창구였던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 앨범>이다. 세월이 흘러도 주파수도, DJ도 변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 자리에서 둘을 지켜보던 라디오는 둘의 사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공기처럼 극 전체를 떠다니며 전지적 절대자 시점으로 이 둘의 첫 만남과 재회를 함께한다.

2. 현실과 낭만

미수는 현실 때문에 라디오 작가라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업한다. 하지만 이런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현우를 만나기 위해 애쓰는, 어찌 보면 현실 속에서 낭만을 살고자 하는 인물이다. 반대로 현우의 삶을 보면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내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미수의 현실이 그랬듯이, 현우에게는 숨기고 싶은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 정리해보면 현우는 낭만을 살고 싶지만 현실의 벽에 계속 부딪히며 그 벽을 피해 돌아가려는 인물이다.

이토록 다른 둘이 만났기에 갈등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어있었다.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현우가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하길 바랬던 미수와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서 사랑하는 사람과 '멀쩡하게' 살고 싶었던 현우. 이 둘의 관계는 안정적인 현실의 유혹에서 잠시 흔들렸던 미수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는 현실을 따라잡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야 했던 현우의 엇갈린 선택으로 인해 잠시 이별을 맞이한다.

3. 칼국수와 도나쓰

이별을 마주한 이 두 사람이 찾아간 곳은 둘의 추억을 함께한 은자 이모의 식당이다. 신기하게도 이 둘은 각각 다른 음식을 은자에게 부탁하며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던 현우는 은자가 현실과 타협하면서 내놓은 결과물인 수제비를 먹으며 자신의 처지가 오버랩이라도 된 듯 눈물을 흘린다. 반대로 현우와의 추억을 다시 한번 놓치고 싶지 않았던 미수는 찬란한 과거를 상징하는 도나쓰를 먹으며 그때와 전혀 맛이 달라지지 않았다며 감탄한다. 즉 미수에게 현우는 전혀 변하지 않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과거이자 추억이며 사람이었던 것이다.

4. 낭만과 음악으로 충분하다

물론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유열의 음악 앨범> 또한 기존의 정통 로맨스 영화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진부한 이야기다.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마주치는 이 둘과 돈 많고 늙은 남자와 돈은 없지만 젊고 잘생긴 남자 사이에서 살짝 갈등하는 여주인공.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울면서 뛰어가는 비련의 여주인공 씬까지. 전혀 새로운 점이 없는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장점은 분위기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그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가들과 소품들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그 시대의 감성에 서서히 스며들게 만든다. 영상미 또한 칭찬할 만하다. 파스텔톤으로 그려지는 과거와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HD로 선명하게 그려지는 대비되는 연출 방식 또한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진부한 사랑 이야기를 그 시대의 유행가들과 청순을 의인화한듯한 배우들을 통해 올드한 스토리를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은 풋풋한 사랑 이야기로 재창조해낸 감독의 연륜이 느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