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신> 리뷰

믿음의 대가는 불신

by 김인혁

1.) 믿음을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다

보통 엑소시즘을 주제로 하는 영화의 스토리 구조는 간단하다. 악이 주는 고난과 역경을 종교적인 믿음을 통해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이 지극히 단순한 권선징악적 플롯을 보다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갈수록 이런 소재를 다루는 영화는 한 층 더 자극적인 장면과 함께 악이 주는 고난을 더 잔혹하고 더 소름 끼치게 그려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영화 <변신>은 이런 종교적인 믿음이라는 닳을 대로 닳아버린 소재를 조금은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본다. 과연 인간은 언제나 악으로부터 벗어나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과연 인간은 선과 악을 구별해 낼 능력이 있는가?

<변신>은 이런 난해한 철학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어떤 모습으로든지 변할 수 있는 악마'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택한다. 자신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으며 심지어 선으로도 변할 수 있는 이 존재로 인해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시험당한다. 영화는 인간이 악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기보다 어떻게 인간이 악에게 파멸되어 가는지 비참한 과정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믿음의 대가가 과연 늘 구원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2.) 선의 부재와 침묵하는 신

<변신>에서 선 또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씩 드러나는 그의 존재나 힘은 전능하게 묘사되는 악에 비해 너무나도 미약하고 무력하게 그려진다. <곡성>과 <사바하>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절대적인 존재들 사이에서 껴서 무력하게 헤매는 인간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변신>도 마찬가지이다. 한낱 인간의 몸으로 과연 선과 악의 존재를 구별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두 영화의 바통을 이어서 관객들에 던지고 있다.

영화에서 이 모든 비극의 해결책인 것처럼 묘사됐던 발타사르 신부는 악에 의해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중구 또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또다시 구원에 실패한 채 희생이라는 겉보기에만 숭고해 보이는 죽음을 맞이한 채 마무리된다. 영화 속 등장하는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움직이는 인물들은 결국 자신들이 그토록 믿었던 존재에게 구원받지 못하며 악에게 비참하게 패배한다.

3.) 믿음의 대가는 불신이라는 아이러니함

<변신>은 믿음을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믿음 때문에 얼마나 인간이 비참 해지는지에 더 집중한다. 가족들 중 유일하게 끝까지 중수의 말을 믿고 따랐던 아버지 강구는 오히려 그 믿음이라는 선택 때문에 결말부에 이르러 가족들에게 고립되고 불신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맞이한다. 끝까지 믿었던 그 믿음이라는 가치 때문에 오히려 강구는 가족을 잃었으며 중구는 자신의 목숨까지 잃는다.

중구의 죽음은 도입부에 등장했던 소녀의 죽음과 어딘가 많이 닮아있다. 날카로운 것에 가슴을 꿰뚫려 죽은 모습부터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신에게 결국 응답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까지. 십자가에 찔려서 죽음을 맞이하는 중구의 모습은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서 다소 노골적이며 충격적이었다. 십자가에 새겨진 예수의 모습이 왜 그렇게 나약해 보였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