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시하게 그려낸 분노라는 감정
검은 정장, 자동차, 총격전에 사연 있는 고독한 킬러라는 설정까지, 그야말로 남자의 로망이 담긴 요소는 모조리 가져다 넣은 이 유명한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됐다. 이번 리뷰는 평론보다는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하나씩 풀어가려고 한다.
1. 분노의 원천
- 이제는 너무 유명해서 수많은 맘까지 생겨버린 영화 <존 윅>의 발단은 러시아 마피아가 존 윅의 개를 죽이고 차까지 훔쳐 달아난 것으로 시작된다.
글자 그대로만 보면 조금은 실소가 새어 나오는 설정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차와 개가 존 윅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존 윅의 차부터 시작해보자. 극 중 러시아 마피아 보스의 아들인 요제프가 존 윅의 머스탱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자신에게 팔라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존 윅은 그런 반응이 익숙한 듯 ‘Not for sale’이라는 답변을 남기며 무심하게 자리를 뜬다.
존 윅의 머스탱은 다른 사람들에겐 막연한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배신과 불신으로 점철된, 존 윅이 한 때 몸을 담갔던 ‘암흑가’의 모습과 닮아있다.
존 윅과 머스탱 둘 다 처절한 킬러의 세계에서 살아남아 화려한 겉모습을 뽐내지만, 그 안에 가려진 어두운 내면은 자신들밖에 알지 못한다. 존을 제외한 타인은 머스탱, 혹은 킬러의 삶을 그저 값을 치르고 살 수 있는 소비의 대상으로만 인지한다.
한마디로 머스탱은 킬러로서의 존 윅의 자존심이며 정체성과도 같다. 이 해석을 염두에 보고 영화를 보면 도둑맞은 머스탱(킬러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존 윅의 여정을 담은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내가 남긴 선물, 강아지 데이지는 죽은 아내와 다름없는 존재다. 존은 아내와 같이 잠들었을 침대에 아내 대신 데이지를 눕히며 아내의 존재를 투영한다. 이런 데이지가 존 윅의 눈 앞에서 힘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존은 또다시 한번 무력하게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결국 존은 데이지의 죽음이자 아내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개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과 함께 영화는 마무리된다.
2. 다시 만난 그린 고블린
- 얼마 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다시 봐서인지 익숙한 얼굴이 등장해 반가웠다. 바로 존의 믿을만한 친구, 마커스 역을 맡은 윌럼 더포의 얘기다.
광기 어린 그린 고블린의 이미지가 아직도 아른거려서 혹시라도 배신을 하면 어쩌나 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첫 등장 이후 영화에 별로 등장하는 장면이 없길래 이대로 존재감 없이 끝나는 건가라고 생각한 순간 바로 옥상 저격 씬이 나오며 내적 환호를 질렀다. 비록 분량은 별로 없지만 돈 때문에 존 윅을 배신하는 다른 킬러와는 달리 끝까지 존을 위했던 인물로 나와 인상적이었다.
마지막까지 ‘I go out on my own’이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감정적인 연출 없이 킬러다운 죽음을 맞는 모습이 딱 <존 윅> 시리즈에 어울리는 죽음이었다고 생각한다.
3. 영화의 설정과 연출
-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유독 액션 영화에서 관객은 영화의 흐름을 쫓아가기만 하는 수동적인 역할이 될 수밖에 없다. <존 윅>은 이런 특성을 더 극대화시켜 관객들을 영화에서 한발 물러나서 바라보게 만드는 연출을 택한다.
킬러라는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영화적 요소에 호텔이나 전문 청소업체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을 추가하며 오히려 영화의 내용을 더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또한 복수극이라는 특성상 단순한 플롯에 관객들이 금방 지치기 쉬운데 <존 윅>은 이런 복수심을 한시라도 꺼지지 않게, 분노라는 감정이 영화를 관통할 수 있도록 스피디하고 깔끔한 연출을 선보인다.
존 윅이 어떤 인물인지 플래시백 같은 영화적 기법을 쓰는 대신 다른 인물의 입을 빌리거나 극 중 존이 다른 이들에게 존경받고 대접받는 모습을 통해 관객이 존 윅이 어떤 인물인지 짐작하게 만든다. 덕분에 진부한 복수극 대신 스타일리시한 하나의 액션 영화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