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아있다> 리뷰

'왜'가 결여된 허무한 질주

by 김인혁

1. 한국형 좀비 영화의 황금기 또는 암흑기

- 영화 <부산행>의 천만 흥행을 기점으로 소위 말하는 '한국형 좀비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극에 좀비라는 소재를 끼얹은 <창궐>부터 부산행의 프리퀄인 <서울역>, 그리고 <반도>부터 <살아있다>까지. 한국 영화계가 좀비라는 소재의 돈 냄새를 맡은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한국영화 장르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선 분명히 환영받을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좀비'라는 뚜렷한 수요층이 있는 대중성 있는 소재를 무분별하게 양산화 시키고 있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오늘 볼 영화 <살아있다>는 후자의 경우다.


2. 좀비는 단순한 호러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좀비 아포칼립스의 바이블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전설이다>를 살펴보면, 좀비라는 소재를 단순히 추격 액션 서사로 풀어내지 않고 인공의 심리묘사, 좀비 아포칼립스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영화는 고립된 주인공의 정신상태를 단순히 '전시'하는 1차원적인 연출 방식이 아닌 한층 더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비디오 가게 여기저기에 세워둔 마네킹에게 말을 건네는 월 스미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이 주인공의 심리를 이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특히 윌 스미스가 자신의 반려견과 총을 껴안고 욕조에서 잠을 청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이 될 정도로 딱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를 한 씬에 정의 내린 매우 예술적으로 함축된 장면이다. 비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는 단순한 재난영화가 아닌 당연시됐던 기존 사회의 시스템이 무너져가면서 인물들이 느끼는 고립감과 공포감을 밀도 있게 묘사해야 하는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장르다.


3. 감정의 함축과 폭발


- <나는 전설이다>는 단순히 사건의 나열보단 사건의 디테일한 구성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그려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런 감정 또는 심리를 표현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함축과 폭발. 함축은 주인공의 감정 묘사를 최대한 억누르고 자제하며 관객이 주인공의 심리를 유추하게 만들어 주인공의 심리가 조금이라도 무너지는 순간 관객이 더 큰 충격을 받게 하는 기법이다. 이와는 반대로 폭발은 애초부터 관객을 심리적으로 동요하게 만드는데 중점을 둔다.


영화 <7번 방의 선물>의 마지막 신파 씬이 감정의 폭발을 사용했다면 <세븐>의 엔딩 장면에서 자신의 아내를 죽인 살인범을 앞에 두고 브래드 피트가 보여준 연기는 감정의 함축을 훌륭하게 보여준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가지 방식 모두 각자의 장단점이 분명히 존재하는 방식이기에 어느 것이 더 좋은 방식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감정의 함축은 배우의 연기실력에 그 성공 여부가 달려있는 까다로운 방식이라면 감정의 폭발은 자칫하면 관객을 감정적으로 피로하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감독은 배우의 역량과 극의 전개 단계를 살펴보며 신중하게 방식을 택해야 한다. 렇다면 <살아있다>는 어떤 방식을 택했을까?


4. 감정은 설명이 아니라 이해시켜야 하는 것


- 앞서 말했던 <나는 전설이다>의 훌륭했던 세밀한 감정 묘사와 달리 <살아있다>는 감정의 폭발이라는 방식을 택한다. 유아인이라는 명배우도 있겠다, 어찌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자 실망만 가득했다. 우선 극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주기 위해 셀프 비디오캠이라는 연출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파운드 푸티지'처럼' 보이는 연출을 통해 나름 아포칼립스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 것 같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주인공의 심리를 천천히 쌓아놓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주인공이 감정을 터뜨리고, 오열을 하고 난리를 쳐도 관객들에게는 그저 의미 없는 장면으로 여겨질 뿐이다. 아인의 연기도 매우 실망스러웠다. <사도>에서 보여줬던 그 폭발하는 에너지는 어디 가고 배우가 하기 싫은 연기를 억지로 하는 것처럼 배우 스스로가 극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밖에도 <살아있다>가 다른 작품에 비해 몰입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몇 가지 더 있다.


5. 동도 좋지만 말도 필요하다.


- 좀비로 가득 찬 아파트에서 홀로 고립된 주인공. 창의적인 스릴러적 연출이 얼마든지 가능한 설정을 영화는 전혀 살리지 못한다. 고립된 상황의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할 자신이 없었는지, 영화는 계속해서 주인공의 내부보단 외부 환경에 중점을 둔다. 딱히 극의 전개에 영향도 없는 아파트 바깥의 건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든지, 식량도 물도 얼마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너무나도 멀쩡하게 잘 돌아다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 과연 감독이 디테일한 설정을 신경이나 쓰는지 의문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좀비들의 특성을 이용하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돌격하는 주인공 일행의 문제 해결 방식은 볼 때마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런 식의 갈등 해소 방식을 사용할 거면 뭣하러 좀비들의 특성을 자세히 묘사하는 장면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영화에 뚜렷한 악인이 없다는 것도 갈등 해결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 방해되는 요소이다. 기껏해야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아저씨가 악인 정도로 묘사되지만 그마저도 영화는 얼렁뚱땅 어떻게 하다 보니 탈출했다!라는 연출만 보여주고 극의 긴장감을 오히려 떨어뜨리게 만든다.


6. '왜'가 결여된 허무한 질주


- 결론적으로 <살아있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명확한 생존의 이유도 느껴지지 않고 무작정 들이받는 납득이 되지 않는 맥 빠지는 연출 방식 때문에 극이 클라이맥스로 넘어가도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몰려오는 좀비들을 주인공들은 너무나 손쉽게 피하고, 해치우고 구조헬기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이용해 결말을 짓는 방식은 고립된 상황 속 다양한 인간군상, 무너져가는 사회의 모습 등등 좀비 영화만의 고유한 장르적 쾌감을 아무것도 살리지 못한 이 영화는 그저 '좀비 아포칼립스를 모방하고 싶었던 저예산 재난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소한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룬 영화 몇 편만 보더라도 이렇게 성의 없는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