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주인공들의 대사량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는 영화다. 쓸데없이 길고 상투적인 대사 대신, 레이(이정재)는 액션으로, 인남(황정민)은 눈빛 하나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그려낸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이들을 서로 부딪히게 하는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자신들의 유일한 피붙이, 가족이라는 존재이다. 가족을 위한 복수 그리고 속죄라는 각자의 뚜렷한 명분을 가지고 이 두 남자는 서로를 뒤쫓기 시작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이런 단순한 플롯을 몰입도 높은 스토리로 만들기 위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 자주 보곤 했던 장면들이나 연출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추격자와 도망자 간의 감정적인 유대감이나 신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복수와 생존이라는 감정만이 부딪힐 뿐이다. 이정재가 연기하는 레이라는 존재는 캐릭터에 대한 배경이나 부연설명 없이 그저 인남에게 형을 잃은 복수를 하겠다는 동기 하나로 움직이는 평면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레이를 최대한 단순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만듦으로써 관객들이 그에게 어떤 공감이나 연민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레이의 역할은 인남을 몰아붙이는 추격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인물이기 때문이다.
인남 또한 딸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레이를 쫓는 인물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딸과 직접적인 유대감을 보여주거나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신파 따위는 없다. 기존의 한국영화에서 흔히 보이던 장면이 없어서 어색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딸이라는 설정을 생각하면 이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옳은 연출이라는 생각에 금세 납득이 됐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가 많은 것을 압축하고 생략하다 보니 인남의 부성애의 원천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인남의 과거 회상신을 보며 인남이 어떤 감정과 동기-전 부인에 대한 속죄의식-로 움직이는지 유추는 가능하지만 인남의 감정을 보다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없어 아쉽다. 다만 이런 부연설명들을 과감하게 들어내고 좀 더 스피디하고 막힘없는 전개를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레이와 인남간의 쫓고 쫓기는 스토리 라인이기 때문에 영화는 다른 불필요한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깔끔한 기승전결을 만들어 관객들을 몰입시키게 만든다.
2. 액션은 스타일리시하게
영화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액션은 신선했다. 이건문 무술감독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어 스탑모션 기법을 사용한 액션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들고 온 홍경표 촬영감독의 연출은 지루해질 수 있는 추격전을 그동안 본 적이 없는 눈을 확 끄는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으로 만들어냈다.
특히 두 캐릭터 간의 상반된 액션 스타일도 눈에 띄었다. 오직 인남을 죽이겠다는 각오 하나로 덤비는 레이의 액션 스타일은 거침없으며 망설임이 없고 무자비하다. 반면 누군가를 죽이는 입장에서 누군가를 살려야 하는 입장이 된 인남의 액션은 조심스러우며 어딘지 모르게 등 떠밀려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인남의 액션은 자신을 희생하는 액션이다. 레이를 죽인다는 분노보다는 딸 유민을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액션이기에 황정민의 눈빛은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컷에 자주 잡혔고, 눈빛 하나에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3. 박정민
박정민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남성 배우가 여장남자 연기를 할 때야말로 본인의 연기 커리어가 최정점을 찍는다고 생각한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자레드 레토가 동성애자 역을 환상적으로 연기해내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것처럼).
박정민은 유일하게 이 영화에서 감정이 아닌 물질로 움직이는 제일 현실적인 인물이다. 동성애자이면서 아이가 있다는 아이러니한 설정이 어딘가 비뚤어진 모성애를 나타내기도 한다. 박정민의 역할은 극 중 엄마를 잃은 유민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인물이며 인남을 도와주는 조력자이다. 정리하면 인남의 부족한 면들을 채워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남과 더불어 유민으로 인해 인생의 새 도피처를 찾아내고 그토록 원하던 탈출을 이뤄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방에 가구 하나도 없이 맨바닥에 잘 정도로 안락함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인남에게 딸 유민은 자신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삶의 의지를 다시 일깨워주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유민이라는 역할을 박소이 배우는 대사 없이도 훌륭하게 유민이가 느낄법한 감정을 눈빛과 표정으로 보여준다.
4. 현장 따라가는 액션
다양한 해외 로케에서 촬영된 만큼, 공간성을 분리하는데 중점을 뒀다는 감독의 말이 영화를 보고 나자 더욱 와 닿았다. 일본에서는 비교적 정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을 사용하여 액션을 '전시'하는 형태로 연출했다면 태국에서부터는 동남아의 열기가 느껴지는 영상 컬러와 함께 다이내믹한 카메라의 움직임 그리고 트라이 사이클 등 현지 느낌을 살리는 소품의 활용이 눈에 띄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더 스케일이 커지는 액션 또한 관람 포인트다.
5. 성장물과 추격물 사이
영화의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영화의 메시지가 달라진다. 중점을 딸 유민을 지키기 위한 '아빠' 인남의 부성애에 중점을 둔다면 영화는 딸 또는 가족이라는 존재로 인해 한 남자가 비로소 무료한 삶에서 안식을 얻고 구원을 받는 성장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며 중점을 복수와 속죄에 둔다면 레이의 추격과 인남의 액션이 빛나는 훌륭한 액션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 존재인지 보여준다. 하나뿐인 형을 잃은 레이에게 가족은 자신이 분노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왜 인남을 쫓는지 잊어버린 채 오로지 복수만을 향해 질주한다.
반면 인남에게 가족은 빚이자 자신의 과거가 빚어낸 죄의식이다. 끝까지 딸아이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당당해지지 못하는 인남은 결국 자신의 희생으로 자신의 죄를 속죄하며 딸 유민을 이 피비린내 나고 추잡한 세상에서 해방시킨다. 자신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유토피아였던 파나마는 결국 그가 아닌 유민을 위한 안식처였다. 인남의 잃어버린 부성애를 상징하는 유이(박정민)가 인남 대신 파나마로 같이 가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부모를 잃은 유민과 자식을 잃은 유이, 어딘가 결여된 이 둘이 마침내 서로의 존재를 통해 위로받는 결말이 왜인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이면서 안정적이었다. 복수가 끝난 뒤 남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다.